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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목적은 '합의'가 아니다
[인문교양특강] 심보선 시인
주제 ① 예술과 커뮤니케이션
2017년 03월 15일 (수) 22:03:55 김근홍 이수진 박희영 이현지 기자 hyg91418@naver.com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일까요?” 심보선 시인이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을 주제로 특강을 하면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한 학생이 “사람과 사람 사이 소통”이라고 대답했다. 경희사이버대학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이기도 한 그는 이어서 “소통할 때 사람 간에 무엇이 오가는지”를 물었다. “메시지”라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그는 커뮤니케이션을 다른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도 커뮤니케이션을 다자 간 메시지가 오가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수신하지 못하거나 중간에서 왜곡이 일어나면 실패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커뮤니케이션을 효율성 측면에서 보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왜 사람들이 연결되려고 하고, 말을 건네며, 메시지가 수용되길 원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 심보선 시인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특강을 하고 있다. © 이수진

예술은 성공한 커뮤니케이션

심 시인은 커뮤니케이션 이론가 빌렘 플루 서가 ‘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가’에 관해 쓴 글을 떠올렸다. 플루서는 저서 <코무니콜로기>에서 ‘사람들은 죽음과 고립을 극복하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한다’고 썼다. 플루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지기 위해서 상징을 정돈해 배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상징은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다. 언어, 이미지, 몸짓 등이 메시지 형태가 될 수 있다. 이모티콘을 어떤 순서로 배열하는지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진다.

심 시인은 “예술은 상징어”라고 강조했다. 예술 작품을 보고 어떤 의미인지 모를 때가 많다. 한편,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알 것 같을 때도 있다. 심지어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데 감동적일 때가 있다. 그는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예술은 실패한 커뮤니케이션이지만, 플루서 이론에 따르면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감동적이다. 예술이 항상 효율적이지 않고 모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지만 예술은 정돈된 상징을 잘 배열해 의미를 전달함으로써 실존적 공포를 극복하게 해줍니다. 플루서가 말한 성공한 커뮤니케이션의 조건을 갖췄죠. 이것이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이 맞닿는 부분입니다.”

예술에 대한 사랑과 문화자본

“혼자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 있나요?” 심 시인의 질문에 수강생 절반이 손을 들었다. 그가 “혼자 보는 것이 원칙이냐”라고 묻자 많은 학생이 손을 내렸다. 그가 여전히 손을 들고 있는 학생들에게 “혼자 감상하고 마느냐”라고 질문했다. 한 학생이 “영화를 보고 친구와 감상을 나눈다”라고 말했다.

“혼자 봤는데도 이야기를 나눈다. 왜 그럴까요? 친구와 영화를 봤어요. 나는 영화가 정말 재미있는데, 친구는 최악의 영화라고 평해요. 기분이 나쁘죠. 왜죠? 공감해주길 원하기 때문이죠. 왜 원할까요? 사람들은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고, 취향을 가지고 싸웁니다. 심지어 진짜 심각하게 싸워요. 좋아하는 작품을 비난하면 나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끼죠.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를 예술에 대한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부르디외는 한발 더 나아가 문화자본에 대해 말한다. 문화자본은 어떤 대상을 좋아하고 감상하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영향을 받았다는 개념이다. 문화자본은 특히 교육수준, 소득수준, 집안 배경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심 시인은 “문화자본이 축적되고 전승되는 과정이 매우 장기적이기 때문에 신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라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 친구가 헤비메탈 음악을 들려줬어요. 저는 그때부터 음악을 따라 들으며 그 친구를 모방했죠. 하지만 그 친구의 음악적 지식을 따라갈 수 없었어요. 친구의 지식은 어릴 적부터 축적된 것이었기 때문이죠. 결국 우린 말이 안 통했고, 나중엔 그 친구를 만날 수 없게 됐습니다. 제 경험처럼 문화자본은 모방할 수 없습니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강의를 듣고 있다. © 이수진

문화자본은 모방될 수 없다

심보선 시인은 문화자본이 모방될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맷 데이 면과 주드 로 주연의 영화 <리플리>를 예로 들었다. 영화에서 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부호 그린리프의 부탁을 받고 그의 아들, 디키(주드 로)를 데리러 이탈리아로 향한다. 이때 디키의 호감을 얻기 위해 리플리가 쓰는 방법이 바로 그의 취향을 모방하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고 재즈를 배우는 등 리플리는 디키가 속한 상류사회에 진입하기 위해 예술에 대한 특정한 애호를 만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취향 모방에는 한계가 있기에 리플리는 결국 실패하고 영화는 비극적으로 끝난다.

“커뮤니케이션은 계급 내적으로 이뤄집니다. 신분이 다른 계급 사이에서는 좋아하는 예술도 다르고, 소통할 수 없죠. 상층계급이 좋아하고 이해하는 예술은 우월하다고 받아들여집니다.”

