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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게 만드는 한국교육의 귀결
[인문교양특강]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
주제 ①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
2017년 03월 23일 (목) 10:36:42 김민지 유수빈 윤연정 황금빛 기자 coolpooh0727@naver.com

‘생각’은 ‘의식 세계’다. 그런데 인간은 의식 세계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그렇다면 지금 당신의 삶을 지배하는 의식 세계는 어떤 경로로 갖게 된 것일까?

“여러분의 삶을 성찰하는 데 중요한 질문 가운데 하나가 이겁니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생각, 내 삶을 지배하는 내 생각이 어떻게 나의 것이 되었나?”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는 이 질문이 ‘생각하는 사람’의 출발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사회 구성원 대다수는 위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는 “사람은 생각하는 바에 관하여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다”라고 한 칸트의 말을 인용하며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은 체제와 구조 등에 의해 갖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 체제와 구조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비주체적 인간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갖고 있던 생각을 ‘회의’할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의 ‘생각한다’가 곧 ‘회의한다’를 의미하는 것처럼.

   
▲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내 생각은 어떻게 내 생각이 되었나’라는 주제로 강의하고 있다. ⓒ 견민정

“16세기 유럽 대륙을 뒤흔든 2가지 사건이 있었습니다. 신•구교 분리에 따른 종교의 통일성이 사라진 것과 천동설이 무너진 것입니다. 중세까지 인간은 하나님이 창조한 창조적 인간이었는데, 17세기에 데카르트가 반기를 들죠, 내가 인간으로 있는 것은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이것이 근대 인간관입니다.”

생각하는 존재인 인간은 자기 미래의 모습을 궁금해한다. 이에 대해 홍 대표는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니까 미래의 불확실성을 핑계로 우리가 가장 소중한 시간인 지금을 소홀하게 살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미래가 아예 없어지는 데도 말이다. 그래서 스피노자가 설령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더라도 오늘 사과나무 한 그루를 심겠다고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늘을 성실하게 살라는 주문이다.

우리는 생각의 주체인가

“제가 파리에서 살다가 귀국해서 생긴 일화를 말씀드릴게요. 서울에서 택시를 타면 귀국 초기에는 참 감개무량했어요. 제가 택시기사 출신이라고 이야기하면 분위기 괜찮아요. 그러다가 ‘지금은 뭐 하세요’라는 질문에 ‘한겨레신문사 다닙니다’는 답을 하면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썰렁해져요. 제가 감을 잡은 뒤에는 물어봤어요. ‘한겨레신문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을 물은 거죠.”

홍 대표는 그 일화를 소개하며 자신이 듣고 싶었던 대답을 설명했다. 예상 가능한 대답은 세 가지 정도다. 첫 번째는 ‘괜찮은 신문이죠’라는 긍정적인 평가. 두 번째는 ‘한겨레신문을 읽은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정답이지만 이마저도 듣기 힘들다. 대부분 반응은 ‘친북신문이다, 불평만 늘어놓는 신문이다, 전라도 신문 아니냐’하는 것이다. 신문을 읽지 않은 사람들이 가지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을까? 그는 아니라고 답했다.

   
▲ 홍 대표가 ‘남민전사건’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파리에 있을 때 경험한 것을 쓴 책. 택시기사를 하며 생활한 망명기와 ‘똘레랑스’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다. ⓒ 네이버 책

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시민사회 헤게모니를 설명한다. 본 적 없는 신문에 부정적 견해를 갖는 것은 특정 직업군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 사회 구성원이 비슷한 방식으로 생각을 형성한다. 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는 우리가 생각을 창조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생각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한국 부모들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생각은 가정과 학교에서 구축됐다. 문제는 두 곳 모두 ‘생각하다’라는 과정이 없다는 것이다. 유대인 부모와 한국 부모를 비교하면 더욱 명확하다. 유대인들은 부모가 자녀에게 묻는다. “네 생각이 뭐니?”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정반대다. 부모가 자녀에게 생각하기를 이끌기는커녕 자녀의 “왜”라는 질문에 대답도 잘 안 해준다.

