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주제 ① 전쟁정치와 과두제 민주주의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는 전쟁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은 평화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지금이 평화 상태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상 아닙니다.”

한국전쟁이 한국사회에 미친 영향을 연구해온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김동춘 교수는 저서 <전쟁정치>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김 교수는 한국전쟁의 영향으로 비상체제라는 극단적 형태의 계엄체제가 한국사회 지배 관계 속에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적대하고 있다는 이유로 국내의 정치적 반대세력을 법에 의거하지 않고 감시, 체포, 구금할 수 있는 비상체제적인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러한 개념을 ‘적대의 내재화’라 불렀다.

“적대를 내재화했다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부의 적에 대한 두려움, 내부의 적에 대한 공포 조장, 내부의 적에 대한 사회위험분자 낙인, 내부의 적과 그렇지 않은 선량한 시민을 분리하는 작업 등에 나타납니다.”

전쟁의 논리 내재화하면 반대자는 적 취급 

“전쟁의 논리가 그 사회에 내재화하면 자기를 반대하는 사람은 다 적으로 취급합니다. ‘너 빨갱이지? 빨갱이들은 말이 많아.’ 우리 사회에서 70대 이상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입니다. 지금 제가 옛날이야기 하는 거라 생각하세요? 지난 대선 이전 탄핵 이후부터 진행됐던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 세월호 진상규명은 종북·좌파 세력의 요구라는 새누리당의 현수막. Ⓒ 트위터

김 교수는 전쟁의 논리가 내재화한 한국사회의 모습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19대 대선 전까지 나타난 현상들로 설명했다. 그는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부활한 ‘서북청년단’, 세월호 진상규명은 종북·좌파 세력의 요구라는 새누리당의 현수막, 고 김영한 민정수석 비망록에 등장하는 ‘응징’, ‘척결’, ‘보복’과 같은 단어와 그것을 지시한 김기춘을 예로 들었다. 

“이것은 행정이 아닙니다. 통치도 아닙니다. 전쟁입니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고, 적이 죽으면 내가 산다는 이 논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 9년간 진행되었습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전쟁정치가 1987년 이전까지 계속되었고 이후 다소 민주화가 되면서 수면 밑으로 내려갔다가 노무현 정부 이후 수면 위로 다시 올라왔다고 덧붙였다. 또한, 남북한이 휴전 상태에서 평화 상태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전쟁정치는 수면 밑에서도 완벽하게 사라지지 않고 언제든지 나타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유

“전쟁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나 경찰, 국정원 등이 법을 어겨도 처벌받지 않아요. 즉, 법치가 작동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게 전쟁이에요. 전쟁 상태에서 적과 내가 총을 맞대고 있는데 법이 작동하겠어요? 여러분들은 왜 저 사람들을 처벌하지 않느냐고 따지지 않나요? 따지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그 전쟁 상태에 적응된 겁니다.”

김 교수는 법치가 작동하지 않는 전쟁 상태가 평상시인 지금 이 순간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그 예로 이명박·박근혜 정부 당시 벌어졌던 간첩 조작, 민간인 사찰, 대포폰 사용과 중요문서 폐기와 같은 사건의 당사자들이 한 사람도 처벌받지 않은 점을 꼽았다. 경찰, 검찰, 국정원 등이 상시로 법을 어기고 그 법을 어긴 자들이 국회의 감시를 받지 않고 법에 회부되지 않는다는 것은 준전쟁 상태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는 법을 어기고도 처벌을 받지 않는 이들은 ‘범죄조직’과 다름없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념 스펙트럼이 좁아진 한국사회

김 교수는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사실 민주당을 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북을 찬양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비상식적인 것으로 통용되는데, 판사와 검사가 이를 알고도 통진당을 해산한 이유는 국민의 '운신 폭'을 줄이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했다. 국민 5%가 지지하던 통합진보당을 해산시키면 국민 스스로가 자기검열을 한다는 것이다. 통진당 해산 사건은 우리 국민에게 사상의 폭을 줄이고 법의 테두리에 갇히게 만들었다. 당시 복지 문제를 거론하고 노동조합을 옹호하는 등의 발언만 해도 빨갱이 소리를 들은 것이 대표적이다.

▲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은 사상의 폭을 줄이고 국민을 법의 테두리에 갇히게 만들었다. Ⓒ JTBC 방송 화면 갈무리

영어로 ‘Political landscape’라고도 하는 '이념 스펙트럼'은 극좌부터 극우까지 나뉜다. 극우는 파시즘이라고도 불리는데, 우리나라에서 ‘극우’라는 표현은 잘 통용되지 않는다. 그 이유를 김 교수는 ‘이미 우리 사회에서 이념 스펙트럼이 좁아져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이나 공약은 해외와 비교했을 때 중도에 가깝지만, 빨갱이로 분류되는 이유다. 심상정 의원이 속한 정의당의 정책은 메르켈이 속한 독일의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정책보다 보수적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좌파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 이념 스펙트럼이 좁아진 결과다.

