[역사인문산책] 소년법

▲ 송승현 기자

열다섯 알렉스는 청소년 범죄의 정점에 서 있다. 코카인이 들어간 우유를 마시고, 주정뱅이를 때리고, 미성년자와 유부녀를 범한다. 결국, 절도 과정에 노부인을 살해하고, 경찰에 붙잡힌다. 그는 형기를 채우는 대신, 국가에서 제시한 ‘루드비코 요법’ 치료를 받는다. 루드비코 요법이란 조건 반사를 이용해 ‘악’을 없애주는 프로그램이다. 치료 뒤, 알렉스는 ‘악한 마음’을 먹으면 구역질이 난다. 영국 작가 엔서니 버지스의 소설 <시계태엽 오렌지> 속 줄거리다. 1960년대 청소년 범죄로 몸살을 앓던 영국의 현실을 담아낸 이 작품에서 그는 묻는다. “처벌을 통한 교화가 청소년 범죄의 근본 대안인가?”

최근 청소년 범죄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인천 여아 살인 사건과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을 계기로 소년법 폐지와 형량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범죄에 대한 엄벌은 필요악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처벌에 대한 논의만 이뤄지는 점은 문제 해결의 본질에서 벗어나 보인다. 국회 입법조사처가 의뢰한 정책보고서에 따르면 “형법의 형사미성년자 연령 저하가 가져올 효과는 마이너스 요인이 더 크다”고 적는다. 형벌이 범죄의 원인 해결보다 사회와의 격리 성격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청소년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범죄 형량을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 원인을 짚어보는 게 옳은 순서다.

▲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의 한 장면. 알렉스가 범죄를 뉘우칠 수 있었던 것은 루드비코 요법이 준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피해를 줬던 이들의 고통을 들으면서다. ⓒ flickr

칸트는 미성년을 자연적 나이로 분류하지 않고, 능력의 결핍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청소년 가해자는 폭행 사건이 공론화되자 SNS를 통해 “잘못한 거 아는데 그만하라”며 여론과 동떨어진 공감 능력의 결여를 드러냈다. 뇌과학에 따르면 공감 능력의 부족은 애착 관계의 결여에서 나온다. 한국 청소년들은 애착 관계를 형성하기 어려운 환경 가운데 놓여있다. 가정에서 부모는 맞벌이 때문에 아이와 대화 나눌 시간이 없다. 범위를 학교로 확장해도, 입시 위주의 교육 분위기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는 문제아로 낙인찍힐 확률이 높다. 도덕 교육도 수능으로 여기는 게 한국 교육의 현주소다. 한국의 청소년들은 칸트가 말한 ‘미성년 극복 능력’을 배울 장소도, 기회도 없는 셈이다.

<시계태엽 오렌지>는 주인공 알렉스가 ‘철이 들었다’며 자신이 저질렀던 범죄를 후회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알렉스가 범죄를 뉘우칠 수 있었던 것은 루드비코 요법이 준 고통이 아니라, 자신이 피해를 줬던 이들의 고통을 들으면서다. 물론 청소년들이 저지른 범죄에 대한 대가는 분명히 치러야 한다. 그러나 ‘청소년 범죄 판사’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는 소년범의 70%는 저소득층, 47%는 결손가정이라고 밝혔듯이 가해자들 개인의 문제만으로 치환해서는 답을 찾기 어렵다. 우리의 지향점은 범죄에 대한 처벌과 동시에 청소년들을 범죄로 내모는 사회의 모순 해결이 아닐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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