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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도 간통죄도 ‘흑백논리’는 곤란
[마음을 흔든 책] 케빈 랠런드 등 ‘센스 앤 넌센스’
2015년 03월 20일 (금) 23:42:22 김선기 기자 goodgireen@gmail.com

헌법재판소가 지난달 간통죄 위헌결정을 내리면서 ‘개인의 성문제에 국가가 형벌권을 행사하는 것은 과잉’이라는 주장에 손을 들어주었다. 간통죄는 그동안 대학가 토론회에서도 단골 주제였다. 토론은 으레 찬반으로 나뉜 두 진영이 서로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집요하게 공격하고, 한쪽에서 말문이 막히면 승패가 결정되는 식으로 진행되곤 했다. 토론 과정에서 서로의 합리적 주장을 수용하고 발전적 합의를 모색한다는 것은 교과서에서나 찾을 수 있는 이상이었다. 간통죄 위헌결정을 둘러싸고 신문방송에서 펼친 토론들도 비슷했다. ‘간통죄가 폐지됐으니 바람피운 남편들이 당당하게 이혼을 요구할 것’이라는 등 한쪽으로 치우친 주장들이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기 바빴다.  

다윈 이후 150년간의 진화론 공방 정리 

   
▲ 센스 앤 넌센스 표지, 케빈 랠런드ㆍ길리언 브라운 공저 ⓒ동아시아

진화생물학자 케빈 랠런드와 진화심리학자 길리언 브라운이 함께 쓴 <센스 앤 넌센스>를 보면 과학자들도 ‘인간의 모든 특성을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와 ‘설명할 수 없다’고 나뉘어 서로를 공격했다. 예를 들어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인간은 특정한 성향(형질)을 유전 받아 행동과 사회구조를 형성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형질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부른다”고 주장했다. 많은 사회과학자들은 윌슨이 ‘인간은 특정한 성향을 유전 받는다’고 한 주장이 인간을 유전적으로 개량하려는 우생학으로 이어지면서 독일의 ‘나치즘’과 같은 극우적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이용됐다고 비판했다. 반면 사회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는 다시 사회과학자들의 주장을 반박했다. 자연선택으로 인종주의적 경향이 진화할 수도 있지만 여러 요인에 따라 진화된 경향 자체가 바뀔 수도 있는데, 사회과학자들은 인간의 생물학적 본성이 바뀌지 않을 거란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부당한 공격을 한다는 얘기다. 

이 책은 150년 전 찰스 다윈에 의해 출발한 진화론이 다양한 갈래로 발전하는 동안 사회생물학자와 사회과학자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은 물론 각각의 진화이론이 서로에게 보이는 배타성 등을 세밀하게 소개하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들 중 어느 한 쪽이 전적으로 옳거나 틀린 것이 아니며,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차이를 해소하려 노력하면 양립 불가능한 이론은 없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접근방법을 사용하고 통합하는 데 있어 다원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신봉한다”는 저자들은 어떤 주장이 단순히 옳거나 그르다고 보는 것은 ‘넌센스’고 각각의 장점을 가진 이론들을 하나로 엮어내는 통찰이 ‘센스’라고 봤다.  

저자들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스티븐 핑커, <진화심리학>의 데이비드 버스 등 대중적 저술로 인기를 모은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에도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진화심리학은 인간 진화사의 99%가 기원전 약 200만년전인 구석기시대(플라이스토세)에 형성됐다고 보는데, 정작 우리는 플라이스토세에 살던 인류 조상들의 실생활이 어땠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그러나 진화심리학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인색하지 않다. 현대 서구사회가 갖는 많은 의문들, 예를 들어 거미나 뱀을 보면 왜 두려움을 느끼는지, 친남매끼리 섹스하는 행위에 왜 혐오감을 갖는지 등을 진화심리학이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다고 인정했다. 

너무 ‘섹시’한 대중서들이 학문적 왜곡 초래   

저자들이 단호히 반대하는 것은 진화이론 대중서들이 ‘이것은 무조건 옳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인간은 이기적 유전자에 종속된 생존기계”라고 단언했고 에드워드 윌슨은 <통섭>에서 “생물학으로 모든 게 설명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저자들은 이런 매력적이고 단정적인 문장들이 진화론을 대중과 가깝게 만들어 준 건 사실이지만, 진화론이 진리인 것처럼 포장하고 학문적 왜곡을 일으키면서 진화론에 대한 거부감을 키운 데도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다시 간통죄로 돌아가 보자. 이 책에서 소개하는 진화적 게임이론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 수컷의 ‘바람기’와 암컷의 ‘헤픔’은 오랫동안 진화해 온 구애와 번식의 전략, 즉 인간 본성 중 하나다. 고전적 진화론의 해석에 충실하다 보면 간통죄를 처벌하는 것은 인간 본성을 법으로 금지하는 불합리한 일이 된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치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안다. 일부일처제 등 법이 규정한 가족제도와 가정의 가치를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저자들이 강조한 것처럼 단순한 흑백논리를 넘어선 ‘세련되고 발전적인 주장’이 필요하다. 형사처벌을 하지 않는 대신 징벌적 손해배상 등 민사적 책임을 무겁게 지우는 방안 같은 것이 타협점의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김선기 기자]
단비뉴스 취재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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