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교양특강] 전중환 경희대 교수
주제 ① 인간 행동의 진화적 토대

“배우 원빈과 개그맨 박휘순 중 누가 더 잘생겼나요?”

두 사람의 사진이 강의실 스크린에 뜨자 곳곳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중환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가 ‘진화심리학을 설명하기에 앞서 아주 어려운 문제를 내겠다’고 말한 직후 던진 질문이었다. 이 ‘쉬운’ 질문에 학생들은 단번에 ‘원빈이 더 잘생겼다’고 대답했다. 인간은 이렇듯 두 사람 중 누가 더 잘생겼는지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 과학기술은 아직 이를 구별할 수 있는 컴퓨터와 로봇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만큼 어렵고 복잡한 판단 과정을 인간의 마음은 해낸다.

누군가의 명령을 듣고 실행에 옮기는 일 또한 위대한 능력이다. 장난감을 가지곤 놀던 아이가 “장난감을 정리하고 자자”는 엄마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도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공학적으로는 구현해내기 어렵다. 인간의 마음은 수많은 공학적 문제들을 잘 해결하도록 설계된 연산장치라 할 수 있다.

경탄스러울 정도로 잘 디자인된 것은 우리 마음만이 아니다. 착시는 조명의 밝기와 관계없이 본래 사물의 밝기를 잘 파악하기 위해 생기는 현상이다. 하얀 눈이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도 하얗게 느껴지는 이유도 착시 때문이다. 카메라가 빛의 양에 따라 사물을 왜곡하는 것과는 현저히 다른 훌륭한 시각계의 능력이다.

▲ 왼쪽 그림의 A와 B는 명암에 차이가 없지만 우리의 눈은 A보다 B를 더 밝다고 인식한다. 일종의 착시현상이다. ⓒ 전중환

오묘한 생명에 대한 다윈의 대답, ‘자연선택’

복잡하고 대단한 이런 디자인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생물에게서도 쉽게 발견된다. 설치류를 잡아먹고 사는 부엉이의 깃털은 나무와 비슷한 보호색을 띤다. 많은 생물 종이 주변 사물을 이용해 모습을 감추는 방식으로 진화해왔다. 또 어두운 곳에 서식하는 박쥐는 초음파를 이용해 사물을 본다.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설계한 것처럼 복잡하고 효율적인 장치를 수많은 생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생물계의 이런 복잡한 설계는 어디서 온 것일까?

여기에 대한 다윈의 대답은 ‘자연선택’이다. 생물의 복잡한 설계는 자연선택이라는 과정에 의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1830년대 갈라파고스의 13종류 핀치새는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부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모두 먹이의 종류와 생활 형태에 적합하도록 맞춰져 있었다. 환경에 맞춰 변화한 성질은 다음 세대에 더 잘 전파되고, 이런 선택이 누적되면서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 핀치새들은 주로 씨앗을 먹고산다. 가뭄이 들어서 부드러운 씨앗이 급감하자, 딱딱한 껍질을 두른 씨앗을 부리로 까먹을 수 있는, 큰 부리를 지닌 핀치들이 더 생존에 유리하게 되었다. ⓒ 전중환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개체의 생존과 번식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영향을 주는 성질이 세대를 거치면서 좀 더 발현되는 과정입니다. 유전과 변이 과정에서 더 잘 살아남을 수 있는 요인만 있으면 무조건 일어납니다. 흔히 사람들은 겨울이 지나고 봄이 돼 꽃이 피는 것을 보면서 오묘한 자연의 섭리가 존재한다고 느끼지만 ‘자연의 섭리’나 ‘지적인 존재의 창조물’과 같은 설명으로는 지구상의 모든 현상과 과정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소심한 토끼가 자손을 많이 남긴다

진화심리학은 사회 현상을 이런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해 설명하는 학문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은 보통 ‘적자생존’으로 요약된다. 하지만 ‘힘센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법칙에 수많은 사람이 거부감을 느낀다. 진화심리학을 인류의 유전학적 개량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인 ‘우생학’쯤으로 여기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적자생존이라고 할 때 적자는 크고, 강하고, 힘센 개체로 이해합니다. 하지만 적자는 현재 처한 환경에 꼭 들어맞는(fit) 개체입니다. 더 강한 개체가 약한 개체보다 잘 번식하고 번영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라는 생각은 오해입니다.”

전 교수는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겁 많고 소심한 토끼’를 예로 들었다. 용감한 토끼와 겁 많고 소심한 토끼가 사는 작은 섬에 늑대가 나타났다고 가정한다. 적자생존의 논리에 따르면 더 강한 개체라 여겨지는 용감한 토끼들이 더 많이 살아남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용감한 토끼보다 늑대를 피해 숨어다니는 소심한 토끼가 상대적으로 자손을 많이 남길 확률이 높다. 결국 더 강한 개체보다 그들이 처한 환경에 잘 들어맞는 성질을 가진 개체군이 살아남는 것이다.

