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농업이슈] 윤석원 로뎀농원 대표
주제 ②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

“경쟁력을 어떻게 판단해요? 결국은 물질이에요. 돈이에요, 돈. 경쟁력 있는 사람은 돈을 많이 벌어요. 경쟁력 있는 농민도 돈을 많이 벌어요. 판단 기준이 돈입니다. 아까 얘기한 자긍심, 행복, 만족감이 아니고 물신주의죠. 물신주의는 물질이 신이 되는 주의예요. 모든 판단기준이 물질입니다.”

▲ 윤석원 대표가 '농산물 시장개방의 정치경제'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임형준

지지난해까지만 해도 중앙대 교수였던 윤석원 로뎀농원 대표는 입술이 부르터있었다. 농업경제학을 가르치던 원로교수가 갑자기 초보농사꾼이 됐으니 일이 힘들었던 걸까? 그러나 국가가 농업, 농촌, 농민에게 강요하는 신자유주의 체제를 비판할 때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1등만 살아남는 인간소외 시대

윤 대표는 농업의 가치를 바로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으로 세 가지 열쇠말을 제시했다. 경쟁력지상주의, 물신주의, 인간소외가 그것이다.

“신자유주의 체제의 핵심은 경쟁력지상주의이며 경쟁력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요. 농민들도 경쟁력이 있어야 하는 시대에 사는 거예요. 문제는 경쟁지상주의입니다. 1등만 살아남는 거예요.”

윤 대표는 1등만 키우기 위해 혈안이 된 사회 분위기를 강하게 비판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경쟁력의 척도는 돈, 곧 시장가격이다. 인간이 가진 노동력의 가치도 임금으로 매긴다. 시장가격으로 환원할 수 없는 가치는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무의미한 것으로 본다. 임금의 격차는 인간을 계층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임금을 많이 받는 사람의 가치가 임금을 적게 받는 사람보다 더 높게 평가된다. 물질이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신이 되는 시대, 물신주의 시대다.

“인간이 전부 백점만 맞을 수는 없어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백점 맞기를 요구하고 1등이 되기를 강요해요. 인간소외죠.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게 되는 거예요. 물질을 가지고 인간이 인간을 평가하고 다른 인간을 따돌려요.”

경쟁력지상주의와 물신주의는 인간소외로 이어진다. 인간소외는 인간의 본질이 상실되는 과정이다. 물신주의는 인간의 인격이나 개성을 오로지 상품가치나 물질로만 판단하며, 경쟁력지상주의는 사회구조에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소외하도록 조장한다. 윤 대표는 “신자유주의 체제의 잣대를 농업에 갖다 대면 농업이라는 산업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윤석원 대표는 올 가을 2년차 미니사과(알프스 오토메)를 수확했으나 양이 적고 팔 물건도 안 돼 친환경 과수농사의 어려움을 체득하는 중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렸다. ⓒ 윤석원 페이스북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는 자본을 들여 상품을 만들고, 시장에 내다팔아 이윤을 창출하죠. 이윤이 창출되면 점점 경제가 커지죠. 이것이 자본주의잖아요. 그러나 우리나라 농업은 95%가 가족농이에요. 자본이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농사를 짓는 거죠.”

윤 대표는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해 필요한 식량을 생산하는 농부가 농업으로 먹고 살기 힘든 현실을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시장개방과 자유무역으로 어려움을 겪는 농민들에게 직불금 등의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 농촌은 유지되기 힘들다”고 말했다.

농가 보조금은 돈이 아닌 마음의 문제

“WTO는 농산물을 포함한 개방 체제로 이전에 농산물이 포함되지 않았던 GATT 체제와는 구별됩니다. WTO의 핵심은 농산물의 각종 관세와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낮춰 가는 것입니다.”

1995년 WTO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윤 대표는 “많은 사람들이 WTO에 관해 관세를 없애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며 “없애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WTO는 1995~2004년까지 관세와 보조금을 낮추도록 명시하고 10년에 한 번씩 재협상을 하도록 규정했다. 윤 대표는 “현재 WTO 규정은 11년 동안 결렬된 상태“라며 그 이유를 “2004년 재협상 당시 협의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2017년 기준 우리나라는 옐로박스와 그린박스 보조금이 지원되고 있다. ⓒ 김미나

“선진국들은 다양한 명목의 보조금을 농민에게 지원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보조금 지원책이 별로 없어요. 보조금은 미국이 농가소득의 약 48%, EU가 70%나 차지하는데 우리나라는 5%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윤 대표는 “WTO 규정에 그린박스, 옐로박스, 블루박스 보조금과 기타 디미니미스(De-Minimis) 등 다양한 보조금 정책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박스는 식량안보, 식량주권 등 농업의 근간을 보전하기 위한 명목의 보조금은 금액 제한 없이 지원 가능하다는 규정이다. 대표적으로 논의 형상만 유지하면 일정액을 주는 쌀 소득보전직불금이 이에 해당한다.

