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혐오

▲ 김평화 기자

지난 6월 시청 근처에서 수업을 듣고 나오던 중 ‘퀴어퍼레이드’와 맞닥트렸다. 2년 전 대학 시절 경험에 이어 두 번째였다. 행렬은 화려했고, 참가자들은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주변을 살펴보니 퀴어퍼레이드 때문에 발생하는 소음보다 다른 쪽 소음이 훨씬 더 컸다. 퀴어퍼레이드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시위다. 반대 측 시위대로 시청 일대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거대한 혐오의 물결. 눈으로 양(quantity)적 혐오를 확인하는 계기였다.

대한민국 사회는 동성애뿐 아니라 다양한 혐오를 표현하기에 좋은 토대다. 어느 집단을 가든 개인의 개성보다는 집단의 획일성만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남을 보면 존중하기보다 비난하기 일쑤다. 비난의 대상이 소수일수록 수위 또한 높아져 쉽게 혐오에 이른다. 온라인상에서 지역, 성별 등을 차별ㆍ혐오하는 표현은 급증추세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시정이 요구된 건수만 봐도 2011년 4건에서 2016년 7월 1,352건으로 300배 이상 늘었다. 2015년 891건과 비교해도 일 년 사이 두 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혐오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이트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다. 사이트 내에서 빈번하게 여성 혐오를 일삼고 범죄를 부추길만한 자극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일베 회원들은 ‘김치녀’, ‘삼일한’ 등의 용어로 여성들을 비하하며 이를 놀이로 삼을 뿐 아니라 하나의 문화로 만들었다. 관련 사이트인 ‘소라넷’ 역시 여성 혐오 문화를 등에 업고 성희롱 및 성폭행 범죄를 일삼았다. 길거리 여성들의 치마 속을 사진 찍어 사이트에 올리는 등 상식 밖의 범죄를 일삼으면서도 자성의 목소리는 보이지 않는다. 혐오가 괴물을 낳았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프로그램에서 다룬 소라넷 문제. 방영 이후 논란이 일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 소라넷 사이트 폐쇄 조처가 내려졌다. ⓒ SBS <그것이 알고 싶다> 화면 갈무리

혐오를 일삼는 사람들은 표현의 자유를 빌어 자신을 정당화한다. ‘혐오를 드러낼 수 있는 권리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 주된 논지다. 혐오 발언(헤이트 스피치)이 표현의 자유 안에 포함될 수 있는 것일까? 우리는 헤이트 스피치와 관련한 법제가 부실하지만, 미국, 독일, 영국 등지에서는 이미 엄하게 규제하고 있다. 가까운 일본 역시 혐한시위와 관련해 골머리를 앓다가 지자체와 함께 헤이트 스피치 규제 대응책을 마련한다고 밝혔다. 혐오가 표현의 자유와 동떨어진 반이성적 행위라는 점에 대해 이성적 공감대가 마련됐다는 증거다.

혐오가 지양되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대화도, 타협도 찾지 않겠다는 극단적인 태도가 혐오다. 이러한 혐오 증상이 심화할수록 사회에 분열과 갈등만 남는다. 극단적인 경우 혐오 대상을 없어져야 할 존재로 생각한 나머지 관련 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 올해 벌어진 강남역 10번출구 살인사건은 여성을 혐오 대상으로 놓고 살인을 저지른 ‘페미사이드(여성혐오 살인)’였기에 사회문제로 주목받았다. 범죄자와 아무 인연이 없는 여인이 단지 여성이라는 성 정체성 때문에 살인을 당했다. 인류의 비극이라 불리는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 역시 동기는 하나였다. 유대인이 유대인이라는 민족 정체성, 그 하나뿐이었다. 얼마나 더 큰 희생을 치러야 나와 다른 존재를 인정하는 공존의 지혜가 뿌리 내릴 수 있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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