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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대한민국’과 작별하기
[사회교양특강] 김동춘 성공회대 NGO대학원장
주제 ② 기업사회의 재벌개혁
2017년 09월 07일 (목) 22:44:28 김효진 신혜연 이민호 기자 wordianlee@naver.com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먹고 사는 문제입니다. 한국 국민이 자존감을 느끼며 경제활동을 하려면 재벌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걸 못 풀면 문재인 정부가 사람들에게 ‘피부에 닿는 변화’를 가져다주진 못할 겁니다.”

성공회대 NGO대학원장인 김동춘 교수는 새 정부의 성패를 가를 쟁점으로 재벌개혁을 꼽았다. 김 교수는 2007년 저서 <1997년 이후 한국 사회의 성찰>에서 한국사회를 ‘기업사회’에 비유한 바 있다. ‘기업사회’는 이윤을 최우선에 두는 기업 논리가 경제뿐 아니라 사회 전반을 장악하는 현상을 뜻한다. 김 교수는 “재벌개혁은 경제적 약자들의 권익을 되찾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개혁 의지가 높은 지금이 재벌개혁을 단행할 적기이자 ‘마지막 기회’라고도 말했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을 앞장서 주장해 온 장하성, 김상조 교수를 영입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 CEO 출신이란 점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기업사회는 정점을 찍었다. Ⓒ YTN 뉴스 갈무리

CEO 대통령에 열광하는 이유

김 교수는 한국 사회를 ‘거대한 주식회사’에 비유한다. 이윤을 중심으로 굴러가는 기업사회에서 모든 사회적 관계는 ‘사용자’와 ‘피고용자’로 재정립된다. 이해관계로 뭉친 관계는 이윤이 나지 않으면 바로 끊긴다. 피고용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경쟁력과 생산성을 입증해야 하는 처지다. 반면 사회 권력층은 ‘고용자’로서 역할이 요구된다. 정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에게 CEO 자질을 기대하는 것도 기업사회만의 특징이다. CEO 출신이란 점을 내세운 이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기업사회는 정점을 찍었다.

기업 논리가 사회 전역에 스며든 게 기업사회의 대표 증상이다. 사법, 교육, 행정, 의료 등 이윤을 추구해서는 안 될 영역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의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기업에 도움이 되는 대로 사법을 운용하겠다”고 밝혔다. 기업의 돈벌이 행위는 불법을 눈감아주겠다는 지침을 공개한 셈이다. 모든 국민에게 동등한 서비스를 해야 할 행정부 역시 기업 논리에 호응했다. 노동부는 임금 체납을 신고받고도 ‘기업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며 근로감독을 소홀히 했다. 좋은 교육을 제공해야 할 대학은 이윤을 좇아 인기 학과 정원을 늘리고 비인기 학과를 없앴다. 물신주의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종교마저 한국 대형교회 목사들에게는 이윤추구 대상으로 변모했다.

기업 논리가 침투하며 생겨난 ‘CEO 총장’, ‘CEO 목사’는 급기야 가정에까지 수입됐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이 나오고, ‘CEO 맘’이라는 용어가 유행했다. 재테크 투자에 무능한 부모는 졸지에 ‘퇴출 대상’이 됐다.

   
▲ 김동춘 교수는 “재벌개혁은 경제적 약자들의 권익을 되찾기 위해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이민호

‘사랑합니다 고객님’ 손님은 왕, 노동자는 을

기업사회에서는 개인도 상품이 된다. 과거에는 프로야구 선수들 연봉을 이야기할 때만 사용하던 ‘몸값’이란 단어가 지금은 모든 사회구성원에게 적용된다. 한국에 자기계발서 열풍이 분 것도 같은 맥락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몸값을 올리며 스펙 경쟁을 하는 풍경은 2000년대 무렵부터 싹트기 시작했다.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언급한 ‘자기착취’ 논리가 자기계발 열풍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기업사회에서는 약자가 강자를 추종하는 성향이 두드러진다.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가 자신의 능력 부족이라고 생각하기 쉬워서다. 노동자에게 능력주의 사회는 어쩌면 지옥과 같다. 구매력 있는 소비자는 ‘왕’ 대접을 받지만, 고객을 ‘모시는’ 노동자는 신하가 돼야 하는 처지다. 경쟁 환경에 살아남기 위한 친절이 만연하다.

