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7.12.13 수
> 뉴스 > 칼럼 > <제10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
     
우리 안의 폭력성 '쉽볼렛 검증'
[상상사전] '틈'
2017년 08월 04일 (금) 00:11:26 조은비 기자 finestrain@naver.com
   
▲ 조은비 기자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에 들어선 관람객들이 전시장 콘크리트 바닥에 난 거대한 균열을 보고 겁에 질려 건물 밖으로 뛰쳐나가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10년 전 일이지만 균열의 원인은 지진이나 부실공사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미술작품이었다. 나는 책에서 이 이야기를 접했다.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있었다면 몹시 불쾌했을 거라는 상상을 했다. 관람객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안기는 작품이라니!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혀를 차며 책장을 넘겼다.

쉽볼렛. 문제작의 이름이었다. 쉽볼렛은 서구 문화권에서 구별 짓기의 상징으로 쓰이는 수사다. 유래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사 시대의 전쟁 서사다. 암몬 족을 쳐부순 길르앗 족을 에브라임 족이 시기했다. 이번에는 두 종족 간에 내전이 발발해 지도자 입다가 이끈 길르앗 족이 승리했다. 에브라임 족은 패잔병 신세가 되어 요단 강 서편으로 도주했다. 입다는 적군이 도망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요단 강 나루턱에서 에브라임 군사들을 기다렸다. 관문 하나를 만들어 놓고.

   
도리스 살세도의 작품 '쉽볼렛'. © 도리스 살세도

"쉽볼렛을 발음해보시오." 우리나라로 치면 대개 ㅆ(쌍시옷) 발음에 서툰 경상도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쌀' 발음을 하라는 식의 검증 절차가 시작된 것이다. 그 결과, '쉽'을 '십'으로 발음한 4만2천명이 허망하게 목숨을 잃었다. 쉽볼렛은 적군과 아군을 가르기 위해 고안된 영리한 피아식별법이라 할만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그러나 4만2천명 모두가 정말 에브라임 족이었을까? 구강 구조가 특이해 '쉽' 발음이 어려운 아군이 섞여 있지는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 독특한 억양이나 발음을 기준으로 내 편과 적을 가르는 방식을 '쉽볼렛 검증'이라 부르게 됐다.

"쥬고엔(十五円)을 발음해보시오." 우리 민족에게도 자의적이고 정치적 의도가 다분했던 '쉽볼렛 검증'의 역사가 있다. 94년 전, 관동대지진 때 일이다. 대재앙으로 흉포해진 민심이 폭동으로 이어질까 두려워한 일본 관료들은 재앙의 원인이 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일본 식민지 시대 최약자였던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도 문제를 제기할 이는 없었다. 탁음인지라 발음이 어려운 '쥬고엔'으로 조선인과 일본인을 구별했다. 다수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학살이 자행됐다. 희생자에는 탁음을 발음하지 못하는 일본인들도 상당수 포함됐다.

   
▲ 도리스 살세도, 쉽볼렛, 테이트모던. © <가디언>

콜롬비아 출신 이주 작가 도리스 살세도는 쉽볼렛의 허점을 시각화하기 위해 견고한 바닥에 커다란 균열을 냈다. 구조화한 폭력의 비합리성은 균열로 참혹해 보이는 광경 자체에 있지 않다. 틈. 갈라진 표면에 나 있는 경계 사이 깊숙한 틈을 들여다봐야만 폭력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 살세도가 창조해낸 쉽볼렛의 세계에서 틈은 비어있는 무(無)의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틈은 유(有)의 공간이다. '쉽볼렛 검증'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개인적 특성이 빽빽이 매몰된 시멘트로 표현된 공간, 그것이 틈이다.

'쉽볼렛 검증'의 피해자는 여전히 양산되고 있다. 그들은 좁은 틈에 갇혀 불만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한 채 숨죽이며 살고 있다. 한 탈북자가 재입북하자 감시의 눈총을 받아야 하는 탈북민들, 외국인 노동자 범죄가 발생하면 정신적 알리바이를 강요받는 외국인 노동자들. 애꿎은 사람들이 우리 안에 스며든 거대한 쉽볼렛 세계의 틈바구니에서 고통받고 있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10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입니다. 

* 첨삭 과정을 보시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풍선도움말로 첨삭글 보는 방법>
► 워드2007인 경우
메뉴→검토→풍선도움말→풍선도움말에 수정내용표시
► 워드2010인 경우
메뉴→검토→변경내용표시→풍선도움말→풍선도움말에 수정내용표시

편집 :  곽호룡 기자

[조은비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부장, 영상부, 시사현안부 조은비입니다.
있는 그대로 세상을 느끼고, 쓰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 도둑비 내리는 밤에
조은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