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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꿈틀’대는 중
[저널리즘특강]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주제 ① 단행본 저널리즘
2016년 08월 17일 (수) 21:32:17 서창완 이현지 강한 기자 seotive@gmail.com

오연호 대표가 만든 <오마이뉴스>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라는 모토 아래 시민기자 제도를 운영한 세계 최초의 언론사다. <오마이뉴스>를 16년간 이끌어 온 오 대표는 자신이 가장 잘한 일로 2년 만에 편집장을 그만둔 것을 꼽는다. 편집장 일과 대표 일을 분리한 덕분에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한 강의만도 500회를 넘기고 ‘꿈틀리 인생학교’를 만드는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다. 기자, 사업가, 교육자인 그는 꾸준히 ‘화두’를 던지고 실천한다.

소설가보다 기자가 필요했던 80년대

   
▲ 오연호 대표는 궁금한 것을 함께 얘기하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 문중현

오 대표의 중학교 1학년 때 꿈은 ‘소설가’였지만, 국어국문학과에 들어간 지 석 달 만에 소설가의 꿈을 접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지금은 소설을 쓸 때가 아니라 “사실이 급한 때”라고 판단했다. 요즘처럼 인터넷이 있던 때도 아니라서 대자보와 유인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실’들을 알렸다. 오 대표는 대학교 4학년이던 86년에 쓴 유인물이 <조선일보> 사회면 머리기사로 올라 감옥에 갔다.

“그 후에 제가 기자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한 거예요. 감옥에 있을 때 어디에 취업할까 고민해 봤죠. 요즘처럼 매체가 다양하지 않았어요. 감옥에서 나가면 딱 한 군데 월간 <말>지밖에 없다고 생각했죠. 전두환 시절에 조선, 동아, 연합 등에서 쫓겨난 기자들이 있었어요. 그 기자들이 밥벌이와 언론활동 하기 위해 만든 곳이죠. <말>이 처음 발행됐을 때 바이라인이 없었어요. 이름이 밝혀지면 감옥에 가니까. 당시 제 판단에 오직 그 매체만 살아 있는 매체였어요.”

오 대표는 1988년부터 12년간 <말>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월급은 교사 초봉의 절반도 안 됐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받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했기에 버틸 수 있는 세월이었다. 이 가난한 매체에서 일한 지 7년 만에 워싱턴 특파원이 됐다. 회사에서는 보내줄 형편이 안 되니 직접 직책을 만들었다.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말>지에서 일한 지 7년, 더 이상 가슴이 뛰지 않아서였다.

“내가 가진 장점만 가지고는 더 이상 안 되겠구나 하고 느꼈어요. 세계화 시대니까 국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겠고. 밀레니엄 시대 이런 거에 준비가 안 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제대로 된 기사를 쓰고 있는가 고민됐죠. 사장님한테 계약서를 써서 찾아 갔어요. 1항 ‘오연호를 워싱턴에 파견한다.’ 2항 ‘모든 비용은 오연호가 부담한다.’ 내가 워싱턴 못 가면 사표 내겠다 하고 갔어요.”

무작정 미국으로 간 오 대표는 <MBC> 라디오에서 ‘알바’를 했다. ‘세계는 지금’에 전화해 미국 현지에서 일어난 일을 전달하는 임무였다. 이 일로 요즘으로 치면 130~140만 원 정도 월급을 받았다. <말>지 월급보다 많았다. 아내는 접시 닦는 일을 했다. 정보화∙세계화 시대 안목을 넓히려는 목적에 하나의 주제도 갖고 갔다. ‘미국은 왜 망하지 않는가?’ 냉전 시대 막강하던 소련이 망했고, 강력하던 로마제국도 망했는데, 미국은 어떻게 초강대국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궁금해서다.