“나는 감정노동자들이 베푸는 친절을 보면 즐겁지 않습니다. 저 사람이 얼마나 힘들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김 교수는 독일을 방문했을 때 동독에서 20대를 보낸 연륜 있는 노동자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동독 시절에는 서기장 호네카를 욕하면 국가가 감시하고 잡아갔습니다. 하지만 직장 상사는 아무리 욕해도 괜찮았죠. 통일하고 나서는 메르켈 총리를 욕하는 건 아무래도 괜찮아요. 하지만 상사를 욕하면 바로 해고죠.“

우스운 농담처럼 들리지만, 기업사회 권력관계를 잘 드러내는 비유다. 경제권력이 정치권력 위에 선 기업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법질서 세우려면 이재용 감옥서 10년 있어야”

독점 기업은 스스로 권력이 된다. 본래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은 경쟁을 통해 서로를 견제하고, 흥망성쇠를 겪기 마련이지만, 한국 재벌 기업은 나날이 경제력 집중도를 높이고 있다. 김 원장은 국내 GDP 대비 재벌 자산 비중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그래프로 보여줬다. 삼성그룹은 2000년대부터 국내 GDP 대비 10% 규모의 자산을 쌓았다. 2012년에는 자산이 GDP 대비 25%까지 늘어났다.

   
▲ 경제개혁연구소가 만든 GDP 대비 국내 기업 자산 비율표. 2012년 삼성그룹은 국내 GDP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드러났다. Ⓒ 경제개혁연구소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에서 ‘세습 자본주의’ 출현을 지적한다. 성장의 과실이 소수 자본가에게 쏠리면서, 부자 부모를 둔 사람이 아니고서는 부를 쌓을 수 없게 되는 상황이 닥쳤다는 경고다. 한국 사회에서는 재벌들의 세습 현상이 두드러진다. 김 원장은 재벌 3세들이 ‘땅 짚고 헤엄치기’식 사업 확장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재벌 1, 2세가 신산업에 주력했던 것과 달리, 3세들은 요식업에 진출해 골목 상권을 위협하고 있다. 세습 재벌은 혼인을 통해서도 권력 카르텔을 공고하게 다졌다.

김 원장은 세습과 혼맥으로 다져진 기업 권력을 ‘계급 위의 계급’이라고 명명했다. 법적 처벌과 사회 행정을 무시한다는 점에서다. 삼성그룹 재벌 3세인 이재용은 상속세를 아끼려고 편법을 동원했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비상장 회사의 전환사채를 발행해 이를 이재용이 독식하고, 차후 비상장 회사를 상장한다. 상장회사의 최대 주주가 된 이재용은 순환출자를 통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가 된다. 여기서 순환출자는 A 기업이 B 기업 최대 주주가 되고, B 기업이 C 기업 최대 주주가 되고, 다시 C 기업이 A 기업의 최대주주가 돼, A 기업의 최대 주주가 사실상 A, B, C 기업 모두를 장악하는 방식을 뜻한다.

적법한 절차를 밟았다면 상속액의 50%를 내야 했지만, 이재용은 이런 방식으로 상속세 한 푼 안 내고 삼성그룹을 장악했다. 최근에는 상속세를 피하기 위한 다른 방법으로 ‘일감 몰아주기’가 성행하고 있다. 모회사에서 자녀가 사주로 있는 자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식이다. 자회사가 성장하면서 절로 상속이 된다.

김 원장은 이재용이 10년 이상 감옥에 갇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에 대한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다. ‘기업은 원래 이윤 극대화를 위해 무엇이든 하는 집단’이라는 식의 항변이 통하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 법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삼성은 우리나라 표준입니다. 성공한 기업이니까 모두가 따라 하고 싶어 합니다. 삼성에 편법을 허용하면 우리나라 모든 기업이 삼성처럼 해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 8월 25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뇌물 공여 등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일어서 있는데 그는 5년형을 선고받았다. 일러스트 김대중 Ⓒ <한겨레> 갈무리

때리고, 무시하고, ‘노동’을 대하는 비뚤어진 시각

“득이 없다” “거지다” “외국인이다” “장애인이다”. 어린이들이 ‘노동자’라는 단어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은 것이다. 철없는 아이들의 생각만은 아니다. 기업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드러내는 일화다. 사람들은 노동자를 탈출해 CEO가 되기를 꿈꾼다. 모든 사람이 경영자가 되는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가르쳐왔다. 이런 교육을 받고 자란 아이들은 CEO를 선망하고, 노동자를 업신여긴다.