심 시인은 사진을 예로 들었다. 부르디외는 사진을 중간 예술이라고 말했다. 누구나 찍을 수 있고 쉽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꽃이나 노을을 찍고 어떤 사람은 인물을 찍는 등 사람마다 즐기는 사진이 다르다. 때로 사람들은 꽃이나 노을처럼 ‘예쁘기만 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을 무시한다. 사진에 대한 취향에 등급이 있고 위계가 있는 것이다. 심 시인은 이러한 취향에 대한 평가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존재해왔으며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영화 리플리(2000)의 주인공 톰 리플리(맷 데이먼)는 디키(주드 로)의 호감을 얻기 위해 그의 취향을 모방하려 애쓰지만 실패한다. © 구글 이미지

우월한 예술, 열등한 예술

취향의 위계와 관련해 미국에서 현대미술 설문조사가 시행된 적이 있다. 심 시인은 백남준의 <무제> (뉴스페이퍼 드로잉)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이처럼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그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설문조사원은 이 그림을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사람들은 최종 학력별로 다른 답변을 내놨다. 고등학교 졸업 이하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다”라고 답하면서 “이게 왜 예술이고 걸작인지 모르겠다”라며 언짢아했다고 한다. 반면 대학교 졸업자들은 “겉으로 보기에만 그럴 뿐, 초등학생이 그릴 수 없는 그림”이라 답했다.

“그렇다면 대학원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사람들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놀랍게도 고졸 이하와 답변이 같습니다. 다만 하나 다른 건 그들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다는 말을 굉장히 쿨하게 했다는 거죠.”

심 시인은 계급에 따라 예술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고 설명했다. 고졸 이하 학력자는 달리 대학원 졸업 이상 학력자는 분노나 언짢음이 아니라 비평적 태도를 가지고 예술을 즐긴다. 이들은 초등학생도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왜 예술이고 위대한지 자신만의 견해를 펼칠 수 있다. 때로 이들이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할지라도 그 언급 속에는 예술에 대한 우월성을 인정하는 태도가 깔려있다. 이렇게 취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벽을 세운다. 그뿐만 아니라 벽 안에 있는, 계급 내 구성원들의 결속을 강화한다.

“이건 사랑과 같습니다. 사랑은 매우 계급적이에요. 사랑으로 계급의 장벽을 초월할 수 있다? 절대 아니죠. 부르디외를 포함한 사회학자들은 결혼을 계급 종례혼이라고 했어요. 계급이라는 부족 내에서 이뤄지는 혼인이요.”

일상적 커뮤니케이션의 한 유형인 예술

심 시인은 예술이 커뮤니케이션과 다르지 않으며, 가정생활이나 종교, 과학 등 여러 공동체적 삶과 함께 작용한다고 강조한다. 그 근거로 레이먼드의 <기나긴 혁명>을 소개했다. 레이먼드는 이 책에서 “예술은 결코 특수한 영역에만 한정되지 않고, 일상적인 활동에서 강렬한 사건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걸쳐져 있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일상적인 커뮤니케이션의 한 유형일 뿐이라는 것이다.

“레이먼드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공동체의 과정으로 봤어요. 공동의 의미를 공유하고 공동의 목적을 지니는 커뮤니케이션은 사회적 과정이고 예술도 그와 다르지 않다고요. 과학, 종교, 가정생활 이런 여러 가지 범주들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세계에 속해 있다는 겁니다.”

부르디외는 일상적인 예술을 특수한 미적 체험으로 보는 미학 이론과 고급예술 제도를 비판한다. 사람들이 믿는 ‘위대한 예술’이 실은 계급의 우월감과 지배욕, 권력 추구를 내포한다고 폭로한다. 심 시인은 부르디외가 가장 비판하는 철학자가 칸트라는 점을 지적했다. 부제가 ‘판단에 대한 사회적 비판’인 부르디외의 <구별짓기>는 미적 취향을 분석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논박하는 책이다.

감성으로 주장을 피력하는 ‘취향공동체’

심보선 시인은 미적 판단이 시민적 자질을 키우는 매우 중요한 바탕이라고 강조한다. 그 중심에 ‘취향공동체’가 있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감성으로 타인과 소통하며 취향공동체를 이룬다. 파트리스 카니베즈는 <시민 교육>에서 취향 공동체에 대해 “수학자들처럼 계산을 통해 의견 일치를 보려고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입증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논쟁한다”라고 말한다. 취향 공동체는 객관적 사실 기반의 논거가 아닌, 감성과 경험으로 주장을 피력한다.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이라 할 때 분리된 영역의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감성적 활동, 감각적 활동,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몸의 체험이 있겠죠. 그리고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강렬한 경험이 있겠죠. 이런 경험, 감성을 통한 소통, 쉽지 않지만, 그런 소통을 우리가 늘 하는 것이고, 그것이 정치공동체, 시민공동체의 중요한 차원을 이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취향 공동체는 ‘내 취향이야’라는 말로 논쟁이 종결되는, 배타적인 커뮤니티라고 비판받는다. 심 시인은 취향 공동체에는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다’라는 열린 소망이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시인은 감성 없이 증거만으로 이루어지는 논쟁이야말로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가로막는다고 말한다.

