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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비 내리는 밤에
[상상사전] ‘흠’
2017년 08월 07일 (월) 00:02:16 강훈아 danbi@danbinews.com
   
▲ 강훈아

요사이 밤마다 도둑비가 내린다. 한낮의 하늘은 구름만 끌어안고 있다가 기온이 떨어지는 밤에 재채기하듯 비를 뿌린다. 그래도 밤비는 내리면서 바로 자신의 강림을 알리는 반면 밤눈은 아침이 밝아야 자신의 존재를 과시한다. 밤비는 소리를 내며 자신의 처음과 끝을 알린다. 밤비를 좋아하는 사람은 그 선연한 자기소개에 반응하는 이들이다.

도둑비 내리는 여름밤, 늦게까지 장관 후보 청문회를 지켜보다가 답답해졌다. 장대비 같은 시원한 한 방은 없고 그저 후보자의 작은 흠을 들추느라 시간을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대부분 후보는 코미디 같은 청문회를 통과해 임명장을 받았다. 이들의 살아온 이력과 취임 후 태도는 오히려 정권교체를 염원한 사람들에게 가뭄에 단비 같은 쾌감을 주기도 했다. 관객은 후보자의 잘못을 연민하며 사회적 면죄부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끝내 낙마한 후보에게도 안타까운 관객의 시선이 남는다.

검증의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까? 청문회에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모두 노출된다. ‘젊은 시절 누구를 만났는지’, ‘결혼은 어떻게 했는지’ 같은 것들이 송곳처럼 떠오른다. 흠잡을 만한 삶을 살지는 않았다고 다짐해도 질문을 벗어날 수 없다. 질문은 개인 삶의 선택들을 파편적으로 부각하거나 축소한다. 흠을 키우고 지우며 삶의 무게를 도량한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개인의 삶이 통째로 재단되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이 후보자와 우리에게 과연 좋은 일인가?

   
▲ 청문회에는 한 사람의 삶의 궤적이 모두 노출된다. ⓒ flickr

청문회는 후보자의 이상을 논하지 않으므로 그의 능력은 검증받지 못한다. 그래서 이 상황은 우울하다. 관객은 공허한 말에 반응해야 한다. 무결점의 삶을 옹호하자니 딱 맞춘 삶을 지닌 사람이 없다. 흠 있는 삶을 옹호하자니 원칙을 무시하는 것 같다. 이를 벗어나는 손쉬운 방법이 일방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관객은 후보자의 삶을 연대의 부채 없이 판단한다, 연민하거나 비난하거나. 다만 개인의 삶을 품평하고 정의한 뒤 빠르게 치워버리고 싶을 뿐이다. ‘삶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었다’는 한 후보자의 말은 품평 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조였을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보존하는 방법은 그것을 관객 앞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의 실체를 드러낼 수 있는 검증 기준을 세우고 후보를 걸러내야 한다. 그래야 사소한 흠결도 사회적으로 논할 만한 가치가 있게 된다. 나는 비 내리는 날이 좋다. 아무것도 아닌 날에, 마른 땅을 적시는 비. 후두두 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자신을 이야기하는 비. 어느 한 부분 드러내거나 숨김없이, 처음과 끝을 올곧게 말하는 비. 재채기하듯 단속적으로 내리는 비가 아니라 시원하게 내리는 장대비를 보고 싶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0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경북대 졸업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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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평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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