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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복지'로 진정한 공정사회를
[현장] 장하준 교수 초청강연 ①
2016년 12월 31일 (토) 21:07:02 박희영 기자 hyg91418@naver.com

외환위기 이후 20여년. 1인당 연평균 소득 증가율 6%에 육박하는 고도성장을 이뤘던 드라마는 막을 내렸다. 시민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드러난 권력형 비리에 분노해 생업을 뒤로한 채 매주 광장을 찾는다. 국민소득 3만달러를 바라보는 한국 국민은 왜 행복하지 않을까?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고 국회가 개헌특위를 구성하기로 합의하면서 한국 정치는 전환의 기회를 맞았다. 정치만이 아니다. 경제 역시 새로운 전환의 길을 모색할 시점이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전국사회연대경제 지방정부협의회 초청으로 서대문구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펼친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 강연에 다녀왔다. 장 교수는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등의 책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맹점을 날카롭게 파헤쳐 주목받는다.

   
▲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가 지난 23일 연세대 동문회관에서 ‘더불어 함께, 대한민국 경제’를 주제로 강연했다. ⓒ 박희영

국민소득 2만달러 한국이 ‘헬조선’인 이유

장 교수는 소득 중심의 인간 복지 측정은 한계가 있다는 주장으로 말문을 열었다. 쉽게, 현대 주류 경제학에서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가치가 있다’고 본다. 반면, 평균적으로 전체 노동의 30%를 차지하는 가사노동은 국민소득 계산에 포함하지 않는다. 그러니, 소득 중심 복지측정은 실제 삶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뿐만이 아니다. 장 교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부의 축적 과정의 도덕성이다.

“문제는 고도성장한 효과가 워낙 크다 보니까, 이게 하나의 ‘신화’가 돼버린 거예요. 소득만 높으면 된다. 경제성장만 빨리하면 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소득’이란 개념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가치가 있다고 봐요. 국민소득 2만불이라고 할 때, 교육에 도움이 되는 책을 많이 만들어서 돈을 벌었는지, 불량식품을 많이 만들어서 돈을 벌었는지는 묻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 경제학에서 시장은 일단 옳다고 보기 때문이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는 ‘선진국 척도’로 통용돼왔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2만7940달러(2015년 기준). 2018년 3만 달러에 오를 전망이다. 장 교수는 이 또한 ‘평균’일 뿐, 국민 전체 생활 수준의 실상을 반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는다. 따라서 소득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노동’과 ‘공정성’이라는 요소를 꺼내 든다.

“노동문제 무시는 인생 절반 무시하는 것”

장 교수는 “경제학계를 지배해온 신고전파는 소비를 통한 효용 극대화를 인간 삶의 궁극적인 목표로 보지만 노동은 ‘필요악’이라고 보고 거의 무시해왔다”고 짚어준다. “하지만, 인간의 자아는 노동과정에서 형성된다”는 게 장 교수의 시각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선진국 가운데 싱가포르 다음으로 일을 많이 한다”며 “노동문제를 무시한다면 우리 인생의 절반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그에 따르면 노동은 신체적 복지, 지적 복지, 심리적 복지 등에 영향을 미친다. 장 교수는 “노동시간이 길면 장기적으로 건강에 해롭고, 찰리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에 나오는 것처럼 나사만 조이면 사람이 미쳐버리며, 고용 불안은 심리적 스트레스로 연결된다”고 풀어낸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은 노동시장 규제를 완화해 고용불안이 커졌다.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22.4%(2013년 기준)로 OECD 4위이며, 평균(11.8%)의 약 두 배에 달할 만큼 높다. 장 교수는 “정규직도 조기 퇴직 관행이 생겨 과거보다 고용불안이 심해졌고, 자영업자도 자기 착취를 통해 근근이 살아가는 생계형이 3분의 1을 차지하기 때문에 고용 불안에 해당한다”고 사실상 ‘전 국민의 고용불안’을 우리 사회 특징으로 꼽는다. 국민소득 수준에 비해 노동시간, 고용 안정 등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하다는 지적이다.

