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
주제 ② 재벌과 언론의 개혁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피청구인(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서원(최순실)의 국정개입 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2017년 3월 10일.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파면됐다. 당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을 비롯한 재판부는 탄핵심판 결정문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사유 중 하나로 국회와 언론의 ‘견제와 감시’라는 핵심 기능을 제대로 작동할 수 없게 만든 점을 지적했다.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했다는 것이다.

▲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파면하면서 국회와 언론의 ‘견제와 감시’ 기능을 작동할 수 없게 만든 점을 유죄로 보았다. ⓒ JTBC 뉴스특보 갈무리

하지만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의 생각은 좀 달랐다. 곽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결정문의 그 부분을 읽을 때 되레 겸연쩍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4년간 국정농단 세력들이 마음껏 활보할 수 있었던 데는 이를 제대로 지적하지 못한 언론의 책임이 큰데, 헌재 결정문이 그런 언론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한겨레>를 비롯한 언론들은 적잖은 구실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드러냈고, 검찰 수사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 모처럼 ‘감시견’ 구실을 했다. 하지만 곽 기자는 “그나마 상대가 정치 권력이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평가한 뒤 “진짜 한국 언론의 민낯은 자본 권력을 대하는 모습에서 드러난다”고 꼬집었다.

언론, 국정농단 감시 안 했나 못 했나

“한창 이재용 부회장을 구속하라는 여론이 들끓을 때, 삼성그룹 기자실에서 한 고위 임원이 ‘한국 언론 참 이상하다’고 불만을 터뜨렸다고 해요. 1년 반 전에는 <한겨레> 빼고 다 (합병에) 찬성해 놓고, 인제 와서 여론이 바뀌니까 딴소리냐는 거예요. 저는 기분 나빴지만, 말인즉슨 옳다고 했어요. 그게 한국 언론의 민낯이거든요.”

곽 기자는 시간을 2년 전으로 돌려 지난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사태에 주목했다. 당시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의혹에도 불구하고 두 기업 간 합병에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국민연금 의결권과 관련된 인사들은 모두 사법처리됐다.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은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직권을 남용해 국민의 노후 자산인 국민연금에 수천억 원의 손실을 입힌 혐의가 인정됐다. 당시 의결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음이 밝혀진 것이다.

곽 기자는 “합병 결의가 처음 발표된 2015년 5월 말부터 합병이 최종 성사된 7월 17일까지 50여 일간, 두 기업 간 불공정 합병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언론이 있었나”고 반문하며 “6월 초 엘리엇이 비정상적인 합병비율(1대 0.35)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는데도 한국 언론은 삼성만을 감쌌다”고 비판했다.

실제 당시 주요 경제지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가 국민연금의 삼성물산 합병 찬성 결정을 우호적으로 평가했다. 시간이 지나 국정농단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야 언론은 삼성의 정경유착 의혹에 대한 비난 여론에 편승해 비판적 논조의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곽 기자는 “당시 국민연금을 비판하는 사설을 낸 건 <한겨레>가 유일했다”며 “그만큼 우리 언론은 자본 권력에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 곽정수 한겨레 선임기자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의하고 있다. ⓒ 박수지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신문사가 무너진다?

“지난 2월 말 이 부회장이 구속기소 되고, 삼성이 경영쇄신책으로 소위 그룹 컨트롤타워라는 미래전략실을 해체한다고 발표했어요. 그랬더니 우리 언론은 ‘삼성이 무너진다’고 기사를 냈죠. 저는 여기에 속뜻이 있다고 봐요. ‘삼성이 무너진다’가 아니라, 삼성이 무너지면 ‘우리 신문사가 무너진다’는.”