▲ 공포는 과거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상들에게 위협이 되는 요소들을 잘 피하도록 설계된 감정이다. ⓒ 전중환

인간의 마음도 생물학적 적응의 예다. 올리브 씨를 잘 빼내게 만들어진 도구는 목적을 알기 전 생김새만으로는 그 쓰임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올리브의 생김새를 동시에 관찰하면 이해하기 쉬운 것처럼 우리의 복잡한 심리를 이해할 때도 마찬가지다. 왜 그렇게 디자인되었는지, 어떤 진화적 기능을 위해 설계되었는지를 찾으면 그 특성을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공포라는 감정에 대해 우리를 괴롭고 불쾌하게 만드는 감정이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공포는 과거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조상들의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됐기 때문에 보편정서로 자리 잡았다. 뱀, 거미, 높은 곳, 밀폐된 공간, 낯선 무리를 보고 쉽게 공포를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우리가 더러운 똥을 보고 수백, 수천 가지 다양한 행동을 할 수도 있지만 모두가 회피하는 이유도 똥과 접촉하지 않는 것이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환경적 입력이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올려다볼 때보다 내려다볼 때 더 높아 보이는 이유

“보통 진화적 설명을 한다고 하면 ‘저 양반이 유전자 타령을 하겠구나’라는 생각을 합니다. 만약 제가 ‘질투를 진화적으로 설명해보겠습니다’라고 하면 ‘질투 유전자가 있다고 하겠지’ 하는 식입니다. 하지만 진화심리학의 주된 관심사는 심리적 적응입니다.”

전중환 교수는 진화심리학이 유전자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라고 강조하면서 ‘어떤 형질에 대해서든 진화적 가설을 쉽게 지어내기 때문에 반증 불가능한 사이비 과학’이라는 생각은 가장 흔히 하는 오해 중 하나라고 말했다. 진화심리학은 뭐든지 적응의 결과라고 대답하는 학문이 아니다. 복잡한 심리적 특성에 대해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한 적응인지 가설을 설정하고 예측, 검증한다.

예를 들어 높이를 지각하는 심리 기제는 경로 선택 시 발생하는 이득과 비용을 반영한다고 가설을 세운다. 실제로 실험을 해보면 같은 높이라 하더라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때 아래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것보다 더 높다고 인식한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에 높은 곳에 가지 않도록 설계된 탓이다. 이렇듯 진화심리학에도 가설을 세우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측을 하고 실질적으로 검증하는 과정이 존재한다.

많은 사람이 진화적 가설은 반증 불가능하다고 오해하지만, 실제로 가설 예측을 검증했더니 예측과 달라 폐기된 경우도 많다. 남성동성애자들이 자기 자식을 낳는 대신 조카를 더 사랑함으로써 게이 유전자를 후세에 남긴다는 가설이 있다. 하지만 동성애자 삼촌과 이성애자 삼촌에게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조사했더니 차이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인간은 자신의 유전자를 후세에 남기려고 한다’는 진화적 관점에서 동성애를 설명하다 보니 생긴 일이었다.

▲ 전중환 교수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진화심리학 사례를 설명하고 있다. ⓒ 하상윤

“제가 강의하는 과목은 심리학이라서 주로 여학생들이 많이 들어요. 그런데 학부 교양과목으로 ‘짝짓기진화심리학’이란 과목을 개설했더니 첫날 수강생 중 80%가 남자더군요. 그래서 강의 시작 전에 항상 ‘연애의 팁을 알려주는 과목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하죠. 하하.”

전 교수는 학생들에게 진화심리학이 바람기나 성매매를 정당화하는 학문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진화심리학이 바람기, 폭력, 살인 등과 같은 사회적 현상들을 인간 본성에서 유래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나쁜 행동을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 또는 ‘면죄부를 제공하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남성이 여성보다 성희롱을 더 많이 하도록 진화했다’고 이야기하면 ‘성희롱이 옳다는 거냐’며 반문하는 식이다. 하지만 과학은 설명을 제공할 뿐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사회적 현상들의 발생 이유에 대한 인과적 설명을 얻는다고 해서 정당화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진화심리학을 암 연구에 비유해 봅시다. 의사들은 암 유발 원인을 연구하면서 환자에게 ‘네가 죽는 이유는 이러이러하니 편안히 죽을 준비나 해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암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지식을 설명하고 이를 기초로 암 예방법과 치료법을 연구하죠. 진화심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과학적 설명은 여러 사회 현상들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조준상 박인수 홍기빈 김동춘 구갑우 전중환 박상훈 선생님이 강연을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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