‘재미있는 지옥’에는 뉴스거리가 많았다

‘세계는 지금’에 소개한 내용을 묶어 <말>에 썼고, 그걸 묶어 단행본을 냈다. ‘단행본 저널리즘’의 시작이었다.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당시 2만 부 이상 팔렸다. 미국에서 석사까지 하고 박사 권유를 받았지만, 97년 대선에 맞춰 한국에 왔다. 오 대표가 보기에 당시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었지만,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었다. “지옥에 뉴스거리가 많잖아요.” 기자 오연호는 정치부 기자로서 취재하고 <오마이뉴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 소설가가 되고 싶었던 오연호 대표의 중학교 2학년 때 사진이 화면에 띄워져 있다. ⓒ 강한

“여러분, 지금 모를 일입니다. 여러분 앞날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정말 몰라요. 제가 중2 때 이런 질문을 했어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을까?’ 근데 신기하게도 내가 모르는 내가 내 안에 있더군요. 제가 사업가가 됐잖아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안 했어요. 근데 제가 일주일에 한 번씩 강화도에 가서 아이들 국어 가르치고 있어요.“

작은 궁금증에서 시작되는 변화

오 대표는 재작년 9월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란 책을 펴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 <진보집권플랜> 등을 쓴 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제목이었다. 책은 50세에 기자로서 던진 화두에서 시작됐다. “나는 무엇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아파트가 치솟고 더 잘산다고 하는데도 걱정과 불안거리는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궁금했다. ‘흙수저’ ‘엔포세대’ ‘헬조선’ 따위 말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된 이유를 규명해보고 싶었다.

선택지는 덴마크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여서다. “왜 행복하다는 걸까? 도대체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사회가 만들어지는 걸까?” 2012년 말 그런 궁금증을 안고 덴마크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17대 대선 결과에 매우 실망한 상태여서 휴식도 필요했다. 취재를 시작한 지 사흘 만에 ‘이거 나 혼자 보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오마이뉴스>에 연재하기로 했다.

“일간지 같으면 바로바로 써야 하니까 현지에 가서도 글을 써요. 근데 이 취재만큼은 나도 행복하자고 간 거니까 나도 여행 동안에는 글을 안 쓰자고 생각했어요. 이때 엄청난 경험을 했어요. 유일하게 이때 글을 하나도 안 썼습니다. 신선한 충격이었죠.”

독자 반향이 컸다. 몇몇 기관에서 강연 신청이 들어왔지만, 강연장에서 쏟아지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었다. 아직 덴마크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느낀 오 대표가 2차, 3차 취재를 가게 된 이유다. 덴마크는 행복지수가 가장 높지만 유럽에서 물가도 가장 비싼 나라여서 기자를 한 명만 데리고 갔다. 열흘간 운전면허가 없는 기자를 모시고 행복이란 무엇인가를 취재했다.

덴마크 사람들이 행복한 이유는 여섯 가지다. “자유, 안정, 평등, 신뢰, 이웃, 환경.” 책이 나온 뒤 강연이 더 많이 들어왔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덴마크 이민’이란 검색어를 만들어 내기도 했다. 오 대표는 그런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이민 가지 말라고 설득했다. 이민 갈 열정으로 우리 안의 덴마크를 만들어 보자는 얘기였다. 작년에만 69일이나 외박을 했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돌아 다녔다.

초등학생 표정으로 고등학생이 되는 덴마크

   
▲ 50세에 던진 화두로 시작된 책 한 권이 큰 반향을 일으켰다. ⓒ 오마이북

오 대표가 덴마크 사람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 소개할 때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덴마크의 ‘인생학교’다. 인생학교는 중학교를 졸업하면 바로 고등학교에 들어가지 않고 거치는 1년짜리 기숙학교다. 이곳에서 덴마크 학생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1년 내내 실컷 한다. 잠시 학업을 쉬고 자신의 인생을 설계해보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덴마크에는 ‘애프터스쿨레’라고 불리는 이런 인생학교가 250여개나 있다. 어떤 학교는 축구만 하고, 어떤 학교는 여행만 다닌다. 그 1년이 청소년들에게 ‘인생은 즐거운 것’이란 믿음을 심어준다. 오 대표는 덴마크 학생들과 한국 학생들의 표정이 다른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한국 학생들에게 인생은 ‘경쟁’이지만, 덴마크 학생들에게는 ‘행복’이다.