경제권력은 어떤 일을 해도 용서받는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은 직원들을 자신의 방에 불러서 구타한 뒤 합의금으로 무마하려 했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승무원에게 폭언을 쏟아낸 ‘땅콩 회항’ 사건을 비롯해, 재벌들의 폭력적인 행태는 2000년대 들어 급증했다. 재벌이 독점 권력이 된 이후 발생한 일들이다.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진압과정도 같은 맥락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경찰은 노동자에게 몽둥이를 휘두르고 테이저건을 쏘았다. 권력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주먹을 휘두르는 일은 김 교수가 주장해온 ‘전쟁정치’로도 설명된다. ‘전쟁정치’는 한국 사회가 6.25 전쟁 이후부터 지금까지 반대 의견을 ‘적’으로 간주하는 ‘전쟁’을 내면화 해왔다는 개념이다.

유가족 앞에서 ‘폭식투쟁’, 약자와 공감을 거부하다 

극심한 경쟁은 오늘날 ‘헬조선’을 만들어냈다. 첫 번째 징조가 공감 능력의 퇴조다. 빈부격차가 심해지면서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에게 더 이상 공감하지 않는다. 능력주의를 맹신하면서 약자에 대한 공감은 눈에 띄게 줄었다. 작년 여름 극우 사이트 ‘일베’ 회원들이 단식중인 세월호 유족들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게 대표적 예다. 사회 여론이 들끓었던 이 사건을 김 교수는 “그럴 수 있다”고 봤다. 세월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유족들의 요구는 떼쓰기로 보일 뿐이다. 이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교통사고’에 불과했다.

두 번째 징조는 우울증이다.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12년째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65세 이상 자살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노인빈곤율이 50%에 육박하는 상황이니 빈곤을 자살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보다 가난했던 6, 70년대 노인 빈곤율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김 교수는 빈곤이 아니라 관계 단절을 그 원인으로 꼽았다. 경쟁적인 사회에서 커뮤니티가 단절되고, 이웃 간 대화가 끊기면서 노인들은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다. 젊은 층은 정신질환에 시달린다. 2000년부터 15년간 정신과 진료를 받은 사람이 2배가량 늘었다. 경쟁사회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병이 됐다. 기업사회에서 우리가 치르는 비용이다. 김 교수는 기업사회를 “한국 사회를 좀먹는 병”으로 진단했다.

   
▲ 2009년 1월 20일 서울 용산구 남일당 건물 옥상에서 경찰이 점거농성중이던 세입자를 강경진압하면서 불이 나 여러 명이 숨졌다. Ⓒ 서울 소방재난본부

김 교수는 전쟁정치를 극복하는 것과 동시에, ‘소유자 지상주의’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표현은 소유권 지상주의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세입자 권리를 보장하는 데는 인색하면서, 임차인의 재산권 행사는 금과옥조처럼 지켜주는 게 바로 소유권 지상주의다. 독일에서는 세입자가 원하면 8년간 계약을 연장할 수 있고, 임대료 인상도 물가상승률 수준까지만 가능하게 정해뒀다. 재산 소유자 권리를 인정하긴 하지만, 한국처럼 절대적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것이다. ‘용산참사’는 소유권 지상주의의 대표적인 예다. 적절한 보상도 없이 단기간에 이뤄진 재개발 공사가 비극을 불렀다.

“용산에서 망루에 올라 타 죽은 세입자들의 모습이 우리나라 자본주의입니다.” 

‘갑질’하는 경제권력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사회적 약자들이 조직적 힘을 기르는 것이다. 예컨대 재벌 기업의 갑질에 대항하려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조직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길이다. 한국 노조조직률은 10% 수준이다. 앞으로도 높아질 기미는 없다. 사용자가 불분명한 하청 노동, 비정규 노동이 급증하면서 노조를 만드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김 교수는 비정규직을 조직화할 입법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한편, 사업장을 넘어 전체 비정규직을 포괄하는 조직을 제안했다. 예컨대 청년유니온처럼 세대별 노조를 만들거나, 지역, 고용 형태 식으로 규모가 큰 노조를 만드는 방안이다.

가장 중요한 건 정치권력이다. 김 교수는 기업을 견제하려면 정치권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선출된 권력만이 경제권력을 견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 SK 등 대부분 대기업이 최순실 게이트 관련 재판을 받는 지금이 ‘재벌개혁 최대 호기’라고 말하며 강연을 마쳤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곽호룡 기자

[이민호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영상부, 청년부, 시사현안부 이민호입니다.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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