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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를 위해 사회가 희생돼야 한다고?
[사회교양특강]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주제 ① 왜 다시 칼 폴라니인가 I
2017년 07월 24일 (월) 17:53:01 최지영 박찬이 기자 8808082@gmail.com

‘인간과 자연환경의 운명이 순전히 시장 메커니즘 하나에 좌우된다면, 결국 사회는 완전히 폐허가 될 것이다.’ 1944년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Karl Polanyi, 1886~1964)는 그의 저서 <거대한 전환>에서 시장주의를 이렇게 진단했다. 70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그의 진단에 수렴하고 있다. 자국의 경제적 이익과 시장 효율성을 우선하는 미국 트럼프 정부와 영국 브렉시트를 폴라니는 이미 예견한 셈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 첫 번째 시간,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은 ‘왜 다시 칼 폴라니인가’를 주제로 강의했다. 폴라니는 지난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이 드러나면서 경제 민주화와 '사회적 경제'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 학자로 다시 평가받고 있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이 ‘왜 다시 칼 폴라니인가’를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임형준

인간 본성이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잘못된 전제

홍 소장은 “인간의 본성이 ‘호모 에코노미쿠스(경제적 인간)'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신자유주의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짚어나갔다. 그는 신자유주의 폐해의 출발점이 ‘인간의 본성은 경제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기본전제에 있다고 말했다. 

“경제학 교과서 첫 장을 펼치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며 주어진 자원은 유한하므로 선택을 알뜰하게 잘하는 것이 경제다.’ 그래서 인간이 나아갈 바는 경제적 인간이라고 가르칩니다. 경제적 인간은 두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첫 번째, 이기적이다.’ 근데 이건 동물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두 번째 요소가 나옵니다. ‘합리적이다.’ 합리적으로 선택해서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존재가 경제적 인간이라는 겁니다.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해보고 내 이익이 가장 큰 게 무엇인지를 따져본다는 거죠. 경제적 인간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비합리적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비합리적 인간을 조금 경멸하는 경향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인간의 본성인 것 같나요?”

홍 소장은 18세기 사회경제학자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설’도 “인간의 본성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전제한 데서 출발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지낸다. 반복된 싸움 끝에 사람들은 교환하는 게 서로에게 이득인 점을 발견한다. “나는 물고기를 잘 잡으니 물고기 3마리를 잡고, 너는 사슴을 잘 잡으니 사슴을 잡아서 서로 교환하자”는 식이다. 즉 사회는 인간 상호의 이기적(혹은 합리적) 동기에서 교환을 시작했고, 그 결과 시장이 형성됐다는 말이다.

경제 안에 '묻어 들어간' 한국사회

시장에서 물물교환하다 보니 잉여생산물의 처리, 즉 보관 문제가 생겼다. 이를 계기로 교환의 매개수단인 화폐가 만들어졌다. 화폐의 탄생은 부의 축적을 불러왔다. 이는 사적 소유를 발달시켰고, 소유의 격차에 따라 계급이 나타났다. 즉 인간의 본질은 경제적 인간이고, 사회는 경제 때문에 생겨났다는 논리다.

홍 소장은 ‘인간의 본성이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전제가 ‘경제가 사회 안에 묻어 들어간 게 아니라 사회가 경제 안에 묻어 들어가 있다’는 명제로 연결된다는 점을 짚었다. 쉽게 말해, ‘경제성장이 대한민국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경제성장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 현실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되면 모두 달려듭니다. 폴라니는 이를 '경제 유일주의'라고 했지요. 시장주의, 자유주의에는 경제 유일주의가 암묵적으로 내재하여 있습니다. 경제는 항상 우월하고, 경제의 성장과 풍요를 위해 사회가 희생하거나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논리예요.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것이 폴라니 사상의 본질입니다.”

인간의 본성은 사회적이다

홍 소장에 따르면, 폴라니는 인간 본성을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고 봤다. 이는 폴라니가 경제 유일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첫 번째로 든 명제이다. 여기서 ‘사회적’이라는 것은 빈 괄호 같은 말이다. 사회 전체가 중시하는 가치에 따라서 그 사회 속 인간의 행동 양식도 바뀐다는 뜻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중시하는 인간이 나오는 이유도 인간이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 폴라니는 인간의 본성을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것’이라고 봤다. ⓒ Pixabay

“대기업에 들어간 친구를 보면 대부분 처음에는 연수원에 가서 군무를 춘다고 합니다. 1~2년 지나면 애사심이 커져서 '삼성맨, 현대맨'이 되지요. 사람들의 마인드 자체가 ‘삼성의 번영이 나의 번영’에 맞춰져 있습니다. 삼성에 다니는 이상, 삼성에 충성하고 삼성맨이 되는 게 이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겉으로 보면 경제적 이익에 따라서 행동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이 속해 있는 조직이 보호하는 가치를 적극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거지요. 폴라니의 말도 이와 같습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경제적인 게 아니라 사회가 지나치게 경제적인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겁니다.”

