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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에게 사다리를 내려주자
[상상사전] ’불평등’
2017년 07월 30일 (일) 00:56:24 박수지 기자 wbdjffl514@naver.com
   
▲ 박수지 기자

단 1시간 동안 소득을 가진 모든 사람이 지나가야 하는 행진을 시작한다. 행진자들은 키순으로 서고, 키 높이는 소득에 비례한다. 처음 등장한 이들은 머리를 땅에 박은 채 물구나무서서 걸어온다. 빚쟁이와 손해 보며 장사하는 자영업자들이다. 5분 뒤, 신문배달원과 실업자 등 바로 섰지만, 땅바닥에 착 달라붙은 ‘개미 인간’들이 나온다. 10분이 지나자 키가 간신히 1m를 넘는 ‘난쟁이’ 저임금 노동자들이 나와 30분이 넘는 행렬이 이어진다. 48분이 되자 드디어 평균 신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고 행진이 끝나기 6분 전 2m가 넘는 대졸 회사원과 교장 선생님이 등장한다. 그 후 키가 갑자기 쑥쑥 커지더니 5m가 넘는 군 대령과 변호사가 나오고, 마지막 몇 십 초를 남겨두고는 수십 m 키를 자랑하는 ‘거인’ 기업가들이 나타난다. 행진이 끝나기 몇 초 전 등장한 사람들은 구름에 얼굴이 가려 누군지 알아볼 수 없다.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펜이 그린 ‘난쟁이 행렬’이다. 60분 중 무려 48분 동안 개미인간과 난쟁이들의 행진이 이어지는 모습은 어느 나라든 빈부 격차와 소득 불평등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준다. OECD 국가 중에서도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는 미국이다. 그 턱밑에 와 있는 우리나라는 상위 1%의 소득 비중이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2012년 기준 우리나라 소득 상위 1%가 한 해 버는 돈은 전체의 16.6%를 차지한다. 소득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44.9%다. 나머지 90%의 사람이 45.1%의 소득을 나눠 가진다.

   
▲ 네덜란드 경제학자 얀펜의 '난쟁이들의 행진'. Ⓒ EBS 다큐프라임 갈무리

우리나라는 1990년대 중반까지 확대되던 중산층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축소되면서 상당수가 빈곤층으로 전락했다. 동시에 저소득층과 빈곤층의 소득이 경제가 성장한 만큼 늘어나지 않으면서 소득 불평등이 더 악화했다. 가난한 사람들은 빈곤의 덫에 갇혀 있고 중산층은 제자리걸음을 하는 사이 부자는 갈수록 더 부자가 됐다. 심지어 집값과 물가는 오르고 돈 쓸 곳은 늘어나면서 월 소득보다 지출이 많은 ‘적자 가구’가 2013년 전체 가구의 23.5%에 이르렀다. 그들은 906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18%다.

경제가 불안해지자 소비가 위축되고 가계부채는 급증했다. 기업은 더 이상 투자하지 않고 저축하기 바빴다. 범죄와 자살률이 증가하며 사회가 불안해지고, 청년들은 ‘N포세대’가 되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했다. 나라가 나날이 발전하고 세계 11위 경제 대국이 됐다는데 절대다수 국민은 결코 행복하지 않다. 2014년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는 OECD 34개국 중 33위다. 실업, 빈부격차, 불평등으로 가득한 나라에서 ‘대부분 사람’이 행복할 수는 없다.

폴 크루그먼은 <새로운 미래를 말하다>에서 ‘사회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불평등을 없애야 하며, 그 해법은 부자들에게 세금을 거둬 나누는 것’이라 말한다. <경제원론>의 저자 알프레드 마샬도 ‘부유한 사람들이 공공의 복지에 강한 관심을 가진다면 그들의 재력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활용할 수 있고 빈곤이라는 최대의 해악을 제거하는 데 공헌할 수 있다’며 부의 분배를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오히려 기업의 법인세를 인하하고 각종 세금 감면 혜택을 줘왔다. 게다가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2014년 OECD 34개국 중 33위, 복지만족지수도 31위로 거의 꼴찌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끊겨 ‘흙수저’가 아무리 노력해도 ‘금수저’가 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1년 서울대 입학생의 65.7%가 서울 내 15개 특목고 출신이거나 강남⋅서초⋅송파 등 이른바 ‘강남3구’ 출신이다. 상위 20% 가구가 교육비로 쓰는 돈은 하위 20%의 8배나 된다. 무한경쟁이 강요되는 교육환경에서 아이들은 출발선부터 다른 달리기를 하고 있다. 오죽하면 개천에서는 더 이상 ‘용’이 아닌 ‘욕’만 나온다고 할까?

이런 불공평한 달리기가 계속되고, 소득 격차가 그대로 다음 세대에 물려진다면, 결국 소득 불평등의 문제는 사회계급으로 고착된다. 물론 부자들의 소득세 한계세율을 높이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소득 보조를 강화하면 소득 격차를 줄일 수 있다. 법인세를 강화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최저임금을 높이면 저소득층의 살림살이가 분명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경제력이 자식의 미래를 결정하는 절망적인 사회에서 이와 동시에 필요한 건 ‘나도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는 희망이다. 가난한 집에 태어났어도 높은 곳에 오를 수 있게 해주는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 바로 ‘교육’이다.

교육은 출발선의 차이를 줄이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당장 사교육을 모두 없애고 100% 공교육만 할 수는 없겠지만, 과도한 사교육 시스템은 반드시 손봐야 한다. 무엇보다 선행 학습 사교육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정규 과정을 미리 다 배운 부잣집 아이들이 정작 공교육 현장에서는 잠들고 그 모습에 교사가 의욕을 잃어 가난한 집 아이들이 공교육마저 제대로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멈춰야 한다. 학교 교실이 숨 쉬지 않은 채 죽어있고 배움에 차별이 있는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는 “모두에게 할 일을 주고, 일한 대가로 먹고 입고, 누구나 다 자식을 공부시키며, 이웃을 사랑하는 세계”를 꿈꿨다. 조세희는 “더 이상 이 소설이 읽히지 않는 시대를 바란다”고 했지만, 올해 300쇄를 돌파했고, 난쟁이가 꿈꾼 세상은 더욱 멀어져 버렸다. 난쟁이는 틈만 나면 사다리를 타고 굴뚝에 올라 달을 바라보고 종이비행기를 날리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요즘 가난한 집 아이들은 달을 보려면 지하실부터 뚫고 올라와야 한다. 부유층이 자신의 신분 하락을 막고 저소득층의 신분 상승을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유리 바닥’을 부셔야 한다. 난쟁이들이 유리 바닥을 깨고 지상으로 올라와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기 위해서는 사다리가 필요하다. 제대로 된 복지와 공정한 교육이라는 사다리를 내려줘 그들을 응원해야 한다. 난쟁이도 개미 인간도 모두가 지상으로 올라와 햇빛을 보고 꿈을 키우는 정의로운 사회! 꿈은 역시 현실과 반대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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