옐로박스는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보조금은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규정이다. 우리나라는 쌀 변동직불금이 있으며 한 해 약 1조4천억원까지만 지원이 가능하다. 최근 쌀값이 폭락해 피해를 입은 농민과 WTO에서 규정한 보조금의 초과분을 지불할 수 없다는 정부 간의 견해차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블루박스는 품목의 생산조절 대가로 지원하는 보조금 규정을 말한다. 윤 대표는 “일본은 쌀 과잉생산을 막기 위해 생산조정제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농지가 100평일 때 논농사를 50평만 짓고 나머지 50평은 대체작물을 기르도록 유도해 쌀 생산량을 줄이도록 하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2003~2005년까지, 2011~2013년까지 한시적으로 추진된 적 있으나 지금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디미니미스 보조금은 품목별 생산액의 10%를 보조해주는 규정으로 개발도상국에서는 10%가 적용되지만 선진국에서는 5%만 적용된다.

윤 대표는 “WTO 협상을 보면 보조금 중에서 옐로박스만 낮추거나 없애는 것일 뿐, 나머지 보조금은 농민에게 얼마든지 지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나라는 농업을 사양산업으로 치부해 진보든 보수든 관심이 없다”며 “돈이 없어서 못 주는 게 아니고 마음이 없어서 안 주는 것”이라 지적했다.

“의무수입물량 들여올 필요 없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가 타결되며 농산물 시장이 개방됐다. 윤 대표는 “관세나 보조금을 완전히 없앤 게 아니라 낮추어 간 것”이라며 “쌀만큼은 우리가 개방을 안 했다”고 말했다. 당시 정부는 쌀 시장 개방을 늦추는 대신 해마다 10년 동안 의무수입물량으로 부르는 최소시장접근(MMA)물량을 사겠다고 약속했다. 해마다 20만톤씩 사주겠다는 조건이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등 농민단체에서 쌀 시장 개방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에 펴낸 ‘한미 FTA 발효 5년, 농축산물 교역 변화와 과제’에 따르면 이행 5년차 미국산 곡물 수입액 가운데 쌀은 전년 대비 36.9% 증가했다. 2006년 78.8㎏이었던 1인당 쌀 소비량은 지난해 61.9㎏으로 10년 사이 20% 넘게 줄었다. 2015년 농산물 시장이 개방됐지만 의무수입물량은 40만9천톤으로 고정됐다. 쌀 재고량이 늘어나는 이유다. 윤 대표는 고정된 의무수입물량을 들여올 필요가 없다고 지적한다.

▲ 쌀이 라면보다 값이 싸다. ⓒ 임형준

“2015년 쌀 시장이 개방됐는데도 의무수입물량을 사와 계속 쌓여요. 수요가 없는 데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400만톤으로 자급이 거의 100% 돼요. 그런데 매년 40만 톤을 수입하니 누적되는 거죠”

해마다 들어오는 의무수입물량은 쌀 소비량 감소, 생산량 증가와 함께 쌀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인이다. 전농 역시 지난 12일 성명서를 통해 “밥쌀용 쌀 수입은 2014년까지는 국제협약에 의해 의무였지만 쌀 관세화로 전환된 2015년부터는 의무가 종료된 것으로 굳이 살 필요가 없다”며 밥쌀용 쌀 수입을 반대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공기는 200원

앞서 정부는 올해 밥쌀용으로 3만톤을 수입하기 위해 구매입찰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달 말 집계한 전국 평균 쌀 도매가격은 20㎏에 2만9천800원으로 1년 전 3만5천200원에 견주어 15.3% 하락했다. 윤 대표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쌀 값 문제를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한국인은 1년에 쌀 60kg을 먹어요. 하루에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하면 밥 한 공기에 200원이 안 돼요. 라면도 200원짜리가 없어요. 쌀이 제일 싸요. 식품 파동 나면 어머니들이 시장 가서 라면 사는데, 라면보다 싼 게 쌀이니 쌀을 사다 놔야 해요. 그것보다 싼 게 세상에 어디 있어요. 그런데 쌀값이 조금만 비싸면 난리를 치니까 환장할 노릇이에요.”


[지역농업이슈]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대산농촌재단과 함께 기자PD 지망생들에게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개설한 [농업농촌문제세미나]와 [지역농업이슈보도실습] 강좌의 산물입니다. 이는 농업경제학농촌사회학 분야 학자, 농사꾼, 지역사회활동가 등이 참여해서 강의와 농촌현장실습 또는 탐사여행을 하고 이를 취재보도로 연결하는 신개념의 저널리즘스쿨 강좌입니다. 동행하는 지도교수는 기사의 틀을 함께 짜고 취재기법을 가르치고 데스크 구실을 합니다. <단비뉴스>는 이 기사들을 실어 지역∙농업문제에 대한 인식을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편집 :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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