유럽의 한 아동학자는 아이의 의식세계를 연구하기로 했다. 말을 하기 시작하는 생후 18개월 안팎 아이 말을 36개월까지 녹취했다. 실험 결과, 유럽 아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한 말은 ‘엄마(마마)’와 ‘왜’(질문)이다. 아이는 생각하는 존재이기에 만사가 궁금해 물어보는 것이고 엄마가 대답하면 또 다른 ‘왜’가 계속 이어진다.

한국에서도 같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까? 홍 대표는 힘들 거라고 말했다. 바쁜 부모들은 ‘왜’라는 질문에 성실히 대답해주지 않는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기 때문이다. 이는 토론문화, 합리성이 자리 잡는 데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홍 대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폭력성 등 한국 사회의 많은 문제가 ‘왜’라는 질문이 사라진 데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인신공격적 인터넷 댓글도 마찬가지다. 차 사고가 났을 때 왜 부딪혔는지 따지기 전에 상대방 나이를 따져 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모두 생각하는 것을 억압적인 사회의 모습이다.

   
▲ 고집하면서 살아가는 생각은 ‘사회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다고 말하는 홍 대표. ⓒ 황금빛

사유와 논리 대신 암기만 하는 한국식 교육

한국 청소년이 공부하는 것은 인문사회과학과 수학을 비롯한 자연과학, 두 가지 범주다. 홍 대표는 자연과학이 인간의 주관성이 개입할 수 없는 객관적 진리에 대해 정답을 맞히는 식으로 공부할 수 있는 데 견주어 인문사회과학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공부이기에 정답이 없는 주관성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학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쉽게 말해 인문사회과학은 사람 공부(인문)와 세상 공부(사회)가 합쳐진 분야이기에 사유하고 그 생각에 논리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폐지되어야 한다’도 정답이 아니고 ‘존치되어야 한다’도 정답이 아닙니다. 정답은 없습니다. 정답을 얻는 것은 중요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이에 대해 각자의 견해가 있고, 그 견해가 풍요로운지, 나름대로 정교한 논거를 갖고 있는지가 중요하지요. 모병제, 징병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유와 논리의 문제예요.”

그는 최근 광주고등법원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로 기소된 세 남자가 무죄 판결받은 사례를 들며 대체복무제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한국은 국제 앰네스티 등에서 대체복무제를 하라는 권고에도 대체복무제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여호와의 증인’뿐 아니라 불교 신자, 평화주의자들이 집총을 하지 않겠다는 이유로 병역을 거부하면 감옥에 가게 된다. 홍 대표는 “제 생각에는 대체복무제를 하는 것이 맞지만 이것이 정답인지는 각자 나름대로 사유와 논리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대체복무제나 존엄사 논란처럼 하나의 사안에 상반된 의견이 나오는 문제에 대한 판단은 각자 사유의 문제이자 논리의 문제라는 맥락에서다.

그렇다면 학생들에게 사유와 논리를 갖추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홍 대표에 따르면 글쓰기와 토론이 그 답이다. 그러나 입시 위주 우리 교육에서는 글쓰기와 토론을 하기보다 암기만 할 뿐이다. 그는 “글쓰기와 토론은 ‘생각하다’의 과정인데, 암기는 ‘생각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생각이 주입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공부하는 방식을 통해 살펴보면 ‘사형제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해 공부하려면 글을 쓰거나 토론을 해야 하지만 우리는 ‘다음 나라 중에 사형제도가 폐지된 나라는’과 같은 객관적 사실을 암기하며 공부해왔다. 그는 “객관적 사실을 아는 것도 필요하지만, 사형제도에 대해 각자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객관적 사실을 숙지하고 암기만 하는 공부법은 “‘회의(생각)하는 과정 없이 생각을 담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주입식 암기교육’은 식민지 잔재

글쓰기와 토론은 각자 ‘내’가 쓰고 생각한다는 특징을 지닌다. 그러나 암기는 모든 학생에 똑같은 것을 입력하기에 학생 각자의 정체성이 무너진다. 여학생, 남학생, 성 소수자, 부자, 빈자 등 다양한 정체성과 계급성이 사라지는 전체주의적 교육이다. 이는 한국사회의 비주체성과 보수성의 배경이라고 홍 대표는 지적했다. 이와 같은 한국사회의 현실은 어떻게 등장하게 되었을까? 그는 일본강점기의 교육 제도에서 그 실마리를 찾았다.