과두제 민주주의 국가가 된 한국

전쟁정치의 결과는 공천 후보자들의 직업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김 교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원들의 직업군은 법조인에 편중돼 있다. 의원의 15%를 차지하는데, 이는 우리나라 인구의 0.5%를 차지하는 법조인 비율에 견주어 굉장히 높다. 그는 “우리나라가 ‘법조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야당의 경우 시민운동가 출신이 조금 있지만, 국회 전체로 보면 불평등이 심화된 구조다. 이는 우리나라 소득 격차를 심화하고 복지정책을 축소시킨다. 고소득 법조인 비율이 높은 국회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에 신경을 쓸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보장과 같은 현금 복지 서비스가 줄어들었다. 사회보험과 고용보험, 산재보험과 같이 현금으로 지급되는 복지정책이 국제기준으로 봤을 때 최하위에 속한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복지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실제 가장 진보적인 복지정책을 가진 정의당도 실제 의석수가 6석밖에 안 된다. 복지정책이 어려운 이유다. 그는 “우리사회의 이념 스펙트럼이 좁아진 결과 사회가 정치 지형이 극우에 쏠렸다”며 “우리나라는 복지 문제를 제대로 대변할 정당이 없는, 상위 10%의 의사만 반영되는 ‘과두제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고 말했다.

단순다수제의 한계, 시민의회로 나가야

“한 지역구에서 한 사람만 뽑게 되어있는 게 지금 한국의 현실입니다. 한 사람만 뽑는 지역구에서 민주당이나 정의당이 뽑힐 가능성이 있을까요? 거의 없습니다.”

김 교수는 단순다수제로는 앞으로 한국 정치가 갈 길이 험난할 것이라 지적한다. 한 지역구에서 한 사람만을 뽑는 단순다수제는 승자독식제도다. 김 교수는 “단순다수제에서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지고 있는 후보나 전국적인 영향력을 지닌 당에 속한 후보가 아니고서는 힘들다. 이번 대선 토론에 사람들이 심상정 후보가 제일 잘했다고 하지만 투표함을 열어 놓고 보니 정작 득표율은 6%밖에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유권자가 정의당이나 민주당 같은 진보정당을 밀고 싶어도 승자독식을 취하고 있는 단순다수제인 현행 선거제도 내에서는 사표 심리 때문에 유권자들은 될 사람에게 한 표를 행사하는 것이다.

▲ 대선 토론회에서는 심상정 후보가 제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득표수는 꼴찌였다. Ⓒ YTN 방송 화면 갈무리

그는 단순다수제의 해결책으로 ‘시민의회’를 꼽았다. 거대 여·야 양당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침해되면서까지 헌법을 바꿀 의지가 없기 때문에 헌법에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국민이 선출한 국회의원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는 입법을 했을 경우 이 국회의원을 소환하는 조항을 헌법에 집어넣는 식이다. 시민이 국회의원을 강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는 “시민이 직접 정치에 관여하게 하자는 게 ‘시민의회’의 골자”라면서 ”이는 ‘촛불시위’ 이후에 나온 안”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민의회’를 하는 대표적 사례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그리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을 꼽았다.

부자독점정치 외국보다 한국이 심해

“우리가 정치학 교과서에서 봤던 금권정치, 학생들은 이것을 그리스·로마 때만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지금이 금권정치예요. 민주주의는 오염된 겁니다.”

김 교수는 금권정치의 시작을 ‘전쟁정치’에서 찾았다. 남북한이 적대적 관계로 유지하면서 한국의 정치 스펙트럼이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실질적으로 우리 사회에서 소수자나 약자를 대변할 세력들이 없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전쟁정치’에서는 약자들이 존재할 수 있는 언론, 학문, 관료체제가 수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성정치는 중도보수 성향의 사람들이 독점하게 된다. 김 교수는 중도보수의 정치독점이 정책선거의 부재를 불러왔고 결국 사회적 유력자나 돈 많은 사람들이 정치를 잡게 되는 금권정치로 이어진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영국이나 미국보다 한국이 엘리트 독점 또는 부자 독점 정치가 더 심하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 중 하나로 그는 ‘언론’을 꼽았다. 영국에서는 <인디팬던트> <가디언> BBC 같은 언론이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한국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치우친 정치 스펙트럼 속에서 중도를 지지하거나 중도 좌파를 지지하는 학자가 생존할 수 없는 현실이 이를 대변한다.

▲ 김 교수는 대통령 한 사람 바뀌는 것보다 시민사회에서 개인이 스스로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 안형기

김 교수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 내부에서부터 해결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소외되었던 아르바이트생들이나 비정규직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종북 색깔 시비 같은 게 이번 대선에서는 옛날만큼 힘을 발휘하지 못했는데 나름대로 큰 진전을 이뤘습니다. 이렇게 된 힘도 결국 시민한테서 나왔습니다.”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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