“격렬한 논쟁 상황에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팩트를 말하면 상대가 지는 게 맞을 것 같죠. 상대편은 오히려 팩트에 입각한 방어 공격을 더 하게 됩니다. 반박할 수 있는 또 다른 팩트들을 얼마든지 많은 거지요. 팩트에 입각한 논쟁은 하면 할수록 오히려 둘 사이의 벽이 더 높아집니다.”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 명백한 ‘외인사’인데도 서울대병원 의사들은 ‘병사’라고 결론 내렸다. 심 시인은 백남기 농민의 죽음에 대한 논란을 예로 들며 공동체의 논쟁이 팩트의 문제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시인은 시민공동체가 경제적 이익, 정치적 성향 등 팩트를 통한 논쟁이 아닌, 감성과 경험을 통한 소통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 백남기 농민의 영정과 사망진단서. 진단서에는 사망의 원인을 ‘병사’로 적시하고 있다. © YTN

성공한 커뮤니케이터 고야

고야의 그림은 현대에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와 같은 ‘블랙 페인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공방이라는 생산체제와 그림 그리는 매뉴얼이 있던 중세 시대에 이런 그림은 발표할 수 없었다. 매뉴얼을 따라야만 사람들이 그림의 의도를 이해하고, 수용해 구매 대상이 됐다. 심 시인은 이를 “쉬운 수학 공식처럼 결론이 나도록 상징이 명확한 알고리즘으로 정돈돼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 고야의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1821년, 프라도 미술관)>. © 구글 이미지

“이 그림은 알고리즘이 없는 이상한 그림이죠. 자식 잡아먹는 신화인데, 신이라기엔 너무 괴물 같고, 자식은 아이의 몸 같지가 않아요. 신화에는 꿀꺽 삼켰다고 돼 있는데, 이건 뜯어먹고 있어요. 상징들이 달라요. 이런 상징들은 그로테스크하죠. 이것을 가지고 어떻게 소통을 하느냐? 재밌는 건 당시에 그렇게 소통이 잘 됐던 매뉴얼을 따른 그림은 누구의 그림인지 모르고, 고야가 우울한 시기에 혼자 그리고 혼자 감상한 그림은 아직까지 인기가 많죠.”

심 시인은 고야의 그림이 성공적이고 매끄러운 예술 커뮤니케이션의 사례라고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은 반드시 상대가 있어야 한다. 고야는 자신의 우울함과 싸우기 위해 이러한 그림을 그렸다. 죽음과 고립의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투쟁을 예술적으로 표현했다. 그는 이 그림을 통해 자기 자신과 소통하기를 넘어 자기와 유사한 처지에 있는 미래의 사람들과도 소통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끔찍한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할까요? 이것을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말이 안 되죠. 미적 판단? 소통? 부모가 자식을 먹는다? 패륜이고 미친 거죠. 이것 가지고 판단하지 않죠. 불편하고 역겹지만 외면하려다가도 자꾸 보게 돼요. 그런 차원이 숨겨져 있는 거죠.”

‘소통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어야 소통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채널과 방식이 있다. 우리가 익숙한 커뮤니케이션은 메시지의 전달과 합의의 도출이다. 그러나 심 시인은 우리가 이미 다른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알고 있고, 경험하고 있다고 말한다.

“책을 읽거나 무엇을 만들거나 보고 느끼는 미적 활동, 감성적 활동 속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이루고 있죠. 예술 하는 사람들의 체험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공동체 차원에서 타인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로 더 확장해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항상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성향만 가지고 소통하고 합의한다고 생각하죠. 사실 그런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바람직하다 아니라고 판단하는 것을 떠나서 감성적 활동을 통한 공동체 구성, 커뮤니케이션에 주목하자는 거예요.”

우리가 익숙한 정치, 경제적 판단과 합의를 하는 커뮤니케이션에 예술을 끌고 오면 어떻게 달라질까? 심 시인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해도 소통이 가능한 다른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해진다고 소개한다. 이는 독일 철학자 칸트가 제시한 ‘소통 가능성의 소통’이란 개념과 맞닿아있다. 소통 가능하다는 믿음과 소망은 소통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렵지만 그런 소통이 가능하고 그것은 예술이라는 특별한 분야에만 귀속되는 소통이 아니라, 시민 공동체의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 주목해봅시다. 예술과 취미라는 특별한 분야의 것으로만 치부하지 맙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6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II]는 한홍구 이창곤 심보선 홍세화 고찬수 이주헌 윤성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박희영 기자]
단비뉴스 영상부, 지역농촌부, 시사현안부 박희영입니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저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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