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이보환 중부매일 기자

“1987년 6월 항쟁 이후 12월에 대선이 펼쳐졌어요. 선거부정을 막고자 대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서 감시단 활동을 하는 ‘국민운동본부’가 생겼는데, 제가 그곳에서 활동했죠. 저는 단양에 내려가서 선거 당일 참관인을 했는데, 혹시나 투개표 부정이 일어날까 걱정했어요. 공중전화 이용에 대비해 바지 호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 300개를 넣어놨던 기억이 나네요.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아 식사 시간도 마다하고 빵을 준비해갔을 정도였습니다.”

<중부매일> 이보환 기자는 학생 시절 스스로 겪고 공부한 자산들이 자연스레 기자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됐다고 말한다. 그는 지역 언론인으로서 20년 넘게 내공을 쌓고 있다. 제천과 단양 일대를 담당하며 지역 관련 소식을 전한다. 그는 지역 균형 발전을 위해서는 지역 언론과 지방자치, 시민단체의 협력이 필수라고 말한다. 지역 언론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를 듣고자 그를 만났다.

▲ 이보환 <중부매일> 기자. ⓒ 이보환 기자 제공

대학 시절 고민이 지역 언론사로 이어지다

민주화 항쟁 시기 대학생들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이 기자 역시 순탄한 캠퍼스 생활을 보내지는 못했다. 충남대 경제학과 86학번으로 입학해 학부 시절 내내 시위가 다반사로 벌어졌다고 회상했다. 정치 이슈가 터지면 수업 거부와 시위는 일상적 패턴이었다. 그는 “졸업 때까지 정상적인 시험을 한두 차례밖에 치르지 못한 것 같다”고 기억했다. 학생운동에 열심히 참여한 편은 아니었는데도 그때 학생들은 대부분 시대 상황을 함께 고민했다고 한다.

그는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사회학에 관심이 깊었다. 그때 배운 사회학 지식이 현재의 기자 생활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밝힐 정도다. ‘한국사회연구회’ 동아리에 들어간 것도 인생의 주요 변곡점이 됐다. 그곳에서 그는 사회 문제에 관심이 깊은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치열하게 고민하는 대학생활을 보냈다. 진로를 선택할 때가 왔고, 자신의 고민을 이어갈 수 있는 언론에 꿈을 두게 됐다. 졸업 후 1년간 유수 언론사의 문을 두드린 끝에 94년 입사한 곳은 충청 지방을 아우르던 <동양일보>였다. 지역 언론인으로서 첫발을 뗀 것이다.

지역 언론이 갈등의 민주적 해결 도와야

수습교육을 마친 뒤 첫 근무지는 충남 천안이었다. 천안시청에서 막내 기자로 일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당시 그의 관심사는 지방자치제도였다. 1991년에 지방의회가 부활하고 1995년에는 자치단체장도 민선으로 뽑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지역 언론인으로서 서울이 아닌 지방이 겪을 수밖에 없는 문제에 주목했다.

“서울 사시는 분들은 모르는데, 지역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유∙무형의 혜택으로부터 소외당하는 게 현실이에요. 소외된다는 사실을 모르니 더 문제고요. 지역 언론인으로 일하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에 눈을 떴습니다.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이 스스로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지방자치가 해답이라는 생각이 강해졌죠. 지역 언론이 이에 도움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이후 그는 여러 지역에 근무하면서 지역 언론인으로서 관심사를 넓혀갔다. 충북으로 넘어온 그는 괴산, 청주, 음성, 증평, 충주 등지를 취재하다 제천과 단양으로 넘어왔다.

그는 “지역 언론은 지역 내에 건강한 공론장을 제공하는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다양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갈등이 불거질 때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돕는 것이 지방자치 발전을 이끄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제천에서 벌어지는 각종 문제에 올바른 해결책과 합의를 이끄는 데 주력하고 있다.

▲ 이보환 기자는 제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진로체험 강사로도 활동한다. ⓒ 봉양중학교

“정치적인 것이든 어떤 것이든 다른 이와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죠. 싸움하더라도 상대방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그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싸우는 게 중요한데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요. 논리적 갈등과 민주적 합의가 이뤄질 수 있도록 언론에서 그 장을 제대로 제공해야 합니다. 그런 자리를 많이 마련하려고 노력 중이기도 하고요.”

일례로 그는 지난해 제천시가 철도박물관 유치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사례를 짚었다. 당시 국토교통부가 철도박물관 유치 공모를 했고 충청북도에서 청주 오송을 단수 후보로 추천하면서 불거진 문제다. 제천시가 이에 반발하면서 갈등이 심해졌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개선하고자 도의원과 관련 단체장, 관광협의회장 등 관계자들을 모아놓고 대면 인터뷰를 시도했다. 갈등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기자는 “아직 철도박물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진 못했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지역 언론이 지역에 도움을 주려는 노력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역 언론, 지방자치, 시민단체는 상생 요소다”

이 기자는 제천과 단양 지역을 홀로 맡는다. 지역 언론이 입지가 탄탄하던 때는 두세 명의 동료가 있기도 했으나 지금은 단독이다. 지역 언론이 처한 구조적 문제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도 단위나 광역 단체를 기준으로 발행하는 신문을 지역지라 하는데, 현재 지역지는 인력이 많지 않은 상태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역지의 존립을 힘들게 하는 재정적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이다. <중부매일>은 외환위기 이전에 250여 명이 근무하다 지금은 60~70명이 일할 뿐이다. 지방자치제 태동 이후 지역지가 확장을 거듭하던 시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현재 지역지는 정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의 후원과 지역 광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산하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지역신문발전특별법을 만들어 지원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모두가 지원받을 수는 없고 대상으로 선정돼야 가능하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지역 종합일간지 수는 5,867개. 한정된 파이를 나누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언론사 유지가 쉽지 않다. 그는 “우리 신문은 8년째 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운영이 쉽지 않다”며 “지면 매체의 근본적 한계와 종편 허가 이후 광고주가 멀어진 점도 지역 언론을 위기로 모는 요소”라고 지적했다.

▲ 이보환 기자는 지역 언론이 처한 현실이 어렵지만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 김정미

“구조적인 문제가 있죠. 중앙 언론사도 마찬가지겠지만, 우리는 지방정부 광고가 엄청 많아요. 독립적인 경제 모델을 찾지 못하다 보니 의지를 많이 하죠. 관급기사를 많이 다룰 수밖에 없는 게 현실입니다. 비판하더라도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어요. 그렇지만 제가 항상 확고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지역 언론과 지방자치, 지역 시민단체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역 언론에 어려움이 많을지라도 지역 발전을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강조한다. 지방자치가 발달하는 과정에서 건강한 공론장을 제공하고, 지방의회를 견제하는 데 지역 언론의 구실이 크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역 시민단체 역시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선명하게 제시해주고 지방의회와 언론을 견제하는 기능을 한다. 개별적으로 보면 아직 한계가 많지만 함께 모이면 상생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는 “앞으로도 지역의 균형발전을 위해 기자로서건, 시민으로서건 관심을 쏟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편집 : 황두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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