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협치

▲ 안윤석 기자

“물질적 토대인 항산 없이도 도덕적인 항심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선비’만이 가능하다.” 맹자의 말이다. 하지만 조선 중기부터 지금까지 정치를 보면 이 말은 정답이 아닌듯하다. 변질된 붕당정치만 봐도 그렇다. 선비들은 동인과 서인, 남인과 북인, 노론과 소론으로 나눠져 서로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 상대 당파를 숙청했다. 오늘날의 정당정치도 마찬가지다. 정책보다는 보스나 인물을 중심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기에만 급급하다. 도덕심인 항심은 떠나버리고 생존을 위한 항산만이 남은 셈이다.

정치에서 항심이 사라진 데는 승자독식주의 책임이 크다. 승자는 권력과 재물을 얻지만 패자는 죽임을 당하거나 경제적으로 궁핍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기축년, 동인에서 1000명 이상이 숙청되고, 경종 때 소론이 노론을 청산했던 모습을 선비들은 보았다. 풍전등화 같은 상황 속에서 항심을 위해 스스로 마음을 수양하고 ‘경’공부를 하는 것은 사치였다. 조선 후기 파당 정치가 시작된 이후 대부분의 선비들은 항심을 버리고 항산을 택했다. 죽이거나 죽임을 당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협치가 이루어졌을리 만무하다.

▲ 고대 중국 철학자인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생긴다고 했다. ⓒ 위키피디아

그런 점에서 영조의 탕평책은 탁월하다. 선비들이 정치적으로 생존할 수 있게 ‘정치적 항산’을 보장해줬기 때문이다. 협치의 시작이다. 정치적 지위가 확보된 상태에서 선비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영조는 영의정 자리에 노론의 홍치중을 좌의정으로 소론의 이태 좌를 임명해 다수였던 소론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또한 이조판서에 노론 김재로를, 이조참판으로는 소론의 송인명을 등용함으로써 당파 간의 균형을 맞췄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쌍거호대 방식으로 영조는 국정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철저한 공존과 협치를 위한 인재 채용 방식인 탕평책을 통해 영조는 승자독식주의를 타파했다.

오늘날 정당정치에서 영조처럼 승자독식 체제를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대의 민주주의 제도인 만큼 선거제도 개편에 달렸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해결책의 하나로 꼽힌다. 전체 의석 수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따른다면, 40% 아래 정당 지지율만으로 과반 의석을 차지하는 당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폐해가 사라진다. 아울러 국민의 다양한 욕구를 반영할 수 있는 소수정당의 존립기반이 생긴다. 양당을 넘어서 다수당이 협치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국회에서 만들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선거에서 중요한 것은 인물이 아닌 정책으로 바뀐다.   

명성과 자리에 대한 불안감을 빌미로 똘똘 뭉쳐 다른 정당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승자독식 체제는 패자들을 항산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극좌에서 극우까지 다양한 이념 스펙트럼 속에 소수의 의견도 존중되는 정당구조의 민주주의가 건강한 생명력을 갖는다. 정치는 결국 나눔이고, 배려다. 나눔과 배려 속에 반대 의견들이 오가는 토론과 합의의 장이 만들어져야 진정한 민주주의가 꽃핀다. 그렇게 협치가 이루어진다면 정치에서 떠나버렸던 항심이 언젠간 돌아오지 않을까.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고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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