한국 언론의 ‘재벌 의존성’은 결국 광고 때문이다. 민주정책연구원에 따르면 2014년 기준 4대 재벌(삼성, 현대차, LG, SK)의 언론광고 시장 점유율은 20%에 육박한다. 곽 기자는 “<한겨레> 광고수입이 1년에 500억이라고 가정하면 그중 25%가 4대 재벌에 편중돼 있다”며 “그중 절반이 삼성 광고이며, 보이지 않는 협찬수입까지 고려하면 실제 비중은 더욱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해체를 발표한 삼성 미래전략실은 언론사별 광고예산을 배정하고 집행하던 기구였다. ‘미래전략실이 무너지면 신문사가 무너진다’는 말이 엄살만은 아닌 이유다. 곽 기자에 따르면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는 이제껏 반복됐고, 지금도 진행 중인 현실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뒤 너무 화가 나서 회사 임원에게 언론사 광고 예산 삭감을 지시했다는 얘기가 있어요. 지금껏 삼성에 우호적이었던 매체는 기존 예산의 70%, 비우호적인 매체에는 30%만 주라고 했다는 거예요. 결정적으로 자신의 구속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매체에는 한 푼도 주지 말라고 했다는군요.”

곽 기자는 “기존 삼성 광고예산이 전액 삭감된 JTBC는 국정농단 사건 이후 오히려 다른 기업 광고가 월 150~200억 늘어 그리 큰 문제는 없다더라”며 “삼성 광고 비중이 한국 언론사 중 가장 높은 <한겨레>도 교훈으로 삼으면 좋겠다 싶어 광고국에 얘기했더니 ‘신문과 방송은 다르다’고 반박하더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 곽정수 기자는 삼성의 ‘언론 길들이기’는 언론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고 본다. 그는 2016년 <뉴스타파>가 보도한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특종을 예로 들었다. ⓒ 뉴스타파 홈페이지 갈무리

“‘이건희 동영상’이 존재한다는 건 이미 2015년부터 주요 언론사에서 알고 있었어요. 제보자가 팔겠다고 ‘세일즈’를 하고 다녔거든요. 저도 봤는걸요. 그런데도 이듬해 <뉴스타파> 보도까지 아무 언론도 이 문제를 짚지 않은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삼성에 맞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전투 의지가 없었던 거예요. 이재용의 ‘분노 타깃’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죠. 이는 <한겨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언론 위기는 내부 역량 부족 탓···‘업의 본질’에 집중해야

곽 기자는 언론사 취업을 꿈꾸는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이 강의를 통해 한국 언론의 현실을 듣고 좌절하는 친구들이 있을지 모르겠다”면서도 “언론의 위기는 결국 내부 역량의 문제”라고 언론계의 자성을 촉구했다. 신문 구독률이 떨어지는 현실을 흔히 뉴미디어 등 외부환경 탓으로 돌리지만, 이제껏 외부 도전을 겪지 않는 산업은 없다는 게 곽 기자의 진단이다. 그는 “지금처럼 내부 혁신 노력은 하지 않고 자본 권력에 계속 의존하다 보면 언론의 미래는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한 공룡 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 곽정수 기자는 언론 위기의 해법으로 ‘업의 본질’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 박수지

곽 기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업의 본질’이다. 언론이 왜 존재하고,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고민하고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업의 본질’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영 일선에 있을 때 강조한 개념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3년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말로 유명한 프랑크푸르트 신경영 선언 자리에서 “양(量)의 경제에서 질(質)의 경제로 가자”고 주장하며 ‘업의 본질’을 화두로 던졌다. 제조업의 본질은 결국 소비자들이 만족할만한 ‘퀄리티(Quality)’ 있는 상품을 만드는 데 있다는 것이다.

언론 역시 정치, 자본 등 거대 권력을 상대할수록 언론의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는 게 곽 기자가 생각하는 생존전략이다. 광고수입과 협찬금 등을 4대 재벌에 크게 의존하는 상황에서 기자가 ‘내 월급이 재벌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면 삼성물산 합병, 이건희 성매매 의혹 보도는 나올 수 없다.