“이 땅에 근대식 학교가 처음 시작된 것은 1894년 갑오개혁 때인데 김홍집 내각의 학부대신은 이완용이지요. 이때 관립소학교가 세워졌고, 1900년에 관립중학교가 세워집니다. 경기고등학교 전신이지요.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10년부터 일제강점기를 맞게 됩니다. 그다음 1948년 민주공화국을 세웠지만 불행히도 분단을 맞이해 일제 부역세력을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그 세력이 민주공화국에서도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교육제도가 온존했고 시민이 아닌 신민을 길러내는 학교가 되었습니다. 요컨대 한국 근대교육시스템은 일제강점기에 틀이 잡혔어요.”

홍 대표는 특히 시민을 기르는 학교로 탈바꿈하지 못한 문제는 학교 구조에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학교는 군국주의 일본의 국가 정체성에 맞는 군사학교를 닮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학교’ 하면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모습이 운동장, 구령대인 것과는 다르게 유럽 학교 중에는 운동장이 없는 학교도 많기에 줄 설 공간도 없고 당연히 구령대도 없다. 그는 몸으로도, 성적으로도 줄을 서지 않는 유럽과 다르게 줄 서는 것에 익숙한 우리의 모습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프랑스는 어떻게 학생을 생각하게 만드나

모든 학생에게 교과서와 같은 지식을 입력하는 내용은 누가 선정할까? 당연히 지배세력이다. ‘객관적 진리로 포장된 지배세력의 이념 또는 관점’을 집어넣는 것이다. <도이치 이데올로기>에서 마르크스는 “한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은 지배계급의 이념”이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도 지배세력의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지배세력의 이념을 잘 주입하는 한국은 그 지점에서 전체주의 사회와 닮았다.

결국,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생각하는 것이 없다. ‘생각하다’가 없는 생각은 지배세력이 선택해서 집어넣는 생각이다. 이로써 초래되는 결과를 체제에 순치되는 ‘자발적 복종’이라 한다. 여기에는 비판도 회의도 없다. 시민의식이 우리 사회에 부족한 이유이기도 하다. 더 심각한 것은 우리가 ‘생각하다’가 없는 주입된 생각을 통해 만들어진 이념과 관점을 가지고 막무가내로 고집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홍 대표는 프랑스 교육 사례를 통해 주체적인 생각을 하는 힘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프랑스에서 자식들이 교육받는 과정을 학부모로서 지켜본 그는 프랑스의 고3 대학 입학 철학 문제를 소개했다. 이들이 접하는 사유세계와 우리의 처지를 되돌아보자. 논제 3개가 나온다. 그중 그는 짧은 질문 몇 개를 소개했다.

   
▲ 스스로 사유 세계를 구축하는 공부, 바칼로레아. ⓒ EBS 지식채널e 갈무리

<프랑스 대입 논술시험, 짧은 질문>
1.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은 정확한 답변을 포용합니까?
2. 신이 없다면 인간의 모든 행위가 용인될까요?
3. 예술가는 실존법을 어겨도 괜찮습니까?
4. 노동시간을 줄여야 삶의 질이 높아지나요?
5. 모든 권력은 폭력을 동반합니까?
6. 국가는 개인의 적입니까?

프랑스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위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이 교육과정 속에서 자신만의 의식 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목과 과목 사이에 통섭이 이뤄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초등학교 때 외운 암기 과정이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더 복잡해졌을 뿐, 스스로 사유 세계를 구축하는 공부는 하지 않는 우리 교육과 다르다.