“덴마크가 행복한 증거 중 하나가 덴마크 학생들은 초등학생 때 표정이 고등학생 때까지 유지된다는 거예요. 우리는 대체로 초등학생 때 좋다가 중학생 때 어두워지고 고등학생 되면 거의 말을 안 하죠. 왜 이렇게 될까요? 그것을 우리가 규명하고 바꿔야 합니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불행한 이유는 뭘까? 오 대표는 강연을 다니면서 우리나라 교육시스템의 문제점을 제기했다. 강연장을 찾은 사람들로부터 “우리도 인생학교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말도 많이 들었다. 말만 할 뿐 시도하는 사람이 없어서 오 대표가 직접 학교를 만드는 데 뛰어들었다. 작년부터 세미나를 하는 등 준비 끝에 올해 2월 22일 ‘꿈틀리인생학교’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기사가 ‘진화’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가 단행본으로 나왔고, 단행본이 500여회 강연으로 이어져 ‘꿈틀리 인생학교’가 된 것이다.

“처음 오마이뉴스에 덴마크에 대한 기사를 썼을 때 이 일이 이렇게까지 진화할 줄은 몰랐어요. 기자가 기사를 쓰고 그것을 모아서 책을 내고, 사람들과 2시간 얼굴을 맞대고 그 화두에 대해 논의한다는 것, 이것은 얼마나 진하게 기사를 공유하는 것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전 500번째 연재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제 기자 인생에서 가장 긴 연재기사죠.”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 꿈틀리인생학교

꿈틀리인생학교 입학식은 올해 2월 22일 오후 2시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열렸다. 2000년 2월22일 오후 2시 오마이뉴스가 설립된 지 16년 만이다. 오 대표는 미디어와 학교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이냐에 화두를 던지고, 우리의 인생과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일이어서다.

꿈틀리인생학교는 ‘스스로 더불어 즐겁게’를 모토로 학생들이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그 과정을 즐기도록 돕는다. 학생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식사당번인 날에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음식만 만든다. 학교와 계약한 강화도 두 농가에서 파종부터 수확까지 농사도 짓는다.

   
▲ ‘꿈틀리인생학교’ 학생들이 스스로 살기 위해 가장 먼저 배우는 건 ‘밥짓기’다. ⓒ 강한

각자 잘할 수 있는 분야를 다른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한다. 집에서 벌을 길렀던 한 아이는 학교 뒷산에 벌을 키우며 친구들에게 꿀벌의 세계를 가르쳐준다. 학생이 학생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한 친구한테는 축구, 다른 친구한테는 꿀벌을 기르는 법을 배우며 서로 돕는 삶을 배운다. 각 학생들의 특성을 살려주는 게 이 학교의 가장 큰 특징이다.

오 대표는 일주일에 한 번 꿈틀리인생학교에서 직접 글쓰기를 가르친다. 오 대표가 가르치는 방법도 서로의 특성을 인정해주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의 학교 교육은 폭력적이다. 집중하지 않을 자유를 주지 않는다. 오 대표는 사람을 태도나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면서 두 가지 사례를 이야기했다.

“한 학생은 강의 때 혼자서 끄적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미로를 그렸어요. 그 미로를 따라 길을 찾으면 ‘꿈틀리’예요. 또 한 번은 ‘봄비’로 시를 쓴 적이 있었어요. 다른 애들은 ‘봄비’에 대해 브레인스토밍하고 어떻게 쓰자고 하는데 한 애는 90분 내내 표정이 어둡고 참여도 안 해요. 그래도 뭐라도 써 보라고 해서 5분 남겨 놓고 뭔가를 끄적였는데 30명 중 최우수 작품이었어요. 수업 태도는 내가 제일 미워했는데.”