곽 기자는 “지난 탄핵 국면에서 ‘최순실 특종으로 <한겨레>가 살아났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솔직히 자본 권력을 정면으로 건드려야 했다면 과연 그 정도로 쓸 수 있었을지 의문”이라며 “기자라면 삼성광고 없는 언론, 광고를 받아도 눈치 보지 않고 비판할 수 있는 사회 공기(公器)로서 언론을 항상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새 정부의 재벌개혁은 ‘선택과 집중’

“총탄은 제한되어 있다면 산발적으로 쏘는 것보다 우두머리들만 조준 사격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죠.”

곽 기자는 재벌개혁에 대한 필요성도 강조했다. 새 정부가 내세운 경제개혁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재벌개혁’이 우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불건전 지배구조를 개선해 시장 질서를 공정하게 재확립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가 활력을 얻고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효과를 가지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재벌개혁과 공정시장 구축 3대 과제로 ‘법 집행 강화’ ‘시장압력 강화’ ‘재벌개혁 선택과 집중’을 꼽았다. 새 정부의 개혁 동력이 떨어지기 전 현행법 체계 내에서 강화할 수 있는 것부터 진행하고 ‘스튜어드십 코드’ 같은 제도를 통해 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시장의 압력을 강화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곽 기자는 마지막 키워드인 ‘재벌개혁 선택과 집중’을 강조했다.

지난 6월 임명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인사청문회에서 “규제 대상을 선택·집중해 대상에 따라 다양한 정책 수단을 유연하게 조합해 활용하겠다”고 했는데, 곽 기자는 옳은 선택이라고 주장한다.

곽 기자는 “자산 5조 이상인 우리나라 재벌들이 60개 정도 된다”며 “그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재벌과 60위인 재벌의 격차가 너무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의 자산총액이 350조인데 꼴찌 기업은 10조 정도로 35배 차이가 난다”며 “사실상 최상위 재벌이 우리 사회 독과점 구조의 주범이기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맞다”고 설명했다.

▲ 곽정수 기자가 2012년 출간한 책 <재벌들의 밥그릇>. ⓒ 홍익출판사

‘미니멈 개혁’이 진짜 개혁이다

“이념적 슬로건, 비현실적 목표를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내걸고 선명성 개혁을 하면 실패한다.”

곽 기자는 이번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념적 슬로건과 비현실적인 목표만을 주장하기보다 조금 더 종합적인 판단을 토대로 현실 정치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곽 기자는 95년부터 22년 동안 공정거래위원회에 출입했고, 90년대 후반부터 김상조 교수를 알고 지냈다며 김상조 위원장의 개혁 계획이 매우 현실적이고 지금 매우 필요한 방향의 개혁이라고 말한다.

곽 기자는 “어떤 정책이든 마이너스와 플러스가 있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며 “구호성 개혁, 이념적인 진보를 통해서 개혁의 정책을 얘기하고 추진하다 보면 재벌의 반발이 당연히 거셀 것이고, 그러다 보면 국민이 헷갈리기 시작해 오히려 개혁 실패의 원인이 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가 청문회에서 ‘공정한 시장경제 질서를 확립하겠다’고 답변하고 있다. ⓒ YTN 화면 갈무리

곽 기자는 김상조 교수가 <종횡무진 한국경제>에서 강조한 2가지 개념인 ‘제도적 상호의존성’과 ‘경로의존성’을 소개했다. ‘경로 의존성’은 과거에 어떤 길을 걸어왔느냐가 현재의 선택과 미래의 결과를 좌우한다는 뜻이다. 곽 기자는 “정책을 결정할 때는 ‘경로 의존성’과 ‘상호 의존성’을 다 봐야 한다”며 “그러다 보니 김상조 교수와 문재인 정부가 혁명 수준의 맥시멈보다는 ‘미니멈 개혁’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정부도 예산 제약을 받기 때문에 그 예산 안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는지도 중요한 문제”라며 “자칫 잘못하면 세금이 낭비되니까 맥시멈 개혁을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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