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역사

▲ 최지영 기자

‘조선 역사상 일천년래 제일대부패사건’은 세종 4년(1422년)에 터진다. 좌의정, 우의정, 곡산부원군(임금의 장인), 병조판서가 뇌물 스캔들에 휘말린다. 이들은 어느 갑부의 노비 소송문제를 해결해준 대가로 노비 수십여 명을 받는다. 뇌물 스캔들의 주동자는 병조판서(지금의 법무장관) 조말생이었다. 그는 사헌부의 수사를 방해하기 위해 증인을 위협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까지 받아낸다. 세종은 그에게 어떤 벌을 내렸을까?

당시 뇌물수수는 교수형을 처하는 중죄였지만, 세종은 조말생을 황해도로 유배 보내는 데 그친다. 솜방망이에 그치지 않고, 훗날 그를 사면시켜 재상급 관직에 앉힌다. 그가 ‘유능하다’는 이유에서다. 조선시대 언론이었던 삼사는 물론, 모든 조정대신 들이 상소를 올린다. 그의 관직을 거두어 달라는 간청에 세종의 답은 이렇다. “사람의 마음은 잃었던 직임을 돌려주면, 전에 허물을 면하려고 마음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게 된다. (세종실록)” 1438년 조말생은 자신의 아들을 과거에 급제시키기 위해 다시 비리를 저지른다.

▲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다. 설령 오해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다.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 Pixabay

34년 재임 동안 단 한명의 사형판결도 재가하지 않은 위대한 덕치의 리더 세종. 부패문제를 너무 관대하게 처리한 면이 없지 않다. 부패에 대한 관대함은 수백 년이 지나 우리 사회에 그대로 이어진다. 비단 최순실 국정농단만이 아니다. 전·현직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부패가 끊이지 않는다. 부패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없다 부패한 기득권 세력은 ‘부패를 숨기고 처벌을 면하는 데’ ‘유능함’을 내세운다. 세종의 이면이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하지만, 세종은 요즘의 권력과 달랐다. 세종이 진정 위대한 성군임이 두 가지 측면에서 두드러진다.

“백성이 나를 비판한 내용이 옳다면, 그것은 나의 잘못이다. 설령 오해로 나를 비판했다고 해도, 그런 마음을 품지 않도록 만들지 못한 내 책임이다. 어찌 백성을 탓할 것인가.” 먼저, 세종의 책임감이 엿보인다. 모든 걸 본인 책임으로 귀결시킨다. 둘째, 세종은 조말생에게 기회를 다시 주면서도 그가 다시 부패해지는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삼사 관리를 시켜 조말생의 행적을 늘 감시권에 두고, 결국 아들 관련 과거시험 비리를 찾아낸다. “국민의 삶에 도움을 주고자 했던 정책들이 수행 과정에서 특정 개인이 이권을 챙겨 너무나 안타깝다.”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회피 발언이자 부패감시는커녕 공모 혐의자의 변명이다. 청와대가 늘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뒤통수만을 바라본 필연적 결과물인지. 600년 전보다 후퇴한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에 국민은 촛불로 대답한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