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대선

▲ 김평화 기자

영화 <더킹>이 화제다. 박스오피스 상위권에 꾸준히 머무르더니 누적 관객 수 500만을 넘어섰다. 정우성과 조인성 등 유명 배우가 출연했다는 점 외에 영화 줄거리도 흥행 요인이다. 대한민국 실제 정치사를 소재로 삼은 권력투쟁 풍자극에 관객들이 흥미를 느낀다. 극 중 무소불위의 권력을 일삼는 스타 검사로 한태수(정우성)가 등장하는데, 그의 대사들이 주목받는다. 자신의 부하 검사(조인성)에게 정치공학을 설명하는 장면은 현실보다 더 현실을 담았다. “당한 것에는 보복해야 한다. 이게 아주 복잡한 정치엔지니어링의 철학이거든.” 대선을 통한 권력 교체 후 반대 세력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제거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런데 최근 배척과 응징보다는 협력을 이야기하는 인물이 대선 레이스에서 눈길을 끈다. 야당 대선 주자 중 한 명인 안희정 충남지사다. 안 지사는 자신이 집권할 경우 ‘대연정’을 통해 야 4당뿐 아니라 여권인 자유한국당(전 새누리당)과도 협력할 것이라 말했다.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성남시장 등 야권 대선 주자들이 현 국정 위기의 책임을 여당에 물으려는 태도와 반대다. 일각에서는 촛불민심과 위배되는 행보라며 날을 세운다. 그러자 안 지사는 “과거 적폐를 덮거나 용서하자는 건 아니지만, 대연정이든 소연정이든 의회와 협치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며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다.

최근 발표된 여론조사를 보면 안 지사의 지지율 상승 폭이 예사롭지 않다. 17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자료에는 안 지사의 지지율이 22%로 문 전 대표(33%)에 이어 2위로 나타났다. 대선 출마 선언 이후 한 자릿수를 맴돌던 지지율이 문 전 대표를 위협할 정도로 올랐다. 특히 50대와 60대 이상 유권자층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하고 중도층 지지가 크게 오르는 등 협치에 호응하는 보수층 표심이 움직이는 증거로 보인다. 안 지사 측은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을 위해서는 여권 표도 무시할 수 없다”는 현실론을 내세운다. 다당제로 변모한 현 정치 구조에서 의회 내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상대 당의 동의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찬반이 분분한 현시점에서 어떠한 해법이 국민을 위해 필요한 것일까?

▲ 지난 1월 대구를 방문해 시민들과 만난 안 지사의 모습. Ⓒ flickr

태조 왕건은 남북국시대와 후삼국시대를 이어 새롭게 한반도 단일 국가를 세웠다. 그는 후백제와 신라뿐 아니라 나라 잃은 발해 유민까지 받아들이면서 민족 통일을 이뤘다. 어지러운 한반도 상황을 타개하고 온전한 통일을 이룬 데, 첫 비결은 포용이었다. 그는 끝없는 전쟁으로 견훤(후백제)과 대립했지만, 훗날 힘을 잃은 견훤을 상부(上父)로 부르며 태자보다 높은 지위로 모셨다. 견훤의 아들인 신검 역시 아들로 삼아 받아들였다. 이렇다 보니 힘을 잃은 신라의 경순왕 역시 왕건에게 도움을 구하며 나라를 바쳤다. 거란에 무너진 발해의 유민들도 고려로 발걸음을 옮겼다. 피 흘리지 않고 통일 기반을 닦을 수 있던 것은 칼보다 강력한 포용의 힘 덕분이다.

현재 프랑스도 대선 기간이다. 선두 주자는 프랑스 극우 정당인 국민전선(FN)의 마린 르펜. 그러나, 이곳에서도 2등 주자의 상승세가 무섭다. 중도 신당의 30대 에마뉘엘 마크롱 전 경제장관이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들은 마크롱 전 장관의 대선 결선 투표 압승 조사결과를 내놓는다. 마크롱 전 장관은 “프랑스 좌우를 화해시키는 중심에 서겠다”며 연일 지지율을 높여간다. 프랑스나 우리 모두 국론이 극심하게 갈리는 상황에서 좌나 우를 따지기에 앞서 포용하는 협치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조에 국민이 얼마나 더 호응할지 지켜볼 일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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