기회 균등하다고 공정한 사회일까?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가’도 국민 행복과 직결된다. 장 교수는 “사회 구성원이 사회 질서가 공정하다고 믿어야 행복할 수 있는데, 과연 공정한 사회가 무엇이냐는 점에 논쟁이 있다”며 기회만 균등하게 주면 공정한 사회로 보는 시장주의 경제학자들 주장에 물음표를 단다. 그는 “기회 균등 사회를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실제로 기회 균등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미국 명문대의 ‘동문자녀특혜입학제도’를 비판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다”고 날을 세운다. “체육 경기에서 공정한 경쟁을 담보하려면 선수들의 기본 바탕이 비슷한 토대 위에 놓여야 하므로 체중, 성별 등으로 나눠 불공정 경쟁 조건을 구조적으로 없앤다”며 “실제 인생에서도 공정한 경쟁이 펼쳐지려면 기회 균등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결과의 균등도 보장하는 장치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2~3살 때까지는 영양 상태가 두뇌발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쳐요.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그때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지능이 낮습니다. 학교 다니기 시작하면 공부 못한다고 깔보는데, 그 아이의 죄는 아니잖아요. 부모가 아이에게 최소한의 영양, 의류, 교육, 환경을 제공해줄 수 있는 소득을 보장해주지 않으면 그 사회는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라고 볼 수 없어요. 복지가 잘 돼 있는 덴마크나 스웨덴 같은 나라에서는 부모 소득수준과 자식 소득수준의 상관관계가 20% 정도 밖에 안 되는데, 미국이나 영국의 경우는 80%에요. 어느 집안에서 태어났느냐에 따라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정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부의 재분배 실패한 한국 자살률 OECD 1위

결과의 평등을 이루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복지 확대를 통한 소득 재분배와 시장 규제를 통한 경제적 약자의 보호다. 장 교수는 “한국은 중소기업 보호 고유업종 지정 등으로 대기업을 제약하는 선별적 보호 방식을 써서 시장 자체를 규제했고, 불평등을 줄이는 데 나름대로 효과는 있었다”면서도 이 방식이 갖는 구조적 문제를 찾아낸다. 체계적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국민을 진정으로 공정하게 대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소농, 소상인, 중소기업, 자영업자 중심으로 보호가 집중돼 실업자나 노인 등은 경제적 약자인데도 보호받지 못한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2008년에서 2012년 평균 국민소득 대비 복지지출이 9.3%로 OECD 국가(평균 21.7%) 중 멕시코 다음으로 낮다. 소득 재분배가 매우 취약하다는 증거다. 장 교수는 “재분배가 0에 가깝기 때문에 불평등도가 평균 이상으로 높다”며 “한국이 자살률 1위를 기록하는 것은 재분배가 안 되는 과거 시스템이 완전히 한계에 봉착했다는 증거”라고 짚는다. “한국은 1990년대 중반까지 자살률이 OECD 평균 이하였는데 20년 사이 치솟은 것”이라며 “지금 한국 자살률은 OECD 평균치의 3배, 노인자살률은 OECD 평균치의 4배에 이른다”고 심각성을 깨우친다.

장 교수는 “복지와 성장이 상충관계라는 주장은 실증적 근거가 없다”고 부정적 견해를 밝힌다. “미국도 1940~50년대 트루먼, 아이젠하워 대통령 때 최고 소득세율이 92%였고 1980년대 들어와 레이건 대통령이 40%로 내렸다”며 “세금이 계속 내려갔는데, 미국의 투자율과 성장률도 계속 떨어졌다”고 파헤친다. “미국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이 1.5배가량 높은 스웨덴이나 핀란드의 성장률이 더 높다”는 사례를 들려준다. 그는 “미국 같은 경우 국민의료보험도 없고 다 직장 의료보험이다 보니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목숨 걸고 저항하지만, 실업수당과 직업재교육이 제공되는 복지국가에서는 해고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적다”며 “복지는 신속한 구조조정을 가능하게 해 오히려 성장을 돕는다”는 논리를 편다.

복지는 ‘무상혜택’ 아닌 ‘공동구매’

행복 증진을 추구하는 복지국가로 방향을 틀기 위해 가장 어렵지만, 꼭 필요한 것은 사회적 인식의 전환이다. 장 교수는 “사회복지를 자꾸 ‘무상복지’라고 하는데, 틀린 말”이라며 “가난한 사람도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를 낸다”고 ‘무상’이란 개념의 오류를 바로잡는다. 그는 “복지는 공동구매”라며 “의료보험, 실업보험, 노후보험 등 사회보험을 모두 구매하려면 비싼데, 5천만명이 공동으로 구매해서 할인받는 식”이라고 풀어준다.

가난한 사람만 도와주는 ‘선별복지’에 대해서는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며 “중산층 이상의 사람들은 세금만 내고 혜택은 없어 불만이 생기고, 복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사회적 낙인이 찍혀 이등 시민 취급을 받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공정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장 교수가 강조하는 방법은 ‘보편복지’다. “선별적 복지는 소득 수준 등 조건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운영비용이 많이 드는 비효율적인 제도”라며 “시민권에 바탕을 둔 보편적 복지가 진정한 사회복지이고,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힘주어 결론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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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박희영 기자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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