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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들의 이유 있는 악다구니
[상상사전] ‘촛불과 태극기’
2017년 04월 01일 (토) 16:02:56 박희영 기자 hyg91418@naver.com
   
▲ 박희영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은 서울구치소로 가고 세월호는 항구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건의 귀결이 아니라 한국의 정치·경제·사회 구조가 재정립돼야 한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특히 두 사건을 둘러싼 분열과 대립은 한국인들이 더 이상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절망감마저 안겨주었다. 해방 이래 사상적, 계층적, 세대 간 균열이 메워지기는커녕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의 위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현대산업사회는 진보와 발전이라는 장밋빛 약속을 했지만 고위험사회로 가는 첩경이기도 했음을 드러냈다.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근대화와 도구적 합리성, 통제 가능성으로 특징지어지는 산업사회와 대비해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개념화한다. 획일화한 경쟁과 효율의 가치를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민주주의와 삶의 질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는 경제 저성장 기조 아래,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을 통해 국민 인식과 현실에 괴리가 발생하는 심각한 위험 요소들을 드러냈다.

최순실 비리 보도로 촉발된 시민의 분노는 ‘이게 나라냐’라는 광장의 메시지로 집단화했다. 지난 4개월간 19차례에 걸쳐 촛불집회에서 터져 나온 민주주의의 외침은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에 이르게 했다. 그런데 모두가 ‘직접민주주의의 승리’를 만끽한 것은 아니다. 탄핵소추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난 태극기를 든 노인들은 분통을 터뜨리거나 오열했다. 두 개의 광장, 두 개의 세계가 충돌했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의아하다. ‘다 같이 더 나은 사회를 만들자’는 건데, 이들은 왜 분노하는 걸까? 태극기를 든 사람들도 불만이다. 자신이 느끼는 혼란과 두려움을 온몸으로 표현해왔지만 깡그리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촛불을 든 사람은 대부분 70~90년대생이다. 태극기를 든 사람은 40~60년대생이 많다. 전자는 민주화가 이뤄지는 정치 격변과 경제 위기를 경험했지만 전쟁 기억은 없다. 후자는 어려운 시절 한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 공헌했으나 지금은 소외와 빈곤을 견디기 힘들어한다. 이들의 마음 한 편에는 한국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았다. 위험에 관한 인식은 문화적으로 만들어진다. 어떤 이에게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이 가장 큰 위험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혼란을 조장하는 ‘빨갱이’가 가장 큰 적이다. 영국 인류학자 메리 더글라스는 “각각의 공동체는 오랜 공동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위험 요소 중 어느 위험의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크고 어떤 결과가 가장 치명적인지 등을 판단한다”고 말한다. 서로 다른 사회문화적 경험을 통해 만들어진 다른 가치관과 세계관을 인정하고, 그들의 위험 인식 또한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 세월호 참사는 한국인의 위험 인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 뉴스타파

두 개의 광장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연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서로 다른 생각이 서로를 위험 요소로 보고 공격하는 것이다. 두 개의 세계 중 다른 하나를 파괴하려 드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오스트리아 법학자 한스 켈젠은 <민주 정치와 철학, 종교, 경제>에서 “무엇이 국민의 이익인가라는 질문에는 여러 가지 대답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수가 믿는 이익이 반드시 유일한 대답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국민 다수에 의한 정치란 정의상으로 이미 반대파, 즉 소수파를 예상하는 것이며, 정치상으로도 그 소수파의 존재를 승인하고 그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라며 민주주의를 다른 정치와 구별한다.

어떤 위험이 발생하면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절차가 뒤따른다. 전근대 사회에서는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물었다. 근대사회 이후에는 책임을 묻는 과정이 정치적 행동으로 발전한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태극기를 든 노인의 악다구니에 논리적인 비판을 가하는 일이 아니다. 이들에게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박경배 기자

[박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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