가령, ‘사회 공부 잘했다’란 뜻은 사회를 보는 눈이 남들보다 더 넓거나 이해하는 폭이 더 깊다는 뜻이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공부 잘했다는 것은 시험 보고 나서 잊어버렸다는 것, 공부 못했다는 것은 시험 보기 전에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홍 대표는 "사유하지 않고 숙지하는 것은 보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기존 체제가 담고 있는 지식을 그저 숙지하는 것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노동절의 유래도 모르는 노동자

“16-14-12-10-8. 2씩 줄어드는 숫자를 보고 무슨 생각이 떠오릅니까?”

‘수열’이라는 학생의 대답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들에게 요구된 하루 노동시간의 변화가 그가 원한 답이었다. 그는 그런 숫자의 나열을 보고 ‘노동시간의 변화’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의식 세계를 갖고 있어야 정상적이라고 강조했다.

1830년 전까지 정규직 노동시간은 16시간이었다, 새벽 5시부터 밤 9시까지. 일감이 늘면 2시간 정도가 추가돼 밤 11시까지 일하곤 했다. 1830년대 이후 사람들의 시위와 혈투 끝에 그 열매로 14시간 노동시간을 쟁취했다. 1886년 5월 1일은 노동절이다. 19세기 후반에 주로 12시간 일하던 미국의 시카고 노동자들이 자신의 삶을 가꾸고 싶다고 주장했다. 하루 8시간은 자고 8시간 일하고, 나머지 시간엔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누리고 싶다며 시위한다. 이때 구호가 ‘빵과 장미’였다. 이 과정에서 몇 선동자들을 정치범 누명을 씌워 처형한다. 이러한 역사의 궤적 속에서 1930년대 2차 세계대전 때 8시간 노동시간이 정착된다.

그가 ‘16-14-12-10-8’을 보고 노동시간을 떠올리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우리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12년 동안 ‘사회과목’을 공부했지만 사회를 보는 눈을 키우지 못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이 사회를 관통하는 ‘하루 노동시간’조차 알지 못하며, 5월 1일이 무슨 날인지조차 우리 의식 세계에 담고 있지 않다. 우리의 존재와 관계없는 지배계급이 만들어 놓은 지식만을 배워왔기 때문이다. 정작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사유하기는커녕 암기기억으로조차 가지고 있지 못한 게 우리 현실이다.

한국은 과연 공화국인가

대한민국은 공화국(republic)이다. 공화국의 어원은 뭘까? 라틴어로 ‘레스 퍼블리카’(res publica)라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공공성을 강조하는 공화국의 출발 정신이라 할 수 있다. 공화국은 공(公)의 개념을 담고 있다. 언론을 공기(公器)라 하는 이유와 같은데, 이는 공익과 진실을 담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우리는 공화국이 단순히 왕이 아닌 대통령을 뽑는 제도라고만 알고 있을 뿐 공화국이 지칭하는 ‘공공성’에 대한 사유가 부족하다. 프랑스에서 홍 대표의 자녀들은 교육과 건강보험료 등을 1년에 한국 돈으로 치면 약 50만 원밖에 안 냈다.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는 뭐였을까? 프랑스라는 공화국은 교육과 의료의 공공성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레스 퍼블리카의 반대말은 ‘사적인 것들’을 지칭하는 ‘레스 프리바타’(res privata)다. 이 역시 신민 교육과 친일세력을 청산하지 못한 문제와 연결된다. 정상적인 국가라면 당연히 ‘레스 퍼블리카’와 ‘레스 프리바타’가 적당히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1948년 실제 공화국이 탄생했을 때부터 모든 것이 잘못됐다. 자신의 사적인 안위와 영달을 위해 공적인 민족을 배반한 세력이 공공성과 공익을 담보해야 하는 ‘공화국’의 실질 세력이 되어버린 것이다. 언론계, 재계, 국방계, 법조계, 교육계 등 모든 사회 부문에서 사적 이해관계가 공익의 요구를 억누르는 결과를 빚었다. 우리의 공공성이 무너진 배경이다.

