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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보가 끌어안을 차례다
[상상사전] ‘촛불과 태극기’
2017년 03월 25일 (토) 10:39:08 박진영 기자 parkbingsu@naver.com
   
▲ 박진영 기자

탄핵이 인용되던 날, 태극기 집회 참가자 사망사고가 났다. 사람들은 ‘헛된 죽음’이라 비웃었다. 그날 나는 그 현장에 있었다. 어쩌면 죽은 이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슬펐다. 두 눈으로 직접 본 태극기 집회는 언론에서 다뤄진 것과 달리 순수해 보였다. 찬 바람에 노구를 이끌고 몇 시간씩 목청 높이는 일을 결코 일당 5만 원만으로 감당할 수는 없다. 그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오전 11시 21분, 탄핵이 인용되자 많은 노인이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꺼이꺼이 울었다. 그러면서도 한 손에 든 태극기를 놓지 않았다. 태극기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김호기 교수가 최근 <한국일보>에 기고한 글이 눈에 띈다. 그는 오늘날 한국사회가 직면한 문제의 역사적 기원에 1987년 ‘6월항쟁’과 1997년 ‘외환위기’가 있다고 한다. 학계는 각 사건을 ‘87년 민주화 체제’와 ‘97년 신자유주의 체제’라 명명하고, 오랫동안 두 체제가 공존하며 중첩되고 갈등하면서 한국사회 변동을 이끌어왔다. 두 체제의 습속을 몸에 익힌 이들은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왔다. 민주화의 기억과 신자유주의가 불러온 불평등이 촛불집회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태극기 집회에 나온 노인들을 이해하려면 두 체제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기점은 1963년 ‘박정희 집권’이다. 김호기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63년 체제’라 부를 수 있다.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개발 과정에 불법성과 잔혹성이 있었으나, 어찌 되었든 지금 노인세대들은 63년 체제로부터 가난을 벗어날 수 있었다. 태극기 집회를 부패한 권력을 찬양하는 노망난 늙은이들의 아우성으로 보면 안 되는 이유다. 태극기(박정희)는 가난이라는 ‘거악’에 맞서 나라를 세웠다는 자부심의 상징이다. 탄핵이 인용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 노인들에게 태극기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중요한 상징이다. ⓒ 박진영

불행한 점은 경제성장의 결과가 그들에게 실질 혜택으로 돌아가지 않았다는 것이다. 63년 체제는 집회에 나온 노인에게 딱 끼니 때울 수준만큼만 보상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박정희는 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만 활용하고 버렸다. 그런데도 노인들은 나라를 걱정하며 집회에 나온다. 박정희는 죽었지만, 그 후신인 박근혜와 그를 따르는 정치세력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우는 노인들에게 별 셋 단 예비역 장성이 이렇게 외쳤다. “돌격! 다 때려 부수자” 그러나 마이크를 내려놓은 그는 연단 뒤로 빠져나가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의 자리를 대신한 세 명의 노인이 죽은 것이다.

나는 ‘종북 좌빨 몰아내자’는 과격한 구호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외칠 수밖에 없는 그들을 영 이해할 수 없는 건 아니다. 탄핵으로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고 믿는 이들에게 ‘민주주의의 원칙’을 모른다며 조롱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태극기 집회와 그 집회에 나온 노인들을 싸잡아 비난하기 앞서 63년 체제를 겪은 노인들을 이해하는 것이 사회통합을 위해 좋다. 다음 정권은 진보 정부가 들어설 공산이 크다. 이제까지 끌어안는 주체는 보수였지만 그들은 모두 실패했다. 그럼에도 이제는 진보가 끌어안을 차례다. 그것이 새 시대를 맞이할 우리의 첫 과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황두현 기자

[박진영 기자]
단비뉴스 TV뉴스부장 및 앵커, 편집부, 청년부, 시사현안부 박진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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