노동 분업 방식은 '시장, 교환' 말고도 다양

홍 소장은 인간 사회에 노동 분업은 반드시 존재한다고 했다. 어떤 사회든 노동 분업을 통해 역할을 나누고, 경제행위를 조직하는 것은 철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노동 분업을 조직하는 동기가 오직 ‘시장'과 '교환’밖에 없다는 것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사기”라고 말했다. 폴라니는 전통적인 인간 사회의 노동 분업 방식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했다. 가정 단위에서 이뤄지는 ‘가정경제’, 지역 단위에서 이뤄지는 ‘상호성’, 이 모두를 포괄하는 국가 단위에서 이뤄지는 ‘재분배’다. ‘시장’과 ‘교환’이 경제적인 관점에서 파생된 방식이라면, ‘가정경제’ ‘상호성’ ‘재분배’는 인간의 사회적 본성에서 파생된 방식이다.

'가정경제’에서는 먹을거리나 입을 거리를 구하기 위해 굳이 시장이 필요 없었다. 이것을 두고 홍 소장은 ‘자급자족(autarky)’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자급자족이란 우리 가족이 스스로 물자를 충당해야 아이가 튼튼한 아이로 자라나고, 행복한 노후를 보낼 수 있어 족(足)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가족이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는 사회적 동기지, 경제적 이익이나 대가를 계산하는 경제적 동기와 무관하다는 설명이다. 여기서 ‘가정’은 대가족(大家族)을 의미한다. 과거엔 대가족이 묶여 어떤 가족은 300명이 넘는 규모에 이르렀다.

가족 내에서 생산하지 못한 물자는 시장에서 구입하지 않았다. 교환하지도 않았다. 옆 집단과 ‘선물’로 주고받았다. 이때 ‘선물’은 ‘교환’과 다르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교환’은 물건을 동시에 주고받는 것이며 물건 간 가치는 등가라고 설명한다. 이에 견주어 ‘선물’은 물건을 동시에 주고받지 않으며 물건 간 가치도 동일하지 않다. 즉 인간과 인간의 관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 ‘선물’은 현대의 선물과도 다르다. 차이는 ‘상호성’(reciprocity) 원리에 있다.

“현대인들의 선물 행위에는 상호성의 원리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실용적인 목적이 없는 것을 주되 돌려받을 것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현대인에게 선물은 일종의 상징적 상호작용(symbolic interaction)으로 이해됩니다.”

원시인의 선물은 철저한 상호관계

고대 원시인들의 선물 방식은 철저히 ‘상호성’ 원리에 따랐다. 인류학자 마르셀 모스는 <증여론>에서 이런 원리를 밝혔다. 고대 원시인들은 삶에 꼭 필요한 현미나 매실주, 생필품을 선물하고 반드시 답례를 요구했는데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는 것이다. 답례하지 않으면 속한 사회에서 도리를 지키지 않은 인간이라는 비난을 받기 마련이었다. 이런 믿음은 종교·신화적 맥락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 삶에 꼭 필요한 물건들은 시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 Pixabay

선물 행위는 ‘교환’보다 더 큰 이득을 가져온다. 선물은 A와 B의 맞교환이 아니다. 'A-B-C-D-A-…'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수많은 사람이 경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가정경제’와 ‘선물(상호성)’, 두 가지 방식으로 사람 사는 데 필요한 물자를 모두 조달할 수 있었다. 삶에 꼭 필요한 물건들은 시장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가는 재분배를 담당했다. 홍 소장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사회에서 최초로 세금을 걷던 집단은 사원의 사제였다”고 소개했다.

“곡식의 일종을 사람들이 십일조 성격으로 사원에 바치면 사제는 그것을 종교적 원칙에 따라 다시 사람들에게 나눠줍니다. 이때 분배하는 이에게 권력이 발생하지요. 이렇게 지역에서 경제활동을 하고 있으면 바빌로니아 제국의 우르 지도자는 군대를 보내 해마다 세금을 걷어 창고에 쌓아놓습니다. 또 지자체 단위 창고에서 걷은 물건들을 보관하고 있다가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창고를 풀기도 합니다. 만약 바빌론 황제가 피라미드를 짓는다고 몇십만 신민을 징발해도 창고 풀어서 식료품을 공급합니다. 이런 행위들이 전부 ‘재분배’에 해당하죠. 구성원들은 신민과 제국의 주종관계에 따라 경제생활에 참여한 겁니다.”

   
▲ 홍 소장은 벽에 기댄 편안한 자세로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하기도 했다. ⓒ 임형준

분배에 초점을 맞춘 ‘가정경제, 상호성, 재분배’

‘시장, 교환’과 달리 ‘가정경제, 상호성, 재분배’는 모두 ‘분배’에 초점이 맞춰진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사회에서 인간은 타인을, 사회를, 국가를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비합리적인 행위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는 가장 합리적 행위다. 소크라테스도 말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경제적 인간관을 우리는 어떻게 바꿔야 할까?

홍 소장은 “경제적 인간이기에 시장과 교환만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앞뒤가 바뀐 얘기”라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어떤 가치를 소중히 할지 먼저 선택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경제생활을 조직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본성은 바뀌게 되어있다”고 주장했다. 지금도 사람들의 사회적 본성은 그대로라는 것이 그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7년 1학기 [사회교양특강]은 홍기빈 박상훈 전중환 김진혁 서남수 김동춘 곽정수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조은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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