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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을 복지국가로 만든 ‘소수의견’
[인문교양특강]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
주제 ①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2017년 02월 24일 (금) 14:43:57 신혜연 송승현 서혜미 기자 s01928@naver.com

“저널리스트는 한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기왕이면 좋은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됐죠.”

<불평등 한국, 복지국가를 꿈꾸다>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 <어떤 복지국가에서 살고 싶은가?> <추적, 한국 건강불평등>.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는 복지 관련 책을 4권이나 쓴 복지전문가다. 대학에서 복지를 전공하지도 않았고, 복지부 출입 기자도 아니었다. 이 선임기자는 “기자의 역할을 고민하다 보니 복지전문가가 돼 있었다”고 털어놨다.

‘더 좋은 사회’ 고민이 복지전문가로 이끌어

2006년 <한겨레>는 건강불평등 기획기사를 8차례에 걸쳐 내보냈다. 기사는 매번 1면을 차지하며 공공의료 서비스에 대한 문제 제기를 했다. 이 선임기자가 영국 유학 시절 ‘건강 불평등’ 수업을 들었던 경험을 살려 기획한 기사였다. 전국의 복지전문가들과 만나 토론하고, 노동자들을 만나 건강 실태를 물었다. 사는 곳에 따라, 재산 정도에 따라 기대수명이 달라졌다. 영국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하는데 반해 한국은 손을 놓고 있었다. 차이는 복지에 있었다. ‘Better Country, Better Society’ 라는 신념은 그를 복지 전문가로 이끌었다.

   
▲ 이창곤 <한겨레> 선임기자가 ‘복지국가를 만든 사람들’이란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신혜연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일까요?”

갑자기 날아온 질문에 학생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이 선임기자는 ‘복지’라는 개념부터 정의했다. 복지는 질병, 실업, 부양자의 사망과 같은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복지국가이되, 낮은 수준의 복지국가’라는 것이 통설이다. 이 선임기자는 그렇기 때문에 한국 기자들이 “복지의 역사를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선임기자에 따르면 “모든 역사적 사건의 성취와 비극은 당대의 인물들의 생각과 행위의 결과”다. 역사를 이해하면 현재를 알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 그는 역사에 쉽게 접근하는 방법으로 인물에 초점을 두는 방식을 권한다. <복지 국가를 만든 사람들>은 이런 생각에서 나온 책이다.

‘빈민’이라는 낙인과 싸우다

이 선임기자는 ‘빈민’에 대한 고정관념과 싸운 웹 부부의 이야기로 운을 뗐다. 통념상 빈민은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이다. 이는 17세기 영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601년 엘리자베스 여왕 때 만들어진 빈민법은 빈민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법이다. 자립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노동 능력이 있는 빈민은 노동장에 강제 수용됐다. 고아와 빈민 아동에게는 직업교육을 강제했다. 찰스 디킨즈의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당시 상황이 잘 담겨있다. 주인공 올리버가 열악하게 지내는 고아원은 ‘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달았지만 연고 없는 아이들을 모아둔 ‘수용소’에 가까웠다.

   
▲ 찰스 디킨즈의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는 당시 빈민들의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다. 2005년 개봉한 영화 <올리버 트위스트> 갈무리. Ⓒ Daum 영화

“당시 영국인들 생각에 게으르고 나태한 자들은 통제하고 처벌해야 할 대상이었습니다. 빈민법은 사실상 ‘빈민 통제법’이었죠. 하지만 빈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라고 말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바로 웹 부부입니다.”

비아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은 영국 복지국가의 선구자들이다. 이들은 “빈민이 아니라 환경이 문제다”,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빈민에 대한 고정관념을 반박했다. 1905년 영국 빈민법위원회에 참여한 비아트리스는 ‘마이너리티 리포트(소수자 보고서)’를 남긴다. 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 가운데 소수의견을 정리한 내용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위원 20여 명 중 5명을 뺀 나머지는 “빈민은 게으르고 격리가 필요하다”는 통념을 고수했다. 반면 비아트리스는 빈민법을 폐지하고 빈곤의 구조적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비아트리스 웹과 시드니 웹은 영국 복지국가의 선구자다. Ⓒ <한겨레> 자료사진

특히 성별과 계급을 떠나 모든 이들이 적정한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국민복지기본선(national minimum)’ 개념은 빈곤에 대한 생각을 바꾼 역사적 발명으로 평가받는다. 비아트리스는 “어린이에게는 충분한 교육을, 신체장애가 없는 이들에겐 생활임금을, 아픈 이들에겐 치료를, 일할 수 없거나 나이든 이들에게는 적정한 생활 보장을” 국가가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난은 나라님이 구제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빈민법을 폐쇄하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을 왜 우리가 도와야 하냐는 논리가 더 우세했죠. 결국 웹 부부의 시도는 좌절되고 소수파의 아이디어를 담은 보고서는 서랍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독립 염원하던 옥윤이 없었다면…

20세기 초, 당시 영국에서 웹 부부의 개혁안은 실패했다. 하지만 웹 부부의 구상을 이어받아 현실로 만든 인물이 나타났다. ‘영국 복지국가의 아버지’로 불리는 윌리엄 베버리지다. 그는 1942년 ‘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유명한 베버리지 보고서를 발간해 복지국가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이후 1945년 단독 집권한 영국 노동당은 보고서의 주요 개념을 법제화했다. 국가보건서비스(NHS)법, 실업급여법, 가족수당법 등이 만들어져 이 시기 영국 복지국가의 틀이 완성된다. 이 선임기자는 이 대목에서 희망을 이야기한다.

“빈민법 폐지에 실패했을 때, 웹 부부도 좌절했겠죠. 그래서 이들은 만사 제치고 세계일주 여행을 합니다. 그러다 일본에 들르고, 우연히 한국도 방문합니다. 1910년대 초에 말이죠. 거기서 이들이 묵었던 곳이 영화 <암살>에서 옥윤이 자신의 여동생과 만나는 장소인 경성 손탁호텔입니다.”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담은 영화 <암살> 포스터. Ⓒ 쇼박스

영화 <암살>의 주인공 옥윤(전지현 분)은 엄혹한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독립운동을 하는 것에 대해 주변에서는 냉소를 보낸다. 그러나 옥윤에게 중요한 건 그가 끝까지 제국주의에 맞서 싸웠다는 사실 그 자체다. 그로부터 30년 후 조선은 독립을 맞는다. 옥윤같은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웹 부부가 눈 감을 무렵, 영국 노동당이 집권해 복지국가의 시대를 연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정 이념이 당대엔 수용되지 않더라도 언젠간 또 다른 형태로 부활해서 제도로 구축될 수 있단 걸 역사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비아트리스는 실패할 일을 벌였지만,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필요한 일을 해온 겁니다. 마치 <암살>의 옥윤이 그랬던 것처럼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민수아 기자

[신혜연 기자]
단비뉴스 전략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신혜연입니다.
함께 걷겠습니다. 우리의 더 나은 내일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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