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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된 국기와 양심의 자유
[역사인문산책] 성조기, 태극기
2017년 03월 14일 (화) 15:37:09 기민도 기자 kmdwhat1@naver.com
   
▲ 기민도 기자

그는 기립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25일 흑인 미국프로풋볼(NFL) 선수 콜린 캐퍼닉은 경기장에서 국민의례를 거부한 채 앉아 있었다. 비난과 질문이 쏟아졌다. 그는 당당히 입을 열었다. “저는 흑인과 유색인종을 탄압하는 국가의 깃발에 자부심을 표할 수 없습니다.” 이 퍼포먼스는 인종차별을 드러냈다. 어떤 차별인가? 2014년 7월 17일 개비담배를 팔다가 경찰의 체포과정에서 목이 졸려 사망한 에릭 가너(그가 죽기 전 마지막에 한 말, “나는 숨을 쉴 수가 없다”는 흑인인권운동의 구호가 된다), 11월 22일 장난감 총을 들고 있다 경찰 총에 맞아 죽은 12살의 타미르 라이스. 미국에서 흑인은 공권력에 의해서 언제든지 살해될 수 있다는 차별이다.

   
▲ 국민의례를 거부한 후에 언론과 인터뷰하는 콜린 캐퍼닉. © YTN 뉴스 갈무리

3월 1일, 태극기가 거부됐다. 한 곳을 제외하고는 태극기가 게양되지 않은 광주의 아파트 단지 사진이 SNS에 퍼졌다. 집 대신 마음속에 태극기를 달았다는 사람들이 그 뉴스에 ‘좋아요’를 눌렀다. 태극기집회가 양산하는 혐오에 질린 이들과 태극기 게양이 혹여 태극기 집회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염려하는 사람들이다. 어떤 혐오인가?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애국세력이고, 촛불을 든 시민들은 반애국 세력이라는 이분법. 반애국 세력은 ‘빨갱이’ 와 ‘종북세력’이기에 박근혜를 지키는 일은 빨갱이로부터 나라를 지키는 것이라는 과감한 논리. 이 논리의 문제점을 알면서도 정치적 목적을 위해 어르신들을 이용하는 정치꾼들에 대한 혐오. 시민들은 태극기로도 감출 수 없는 혐오의 지독한 냄새를 맡았다.

캐퍼닉 사건 당시 오바마 대통령은 표현의 자유 편에 섰다. 한국 네티즌들은 국기를 거부하는 사람까지 존중하는 대통령을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비판도 있었다. 오바마는 헌법상의 권리인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 것이지, 캐퍼닉이 내놓은 메시지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가 캐퍼닉에게 “당신의 행위로 상처받을 미군 가족들을 생각해보라”는 ‘관대한 조언’을 덧붙였던 이유다.

오바마는 벌써 잊었나보다. 2009년 7월 자신의 멘토이자 하버드대 교수인 헨리 루이스 게이츠 주니어가 자기 집 앞문이 잠겨 뒷문으로 들어가려다 무단침입신고를 받은 경찰에 체포됐을 때, 뭐라고 말했는지. “만약 내가 백악관에서 그렇게 행동했다면 총에 맞는 거 아니냐”며 터트린 분노를 말이다. 걸작으로 되돌아온 백인 경찰의 대답에 문제의 심각성이 읽힌다. “대통령이 시골 경찰 업무까지 개입한다.” 대통령한테도 이정도인데, 개비담배를 파는 가난한 흑인들이 어떤 대우를 받았겠는가.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캐퍼닉은 목숨과 직업을 걸고 세상에 나왔는데 대통령 오바마는 고작 헌법 뒤에 숨었다. 물론 헌법마저 무시하고 태극기 뒤에 숨은 대통령도 있지만.

   
▲ 캐퍼닉을 지지하며 경기 전 국민의례를 거부한 하워드 대학의 치어리더. © YTN 뉴스 갈무리

오바마와 달리 NFL 몇몇 동료선수들은 캐퍼닉의 뜻을 지지하며 기립하지 않았다. 여자축구, NBA 선수들도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국민의례를 거부했다. 캐퍼닉의 유니폼은 불티나게 팔렸다. 운동장에서는 동료와 팬들이, 운동장 밖에서는 인권단체들이 캐퍼닉에 힘을 실었다. 한국 시민들은 여성비하 노래가사에 문제제기를 하고 여성과 남성이 함께 존재할 수 있는 광장을 만들었다. 수화통역사를 집회무대에 올려 장애인들의 접근가능성을 높였다. 연대로 혐오를 물리쳤다. 최근 캐퍼닉은 자신의 메시지가 성공적으로 전달됐다며 올 시즌에는 퍼포먼스를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대신 캐퍼닉이 이스라엘에 핍박당하는 팔레스타인과 연대한다는 새로운 차원의 소식이 들려온다. 태극기 집회에서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가 펄럭인다는 정반대의 뉴스와 함께.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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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takunte87 (220.XXX.XXX.250)
2017-03-15 17:08:18
외국 지도자와 한국 지도자 간 표현의 자유를 대하는 대비되는 의식 차이에 씁쓸함이 묻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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