열심히 학원을 다니고 대학을 나와 직업을 가져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꿈틀리인생학교는 앞만 보고 빨리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가르친다. 서로 도우면서 스스로 즐거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학교라는 가장 사회적인 공간에서 구체화한다.

우리 안의 덴마크

오 대표는 꿈틀리인생학교와 같이 특별한 학교가 우리나라에 많다고 말한다. 충청남도 홍성군에 있는 풀무학교는 교장과 학생이 친구처럼 지낸다. 교장실 앞에 ‘사랑방’이란 표지판이 붙어 있다. 교장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난’ 하나 없다. 대신 ‘낫’이 있다. 교장선생님은 낫으로 학생들과 함께 농사를 짓고 화단을 가꾼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구에 있는 태봉고등학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교장실에 아이들 생활공간을 꾸몄다. 8년째다.

“처음에 얼마나 어색했겠습니까? 근데 내가 갔을 때 교장은 일하고 남학생과 여학생이 등을 맞대고 만화책 읽고 있더라니까. 이 학교가 대한민국 최초 대안공립학교입니다.”

꿈틀리인생학교 시작에 불을 붙여준 경기도 의정부의 꿈틀자유학교 학생들은 스스로 규칙을 만든다. 한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은 ‘종이비행기를 날릴 때 그 안에 자기 이름을 적어 놓는다’는 규칙을 만들었다. 누군가 종이비행기를 날리고 줍지 않았을 때 누가 종이비행기를 날렸는지 알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오 대표는 이런 장면은 덴마크에서도 볼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우리 안에 이미 덴마크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학교를 보면서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사람들에게 ‘덴마크 이민 가려 하지 마라, 이미 우리 안에 덴마크가 있다’고 말하죠. 제가 보니까 덴마크 학생보다 더 스스로, 더 더불어, 더 즐겁게 살아가고 있어요.”

   
▲ 오연호 대표의 강의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 ⓒ 강한

진보와 보수를 떠난 화두 ‘행복’

학교까지 설립한 오연호 대표는 이런 진화의 끝이 어디일까 자신도 궁금하다고 한다. 단행본에서 시작된 강연이 ‘꿈틀리인생학교’로 이어졌고, 독자들을 데리고 덴마크에서 행복 현장을 둘러보는 ‘꿈틀비행기’가 진행됐다. 곧 우리나라 행복현장을 찾는 ‘꿈틀버스’도 생긴다. 우리 안의 꿈틀거리는 현장을 찾아가는 ‘꿈틀뉴스’도 만들 예정이다.

“지금은 언론인은 3분의 1만 하고 3분의 2는 강연하고 다녀요. 이게 진보 진영과 관련이 있어요. 오마이뉴스 핵심 독자와 강연하며 만나는 사람 하고 많이 달라요. 외연이 많이 커졌어요. 예전에는 40~60대 남자가 주요 독자였다면, 요즘 강연 가서 눈 반짝반짝하는 사람들은 젊은 엄마들이에요.”

오 대표의 독자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로 넓어졌다.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경상도에서도 많은 강연을 신청한다. 경상북도청과 대구교육청에서 강연했고, 구미와 포항도 다녀왔다. 그 이유를 오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고등학생이 되면 표정이 어두워지는 우리 아이는 우리 모두의 의제거든요.” 꿈틀리인생학교 입학생 서른 명이 이어 쓴 시의 한 부분에서 ‘꿈틀’대는 진보가 보인다. 변화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30명의 학생이 꿈을 찾습니다.
아직 찾지 못한 학생도 있습니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지금이 시작입니다.
1년 동안 찾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즐길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김종철 이대근 곽윤섭 박태균 김호상 임병도 오연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성희 기자

[서창완 기자]
단비뉴스 청년팀, TV뉴스팀 서창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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