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제1회 부산퀴어문화축제

춤 동작 하나하나에 관중들이 열광했다. 긴 분홍색 가발, 가슴과 엉덩이만 가린 의상, 무릎 위까지 올라온 분홍색 부츠. 무대를 휘어잡은 쿠씨아 디아멍(27활동명)씨는 ‘게이 남성’이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부산에서 공연을 해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가까이서 보니 눈에는 마스카라를 짙게 바르고, 입술에는 붉은 립스틱을 발랐다. 턱 아래에는 거뭇한 수염 자국이 있었고, 목울대가 솟아있었다. 귀에 걸린 금빛 귀걸이가 흔들릴 때마다 반짝였다.

국내 성소수자들의 잔치인 퀴어문화축제가 23일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서울과 대구에 이어 세 번째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부산 해운대해수욕장 앞 구남로광장에서 펼쳐졌다. 축제 구호는 부산 사투리를 살린 ‘퀴어 아이가’다. 오전 10시부터 46개 단체가 마련한 부스 45개에서 행사가 시작됐고, 오후 1시부터는 공연이, 오후 3시 반부터는 해운대 일대를 지나는 거리행진이 이어졌다. 부산퀴어문화축제 기획단은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모두가 함께 차별과 혐오 없이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며 “성별정체성, 성지향성 등 정체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지양한다”고 밝혔다.

주최측 추산 2천여명 참여 열기

기획단에 따르면 이번 축제에는 약 2천 명이 참여했다. 반면 경찰은 참가자 수가 그보다 더 적을 것으로 추산했다. 경북대 성소수자동아리 등 대학내 성소수자 모임이 행사장에 부스를 마련했고, 정의당 부산시당, 대구퀴어문화축제,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등이 부스를 열었다. 이들은 옷스티커팔찌 등을 팔았고, 사진찍기타로점 보기 등의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전북대 성소수자 모임 ‘열린문’ 등은 부스 없이 행사장을 돌며 참여자들을 만났다. 성소수자 부모 모임 부스에서는 김진이(49서울 송파구)씨가 목이 쉬어라 메시지를 외쳤다. 김 씨는 “스무 살 게이 아들이 있다”며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져야 차별이 없어지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광장에서는 여자와 여자가 손을 잡고, 남자와 남자가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참가자들은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무지개색 손깃발을 흔들며 축제를 즐겼다. 공연이 무르익을수록 광장은 사람들로 채워졌고, 이들이 흔드는 손깃발 덕에 무지갯빛 파도가 넘실댔다. 정세일(스카웨이커스)의 공연을 시작으로 비크루‧아는언니들합창단 등이 광장의 열기를 달궜다. 무대에 올랐던 퀴어댄스팀 ‘큐캔디’의 멤버 이안(30대 중반‧여‧서울 은평구‧활동명)씨는 “주민등록상으로는 여자지만 남자처럼 커왔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이어 “남자라고도 여자라고도 생각 안 한다”며 “어디 가서 여성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이날 축제에는 10~20대의 참여가 눈에 띄었다. 행사장 부스 입구 한 켠에서는 정의당 예비당원협의체 ‘허들’의 당원 넷이 깃발을 흔들고 있었다. 당원인 이모(15전북 전주)군은 “퀴어문화축제를 통해 성소수자의 인권이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조직위원장 문준혁(17)군은 “성소수자 문제는 정의당에 입당한 뒤 관심이 생겼다”며 “상생하면서 살면 되는데 저렇게 행동하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며 길 건너 동성애 반대 집회 참가자들을 가리켰다.

‘동성애 반대’ 집회 맞서 목소리 더 커져

부산기독교총연합회 등으로 꾸려진 건강한부산만들기시민연대는 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에 나섰다. 이들은 ‘동성애는 중독입니다’ 등 동성애를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부채와 손간판 등을 들었다. 한수옥(70부산 해운대구 우동)씨는 “동성애는 절대 안 된다”며 “남자와 남자가 만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역시 반대 집회에 참가한 취업준비생 민모(24부산 해운대구 우동)씨는 혐오하는 게 아니라며 “건강한 신체를 위해서 치료해야 할 병”이라고 동성애 반대 이유를 드러냈다.

축제의 대미를 장식한 거리행진은 구남로 광장을 출발해 해운대해수욕장과 동백섬 일대를 지나 행사장으로 돌아오는 2.8km 코스였다. 행진은 차량 서너 대 위에서 성소수자들이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참가자들이 뒤따르는 형식이었다. 차량 스피커에서는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 퍼지면서 차별받고 싶지 않은 성소수자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사랑해 널 이 느낌 이대로 그려왔던 헤매임의 끝.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행진에는 외국인도 더러 보였다. 부산에서 7년째 살고 있다는 윌(Will‧남아공)씨는 “한국인 남자친구가 있다”며 “부산에서 퀴어문화축제가 열려 기쁘고 약자의 평등을 위해 참여했다”고 말했다. 인파 속에서 만난 ‘행동하는 성소수자 인권연대’의 재윤(35‧수원 장안구 정자동‧활동명)씨는 “차별이 아니라 구별이라고 반대세력이 주장하는데 그게 차별”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반대세력은) 사랑을 섹스 중심으로 해석한다”며 “(그들이) 돌아오라고 외치는 것은 이성애자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차별은 나빠요, 혐오를 멈춰요”라며 행진 코스를 따라 늘어선 반대 집회 참가자들에게 목청껏 외쳤다.

축제를 준비한 기획단장 전인(22여)씨는 “1회를 치렀으니 끝장을 보겠다”며 축제를 계속 이어나갈 뜻을 밝혔다. 

▲ 경찰들 뒤로 동성애 반대 피켓을 든 사람들이 보인다. 축제에는 경찰 800여 명이 투입돼 충돌에 대비했으나 큰 불상사는 없었다. ⓒ 임형준
▲ '동성애는 성적 타락'이라고 적힌 피켓을 든 사람 앞으로 십자가를 든 사람이 지나가고 있다. ⓒ 조승진
▲ "하나님 앞에 동성애는 죄악이다"라고 외치는 한 남성 뒤로 다양성을 상징하는 무지개 망토를 쓴 인형탈이 지나가고 있다. ⓒ 조승진
▲ 개성 넘치는 차림새를 한 축제 참가자들. 아래 두 사람은 퀴어이면서 청각장애인이다. ⓒ 조승진
▲ 무대 앞을 가득 메운 축제 참가자들. 공연자의 동작 하나하나에 환호성을 질렀다. ⓒ 임형준
▲ 무대를 마치고 내려온 '샬롯 굿이너프'와 '쿠씨아 디아멍'. 두 사람은 '드랙퀸'이다. 드랙퀸은 공연을 위해 남성들이 여성성과 본인의 개성을 더해 만들어 낸 각자의 캐릭터를 이르는 말이다. ⓒ 조승진
▲ 동성애를 반대하는 대형 깃발 옆으로 대구대 성소수자 동아리 깃발이 휘날리고 있다. ⓒ 조승진
▲ 늦은 오후 무지개 깃발이 휘날렸다. 무지개 깃발이 평화의 상징으로 쓰일 때는 빨간색이 맨 아래에 있고 보라색이 맨 위에 있다. 반면 성소수자 깃발로 쓰일 때는 그 반대다. ⓒ 조승진

편집 : 송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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