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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패질 삼매경에 영그는 나뭇결의 꿈
[대학생 창업 동아리] ② WOOD CASE
2016년 10월 22일 (토) 23:33:08 박진영 기자 parkbingsu@naver.com

충북 제천시 세명대학교 디자인관 4층. 철 지난 지 한참인데 시원한 파도 소리가 울려 퍼진다. 파도가 밀려오는 곳으로 가보니 이번에는 바다 내음 대신 숲 속 나무 향이 은은히 감겨온다. 학생 손에 쥐어진 대패가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샤아악-샤아악” 비집고 나오는 대팻밥이 빚어낸 소리와 향이다. “이렇게 대패질을 잘해야 나무 본연의 결이 살아나요.” 목수처럼 익숙한 손놀림으로 대패질하던 학생이 땀을 훔치며 건네는 말이다. 과연 대패가 지나간 자리에는 파도 무늬의 결이 금방이라도 포말을 일으킬 듯 선명한 무늬를 드러낸다. 기자를 힐끔 바라본 뒤 다시 대패질에 여념이 없는 학생들. 세명대학교 실내디자인과 소속 목공예품 제작동아리 ‘WOOD CASE’ 회원들이다.

   
▲ WOOD CASE 김정민 군이 나무의 결을 살리기 위해 대패질을 하고 있다. ⓒ 박진영

나무의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하다

작업이 갈무리 되자 열띤 회의가 이어진다. “카드 케이스 두께가 좀 얇은 게 아닐까.” “이 정도면 들고 다니기엔 적당한 것 같은데?” 자신의 아이디어나 느낌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WOOD CASE는 최근, 젊은 세대가 많이 사용하는 카드 케이스를 선보일 참이다. 이날 회의는 제품 출시 전에 시제품의 품질을 요모조모 따져보는 자리다. 흔히 카드케이스는 천이나 가죽으로 만든다. 딱딱한 나무로 어떻게 카드케이스를 만든다는 걸까. 얇게 손질한 나무판 두 장을 카드가 들어갈 공간만 남긴 채 정교하게 이어 붙였다. 직접 만져보니 딱딱할 것이란 선입견 대신 반질반질한 나무의 질감이 먼저 느껴져 좋았다.

실내디자인은 사무실이나 집안 내부를 쓰임에 따라 꾸미는 건축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동아리방 주변에는 실내디자인과 학생들이 만든 스티로폼 건축 모형들이 즐비하다. 그런 이들이 왜 건축에서 목공예품 제작 동아리로 작업 영역을 축소한 걸까. WOOD CASE 회장 이지선(22) 양이 실내디자인에 대한 이런 오해를 풀어준다.

   
▲ 세명대학교 디자인관 4층에 자리한 WOOD CASE의 작업 공간. ⓒ 박진영

“실내디자인이라고 하면 흔히 아파트 인테리어 공사같이 내부 골조를 뜯어 부수고 새로 만드는 작업을 생각하시는데요, 식탁이나 의자 같은 실내소품을 만드는 것도 실내디자인 영역이에요” 말을 끝낸 이지선 양이 그동안 만든 목공예품을 자랑스레 선보인다. 연필꽂이부터 메모장, 필기구, 카드케이스가 눈에 띈다. 심지어 나무로 만든 스피커까지... 둥글게 판 나무 안에 스마트폰을 넣으면 나무가 울림통 역할을 해 음량이 풍성해 지고 음질이 깊어진다. 나무 특유의 고풍스럽고 단아한 멋이 살아난다.

WOOD CASE가 그동안 만든 제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나무의 쓰임새는 생각보다 넓다. 매주 동아리원들이 회의할 때마다 다양한 제품 아이디어가 나오는 이유다. “나무의 다양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 즐겁다”는 동아리원 김예지(23) 양의 웃음 띤 말 속에 목공예의 무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 WOOD CASE가 제작한 실내 소품들. 연필꽂이부터 스피커까지 다양하다. ⓒ 박진영

나무를 직접 만지며 현장 감각 익혀

“나무 도마 치고는 좀 두껍지 않아?” 학생으로 보기 어려운 한 남자가 학생들의 제작 과정을 살피며 훈수를 둔다. 실내디자인과 박경서 교수다. 애살스러운 눈길로 학생들을 바라보며 늦은 밤까지 동아리를 챙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현장에 나가면 목작업이 많습니다. 그런데 학생들이 학부 시절, 설계공부에만 몰두하다 보니 취업하고 현장에 나가 힘든 점이 많을 수밖에요.” 제자들의 졸업 뒤까지 돌보는 스승의 마음이다. 동아리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박 교수 역시 WOOD CASE 회원 명부에 이름을 올렸다.

이렇듯 지난해 초 출범한 WOOD CASE는 재료를 직접 만지고 느껴야 한다는 박 교수의 디자인 철학과 목공예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이 의기투합한 결과다. 건축학을 전공한 박 교수도 목공예 제작은 전문이 아니다. 학생들과 손발 맞춰 차근차근 목공예술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다. 호기심으로 WOOD CASE에 가입했다는 최보민(21) 양은 “내 손으로 직접 목공예품을 만드는 과정이 재밌다”며 목공예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진다고 들려준다.

더 큰 꿈을 위해 도전하는 청년들

아직 장비가 완벽히 갖춰지지 않아 크기가 작은 소품만 만들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쉽다. WOOD CASE는 학교에서 지원되는 학기당 75만 원으로 고가의 장비를 하나씩 마련할 계획이다. 지금은 장비 부족의 벽을 열정으로 뛰어넘는다.

땀 흘리며 묵묵히 대패질하던 김정민(24) 군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오롯이 나무에 표현할 수 있어서 좋다”고 목공예의 장점을 담담하게 소개한다. 자신의 손을 거쳐 탄생하는 작품을 보며 절로 힐링이 된다는 설명이다. 동아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지만 김 군은 벌써 목공예품 창업까지 머릿속에 그린다.

   
▲ 동아리 덕분에 나무를 직접 만질 수 있어 좋다는 함주혁 군. ⓒ 박진영

함주혁(25) 군 역시 동아리 덕분에 진로를 확실히 잡았다. 목공예 분야에 취업하기로 마음먹은 것. “목공예품 동아리를 통해 나무의 재질과 종류에 대해 많이 알게 된 것이 진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함 군의 말에 이론과 실기가 녹아든 실사구시 정신이 돋보인다. WOOD CASE를 징검다리로 막연한 꿈이 현실로 진화 중이다.

취재를 마친 기자의 귓전을 울리던 말. “목공예품 하나 만들어 선물할게요.” 미소로 감사를 표하고 돌아서는 데 이어지는 “어떤 제품을 갖고 싶으세요?” 김영란법(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방지에 관한 법)만 아니면 잠시 머뭇거리며 대화를 이어갈 수 있겠지만... “OO는 어떠세요?” “ㅁㅁ는 어떠세요?” 하나씩 들려오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WOOD CASE의, 아니 동아리 회원들의 밝은 미래를 그려보며 발길을 돌렸다. 한동안 파도 소리가 마음속에서 맴돌 것 같다.


청년실업률 8.9%.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구직자는 쏟아지는데 일자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답답한 청년들이 직접 나섰다. 곤충, 혈액, 나무 등 생소한 아이템을 가지고 창업을 도모하고 있는 충북 제천에 위치한 세명대학교 창업 동아리 학생들이 그 주인공이다. 단비뉴스 청년팀이 쌀쌀해진 가을 날씨를 비웃듯 창업열기로 가득 찬 그들을 찾아갔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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