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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하지 않으면 적이 되는 사회
[인문교양특강]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
주제 ② 톨레랑스 사상과 한국사회
2017년 03월 29일 (수) 22:23:16 견민정 강민혜 박경배 기자 unicorn131@hanmail.net

“한국에서는 동의하지 않으면 적이에요. 이해해야 하는데 말이죠.”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는 두 번째 주제로 들어서며 ‘이해’가 없는 한국 사회를 꼬집었다. 우리의 삶에 동의하지 않으나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한데, 한국 사회는 이해하는 자세가 없고 동의하지 않으면 적이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동의하지 않으나 이해한다’는 무엇일까?

동서양 공존의 미학, 톨레랑스와 화이부동

홍 대표는 “톨레랑스란 차이를 차별, 억압, 배제의 근거로 하지 말라는 성찰이성의 소리”라 정의한다. 이성은 성찰이성과 도구이성으로 나눌 수 있다. 성찰이성은 이성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는 성찰을 하는 것이며, 도구이성은 지배와 억압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그는 우리 사회는 성찰이성보다 도구이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가 가진 이성이 도구이성에 가깝기 때문이다.

   
▲ ‘톨레랑스 사상’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홍세화 대표. © 견민정

공자는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 했다. ‘화이부동’은 지혜가 있는 군자는 나와 다른 사람을 획일화하지 않으면서 평화롭게 지낸다는 뜻이다. 다른 것을 다르다고 차별하고 배제하지 않는 성찰이성을 지닌 것이다. ‘동이불화’는 같으면서도 화목하지 않다는 의미다. 작은 땅이 남북으로 갈라졌는데 그 안에서도 싸우고 있는 우리가 ‘동이불화’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홍 대표는 이러한 의미에서 톨레랑스와 화이부동이 닮았다고 말한다.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은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공존의 미학이자 가치이다.

성찰이성의 결여는 차별을 부른다

인간은 모두 다르다. 그 때문에 ‘다름을 존중하는 것’은 곧 ‘내가 존중받는 조건’이 된다. 그러나 현재 사회에는 차별, 억압, 배제가 만연하다. 홍 대표는 그 이유를 “달라도 안 되고, 같아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이중성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자신과 비슷한 이를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신과 다른 이를 만나면 나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이러한 이중성이 ‘성찰이성의 결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성찰이성을 지닌 사람은 타인과 만났을 때 자신이 더 나은 점을 따지기보다 서로의 장점을 본다. 반면, 성찰이성이 결여된 사람은 나와 타인을 비교하여 자신이 더 낫다는 것을 확인하려고 한다. 홍 대표는 “성찰이성의 결여에서 비롯된 자세가 바로 차별과 억압, 배제의 배경이 된다”고 강조한다.

여자와 남자, 성 소수자와 이성애자, 사상과 종교의 다름, 인종과 출생지의 다름을 기준으로 한국 사회는 분열되어 있다. 홍 대표는 “한국은 특히 남자들에 의한 여성차별이 분명히 존재하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최근 벌어진 강남역 사건은 성차별에서 기인한 여성혐오를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막는 유리천장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성찰이성 보다 도구이성이 강할 때 합리적 존재, 이성적 존재보다는 합리화하는 존재가 됩니다. 차이를 존중하기보다는 차이에 따른 차별과 억압을 합리화하는 기제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성차별을 합리화하는 우열관계

성차별은 오래된 문제다. 인류 역사를 일컬어 ‘인류 절반에 대한 차별의 역사’, ‘여성 차별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그는 이러한 성차별을 도구이성으로 합리화하는 기제가 바로 ‘우열 관계’라 설명한다. ‘남자는 힘도 세고 우등하다. 여자는 힘도 약하고 열등하다. 그래서 열등한 여성을 차별하는 것은 합당하다’와 같은 생각의 흐름이 차별을 당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성 소수자와 이성애자의 경우는 어떨까? 이들의 차별을 합리화하는 기제는 ‘정상과 비정상’이다. 성 소수자는 ‘비정상’이기 때문에 이들을 이성애자, 즉 ‘정상’으로 만들려면 억압해야 한다는 논리다.

   
▲ 한 남자가 '게이의 2가지 권리: 에이즈와 지옥'이라고 쓰인 포스터를 들고 있다. © ABC News

“스테판 에셀의 <분노하라>라는 책을 보면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동성애 경험을 권유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에셀이 실제로 경험해봤는데 자기와는 안 맞았다고 적었습니다. 즉, 동성애는 취향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홍 대표는 성 소수자의 정체성 문제가 취향이 아닌 존재의 문제이며, 개신교 일부에서 그것을 취향이라고 보고 비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한다. 잘못된 언행은 비난할 수 있어도 존재에 대한 비난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다른 나라에 견주어 성 소수자에 대한 억압이 심하다. 한국에서 커밍아웃한 성 소수자가 별로 없는 이유도 그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조차 힘겨울 만큼 억압되어 있어서다.

