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아카데미] 신경수 SBS 드라마국 PD 특강

“강연 제목을 ‘드라마 PD의 자질과 덕목’이라고 했는데, 사실 저는 그런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시기에 어떤 작가, 어떤 배우와 만나 작업을 하느냐가 중요하죠”

SBS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쓰리 데이즈> <육룡이 나르샤> 등을 연출한 신경수 PD가 학생들의 기대와는 다른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신 PD는 드라마 PD의 자질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동료들과의 협업을 강조한 그는 현업에서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와 고군분투했던 경험들을 풀어놓았다. 

지난 7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제1회 드림아카데미’가 열렸다. 저널리즘스쿨과 (사)PD교육원이 공동주관한 특강에는 SBS 드라마국 신경수 PD가 첫 번째 강연자로 참여했다. 신 PD는 <육룡이 나르샤>로 2016 한국방송대상 장편TV드라마 최우수작품상, 2016 서울 드라마 어워즈 드라마 최우수상을 받았다.

▲ 지난 12월 7일 SBS 드라마국 신경수 PD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에서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고 있다. ⓒ 문중현

온몸의 수분도 날려버리는 드라마 PD의 삶

드라마 PD는 여러 PD 직군 중에서도 고생을 많이 하는 직군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많이 개선되었지만, ‘쪽 대본’이 난무했던 과거에는 ‘생방송 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일분일초 시간에 쫓겨 사는 것이 드라마 PD의 삶이다. 신 PD는 드라마 <나는 전설이다>(2010)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5분짜리 테이프를 방송국으로 전달하느라 고군분투했던 일화를 들려주었다. 폭우로 길이 막혀 도로 한가운데 갇힌 신 PD는 ‘테이프를 한강에 던져버리자’는 충동까지 들었다. 그는 퀵서비스를 불러 오토바이 뒷좌석에 타고 빗길을 달렸다. 간신히 시간에 맞춰 방송국에 도착해 방송을 마쳤다. 

“드라마가 끝나고 한의원에 갔는데 한의사가 제 몸에 수분이 다 말라버렸다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을 겪었기에 이렇게 되었냐고 묻는데, ‘애간장이 타서 그런가 보다’고 대답한 적이 있습니다”

작품과 행복한 이별을 맞는 방법

신 PD는 <연개소문>(2006-2007)을 조연출하면서 다사다난한 시간을 보냈다. <용의 눈물>의 이환경 작가가 쓰고 <토지>의 이종한 PD가 연출한 이 작품은 4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었다. 신 PD는 “대형 프로젝트에서 PD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인내심, 통솔력, 정신력, 체력, 돌발 상황 대처능력”이라고 말했다. <연개소문>은 편집자와 음악감독이 두 번씩 바뀌고 CG 회사가 세 번 교체되는 등 그의 말대로 애간장 타는 일이 많았다. 엉성한 CG 장면들은 누리꾼 사이에서 희화되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었다.

▲ SBS 주말 대하사극 <연개소문>. ⓒ SBS

힘든 시간이 지나고 드라마가 막을 내리면 PD는 작품과 이별한다. 신 PD는 행복한 이별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동료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연개소문>을 찍으면서 연출자와 배우, 작가 사이에서 “박쥐 같은 1년을 보냈다”고 한다. 배우가 연출 방식에 불만을 표하면 그 내용을 조절하여 연출자에게 전달하고, 연출자의 생각을 기분 나쁘지 않게 배우에게 알려주는 식이다. 신 PD는 이러한 관계를 얼마나 잘 조정하느냐가 작품의 흥망을 결정한다고 강조했다. 작업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협동이 잘 된다면 작품을 기분 좋게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작가와 배우, 연출자들은 때론 충돌합니다. 그분들 모두 작품에 대한 책임감과 리더십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그때 각각의 책임감과 리더십을 잘 조율해야 합니다. 어떠한 선에서 권력을 나눠주고 책임을 물을 것인가가 아주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일이죠”

▲ 신경수 PD의 강연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 참석자들. ⓒ 문중현

불가능을 가능하게, 현장이 주는 힘

조선 세종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뿌리깊은 나무>(2011)는 신 PD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드라마다. 그는 이 드라마에 대해 “지금껏 만날 수 없었던 최고의 대본, 최고의 배우들로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고 평했다. 드라마는 보통 A팀 B팀으로 나누어 찍는데, 신 PD는 이 작품에서 B팀 연출을 맡았다. 신 PD는 <뿌리깊은 나무>의 한 장면을 보여주며 ‘현장의 힘’을 경험한 일화를 들려주었다. 이도가 광평대군의 죽음 앞에서 처음으로 감정을 내비치는 중요한 장면을 찍을 때다. 신 PD는 A팀에서 촬영 중인 한석규 배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4~5시간 정도 걸리는 장면이었는데, A팀 촬영이 계속 늦어졌다. 다른 배우들의 리액션 장면을 미리 찍고 난 후, 한석규 배우가 새벽 4시가 되어서 현장에 도착했다. 

“어떻게 찍었는지 모르겠어요. 이도가 죽은 광평대군을 가마에서 끄집어내고, 손을 올려다보지만 손이 떨어지고... 그렇게 본능적으로 쫙 찍고 나니까 해가 뜨더라고요. 현장이 주는 힘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배우도 이 장면이 중요하단 걸 알았기 때문에 부리나케 와서 열렬하게 참여했고, 촬영감독도 마찬가지로 최선을 다해 찍어주었죠. 시간 없으니 다음에 찍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면 이 정도의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신 PD는 <뿌리깊은 나무>의 프리퀄인 <육룡이 나르샤>(2015)를 메인연출로 작업했다. 이 두 작품 모두 김영현 박상연 작가가 썼다. 그는 <뿌리깊은 나무>를 하면서 느꼈던 작가와의 신뢰와 연대가 <육룡이 나르샤>를 연출하기로 결정한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주인공 이방원(유아인 분)의 청년기를 그린 <육룡이 나르샤>를 통해 신 PD는 이방원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밝혔다.

▲ 신경수 PD가 본인이 연출한 <육룡이 나르샤>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 문중현

신 PD는 이방지(변요한 분)의 캐릭터를 현장에서 ‘발견’했던 날을 생생히 기억했다. 성인 이방지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을 찍을 때다. 당시 변요한 배우는 이방지라는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할지 마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신 PD는 이 배우가 현장에서 연기를 하면서 스스로 캐릭터를 찾아냈다고 말했다.   

“배우가 캐릭터를 창조하고 완성하는 게 현장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연출자가 아무리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줘도 이해가 안 갈 때가 있어요. 변요한 배우가 본능적으로 칼을 들고 베어보고 피를 얼굴에 적셔보니까, ‘아, 이게 이방지구나’하고 깨달은 장면이에요. 그날 배우는 괴로움을 떨치고 행복해하면서 촬영을 마무리했었죠” 

드라마 PD의 자질과 덕목

신 PD는 강연 말머리에 드라마 PD의 자질과 덕목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했지만, 그의 강연을 들으면 알 수 있다. 바로 책임감이다. 드라마 PD는 많게는 100명, 적게는 40-50명의 스텝들을 통솔하며 작품을 이끌어간다. 배우, 카메라, 조명, 미술스탭, 엑스트라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드라마 PD의 작업이다. 신 PD는 특히 동료들과의 공감 능력과 소통을 강조했다.

“책임감에는 프로젝트를 완수한다는 책임감도 있지만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어요.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감 능력이 높은 친구들은 어려움을 만났을 때 더 잘 극복하는 것 같아요. 책임감의 또 다른 측면인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다면 드라마 PD로서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편집 : 박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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