로마에 가면 ‘수도교’가 있다. 물을 끌어들이는 다리다. 2000년이 넘는 시기부터 로마는 시민들에게 물을 공급해주기 위해 높은 산에서 물을 끌어다 썼다. 물을 공급하는 문제가 그 당시 제일 중요했기에 수도교는 공공성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한국은 공화국인데도 ‘공공성’을 향한 진보가 더디다. 더 심각한 것은 한국에 신자유주의 기조가 덮치면서 공공성 파괴가 일어났다. 의료 민영화, 공교육의 사교육화가 그 예다. 얼마 남지 않은 공공의 영역마저 사적 영역으로 넘어가 버리면서 시장만능주의가 팽배해졌다.

로또 복권의 정치적 함의

‘20 대 80’의 사회. 양극화한 한국사회를 수치화해서 표현하면 상위 20%가 80%를 가지고 있고, 거꾸로 80% 사람들이 20%만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균등하지 못한 부의 배분을 민주주의라는 정치과정을 통해 더 균등한 방향으로 만들 수 있다. 애당초 민주주의란 다중지배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민주주의라는 제도 아래 불균등함을 뒤엎을 수 있는 권리를 얻었는데, 왜 바꾸지 못하는 걸까?

1850년대까지만 해도 프랑스는 참정권의 힘이 재산 정도에 따라 달랐다. 대자본가인 그랑 부르주아는 표를 7장까지 가질 수 있었고, 일반 소 •노동자들은 표를 가질 수 없었다. ‘20 대 80’ 법칙이 통하는 방법으로 부를 독점할 수 있는 사회적 구조가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본력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투표권이 있다. 그런데 왜 더 균등하게 배분된 사회로 가지 못할까?

“그 답은 ‘객관적 진리로 포장된 지배세력의 관점’이란 것을 이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몸은 80%에 있지만 생각은 20%와 같이하기 때문에 자기 처지를 배반하는 정치적 표현을 한다는 것이다.”

20은 뭉쳐있지만, 나머지 80은 지역, 성별, 노동 등 갖가지 계층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정치적 행위에 소극적이거나 무관심하다. 반면 20은 일관되고 통일성이 높으며 정치적 참여가 적극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80의 욕망을 부추기는 사회는 이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20에 편입될 수 있을 것이란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에 더 분열된다.

로또 복권을 예로 들 수 있다. 로또 복권 제도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살펴보자. 로또 복권은 주로 누가 사나? 자신이 처한 현실을 바꾸기 위한 사회적, 정치적 앙가주망(참여)보다는 ‘로또 복권만 된다면’이란 환상 속에서 현실을 바꿀 동력을 잃은 사람들이 산다. 현실을 바꿀 동력을 없애기 위한 정치적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자본에 대한 자발적 복종에서 깨어나려면

홍 대표는 마지막으로 한 개인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했다. 한국 교육은 모든 학생이 똑같은 제도 교육을 받는데 이 교육은 시민교육이 아니라 신민 교육인 주입식 암기 교육이다. 또한 사람들은 매스미디어를 통해서도 의식 체계를 형성하는 생각을 흡수한다. 그렇다면 교육과 매스미디어를 장악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홍 대표는 ‘자본’이라고 답하며 자발적 복종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내가 모자란다는 것을 회의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신문 읽기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특수한 양상이랄까. 소수의 젊은 사람 중에 비판적 의식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흥미롭게도 이들은 비슷한 계기가 있는데요. 바로 선배를 잘못 만났다는 겁니다.”

홍 대표는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설명했다. ‘선배’ 등 주변 사람의 영향으로 토론과 독서를 시작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식이 깨어난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그것은 ‘상대적 우월성’일 뿐이다. 책 몇 권 읽는다고 의식이 깨어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충실히 공부하며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글쓰기도 그런 과정의 하나라고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윤연정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장, 영상부, TV뉴스부 윤연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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