반면, 유럽은 상황이 다르다. 홍 대표는 “실제로 유럽에 있을 때, 성 정체성 문제로 망명 온 성 소수자 젊은이들을 많이 봤다”고 털어놨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유럽에서는 동성결혼이 법제화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에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 합헌 판정을 내리고 미국 전역에 동성결혼 허용 결정을 발표했다. 현재 미국,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등이 동성결혼을 허용하고 있으며, 남미에서는 올해 콜롬비아가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브라질에 이어 4번째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차별을 ‘우열관계’로 배제와 억압을 ‘정상과 비정상’으로 합리화하는 기준에서 볼 때 사상과 종교 차별의 기제는 더 무섭다. 인류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16세기 신•구교 간에 종교 전쟁이 일어났을 때 상대방을 불태워 죽이고 꼬챙이로 찔러 죽이면서도 누구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종교와 사상은 ‘선’이라 여겼지만, 상대방의 것은 ‘악’으로 분류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이 남과 북으로 분단되고 서로 체제와 사상이 달랐을 때 우리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맛봤다. 내 자식과 비슷한 또래 소녀들의 얼굴에 총칼을 들이대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받지 않았다. 우리는 상대를 악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출생지에 따른 차별도 있다. 홍 대표는 “이 문제는 때에 따라 종교와 결합해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다종교 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가 붕괴하면서 분리된 나라별로 강조된 종교적 정체성은 민족 청소 사태를 유발했다. 지역 차별 합리화 기제인 ‘우열관계’, 종교 차별 합리화 기제인 ‘선과 악’이 합쳐져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을 낳았다.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저급한 속성

홍 대표는 이러한 문제들이 자기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인간의 저급함 때문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보통 성찰이성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이와 같은 속성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기 성숙을 모색하지 않고 속한 집단의 우위에 기대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홍 대표가 말한 자기 성숙의 모색이 멈춘 사람들은 자신과 집단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 남자나 경상도 남자가 우위가 가정된 자기 집단에 소속된 것을 자랑하는 행위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GDP 인종주의’라는 특수한 모습도 관찰된다. 이는 경제지상주의와 성찰이성의 빈곤이 결합했을 때 나타난다. 다시 말해 사람을 출신 국가나 국민소득 수준에 따라 평가하는 것을 뜻한다. 우리나라보다 살기 어려운 국가 출신의 사람들을 깔보는 행위가 이를 증명한다.

문화와 종교의 차이는 잠복해 있다가 뛰쳐나오기도 하는 양상을 보인다. 프랑스의 ‘부르키니 사태’가 그 예다. 국민의 10%가 무슬림인 프랑스에서 일부 극단적인 무슬림들이 수차례 테러를 자행한 이후 비난의 화살이 엉뚱하게도 부르키니로 꽂혔다. 극우 성향인 프랑스 남부지역 시장들은 부르키니 착용 금지 명령을 내렸고 애꿎은 사람들이 수영을 못하게 됐다. 부르키니 금지법은 결국 위법으로 판결됐다.

나 자신을 잘 ‘짓는’ 것은 인간의 평생 과제

“우리말 동사 중 ‘짓다’라는 것이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옷을 짓고, 집도 짓습니다. 인간 생존의 필수요소인 의식주가 다 ‘짓다’의 대상이죠. 그런데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를 ‘짓는’ 것입니다.”

홍 대표는 인간이라면 반드시 나 자신을 어떤 인간으로 만들어 나갈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간이 교육을 통해 성찰이성의 성숙을 꾀해야 하는 이유도 나 자신를 잘 ‘짓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남과 나를 비교하는 데 익숙해지면 나를 ‘짓는’ 과제의 답을 찾기 어렵다. 남보다 우월해지고 싶은 마음은 차별을 낳고, 억압과 배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는 홍 대표가 나와 남의 다름과 차이를 용인하는 자세인 ‘톨레랑스’를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홍 대표는 사람들이 공부하는 궁극적인 목표도 결국 성찰이성의 성숙이라고 주장한다. © 견민정

한 학생이 “교육만으로 톨레랑스 정신을 실천하는 성찰이성의 성숙이 가능한가”라고 질문하자, 홍 대표는 “교육만으로는 완벽하지 않다”면서도 “하지만 교육은 성찰적 이성이 일정 수준 밑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받쳐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는 잇단 테러와 난민 유입 급증 등의 이유로 이민자 차별 여론이 일었던 프랑스 상황에 대해서도 “프랑스에서 이제껏 톨레랑스를 교육해오지 않았다면 더 심한 상황으로 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대표는 마지막으로 “앞으로 어떤 인간이 될 것이냐는 문제의 해결은 누구의 몫도 아닌 나 자신의 몫”이라고 당부하며 “죽는 순간까지 ‘나를 어떻게 짓느냐’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김평화 기자

[강민혜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TV뉴스부 강민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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