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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던진 이는 송몽규만이 아니었다
[상상사전] ’나’
2016년 04월 26일 (화) 14:17:27 조창훈 기자 nakedjochang@gmail.com
   
▲ 조창훈 기자

한참 전에 써둔 글을 보면 낯이 뜨거워지는 때가 많다. 난 왜 이리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가?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고 쉽게 화를 내고 내 기준으로 남을 평가한다. 지난 3월 25일 쓴 글을 다시 읽어본다.

'꽤 이른 시간에 일어나 헬스클럽에 간다. 운동은 부위를 나눠 지정된 자세로, 계획된 횟수를 시행한다. 짧은 시간에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서다. 일종의 포드시스템이다. 도서관 자리에 앉아 귀마개를 한다. 이후 일정은 30분 단위로 짠다. 일간지에서 기사와 사설∙칼럼을 읽고, 점심시간은 1시까지, 스터디는 3시부터다. 일정이 어긋나면 짜증 난다. 누군가가 방해하면 성질이 난다. 소통이 쉽도록 칸막이를 없앤 구글 사무실? 꿈같은 이야기다. 때로는 누구와도 말을 섞고 싶지 않다.

나를 부럽게 보는 시선이 있다.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다고. 운동까지 어떻게 하느냐고. 그 말에 기분이 좋다. "오늘은 일어나기 정말 힘들었다"고 엄살을 떨며 속으로는 으쓱한다. 자신을 정확하게 관리하는 능력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강자의 전유물인 듯하다. 그냥 ‘관리한다는 느낌이 좋다’ 정도로 하자. 나를 불편하게 보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경주마 같다고.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다. 그런 생각은 스스로를 나약하게 만든다. 아무렴 어때. 생각은 본인 자유다.

   
▲ 취직/무직 이상으로 나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상상하지 못한다. ⓒ <KBS 뉴스9> 캡쳐

먹고 살아야 한다. 사람은 밥만으로 살 수 없다. 내게 밥 이외 그 무엇은 자존감과 부채감 사이 어디쯤 있다.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은 기자가 됐고, 가까운 친구들은 진로에 따라 자리 잡았다. 내 자존감을 위해서는 기자 일을 하지 않더라도 기자가 된 뒤에 때려치워야 한다. 빚진 것마냥 떠다니는 두려움도 있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내가 기자가 될 거라 믿는다. 신뢰를 저버리면 나는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부채감이 나의 존재감이다. 잘나고 싶다는 욕망과 밀려나면 죽음이라는 공포 사이에서 나는 굴러간다. 

나는 기자 공부를 한다. 어느 때부터인가 세상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기자는 세상을 고민하면 밥벌이가 따라오는 직업이다. 내가 쓴 기사로 어려운 사람들이 힘을 얻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이 공부를 시작했다. 그러나 현실에 맞닥뜨린 난 괴물이 되어간다. 다른 사람 문제를 내 문제처럼 느끼려고 노력하나 공부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노력인지 헷갈린다. 공감과 연대가 중요하다고 글을 쓰지만 귀를 막고 주변의 슬픔에 눈감는다. 생존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지상목표다. 취직/무직 이상으로 나와 세상의 연결고리를 상상하지 못한다.

많은 청년들이 그럴 것이다. 젊은이들이 정치∙사회의식이 없다는 글을 몇 번이나 본 적 있다. 자기계발에 매몰돼 '함께'를 꿈꾸지 않는단다. 젊은이 모두가 투표하고 정치∙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진다면 세상은 젊은이들에게 더 나은 삶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정치에 대한 관심'을 위해 쓰는 시간과 노력이 투자 대비 수익이 명확하지 않다는 걸 잘 안다. 1시간 신문 읽기보다 1시간 토익 공부가 더 나은 직장을 갖게 하고, 복잡한 뉴스보다 예능 프로그램 한 편이 더 큰 쾌락을 준다.

직접 정치를 하거나 소위 '운동'을 하려면 중산층 이상의 삶을 포기할 각오를 해야 한다. 운동의 결과 역시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될 공산이 크다. 그냥 정치∙사회문제는 '메시아'가 튀어나와 자신을 대신해 처리해줬으면 좋겠다. 정치∙사회문제에 눈감고, 그런 자신을 합리화하기 위해 정치를 혐오하고, 자신의 밥벌이에만 집중한다. 이 사회가 탄생시킨 ‘합리적인’ 젊은이의 모습이다.

도시화 이후의 공동체 해체, 20대 개새끼론, 먹고사니즘, 정치 자체가 문제라는 정치혐오론, 무너진 학생운동, 스스로 경영자가 돼야 하는 자기계발론 등 현재 청년들이 사회나 정치에 관심이 없는 이유들은 언론과 학술논문, 책 등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나온다. 대체로 일리 있고, 무릎을 치며 동의한 내용도 있다. 그러나 그 동의가 그 뿐이란 걸 너무나 잘 안다.

   
▲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친구로 나온 송몽규(박정민 분). ⓒ 영화 <동주> 공식스틸컷

철학자 한병철의 말마따나 수많은 청년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경영자’로서 자기관리라는 방식으로, 체제가 원하는 인재로 ‘최적화’하는 일에만 열정을 쏟을 것이다. 모난 성향은 다듬고 끝없이 자신을 힐링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소진된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실업, 저임금, 주거비, 사교육비, 수저계급, 무복지 등 대한민국의 모든 모순을 껴안은 세대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를 외치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 같다.

영화 <동주>를 봤다. 난 윤동주보다 송몽규에 이입됐다. 송몽규는 세상에 자신을 던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인간이다. 난 그럴 용기가 없기에 그 부러움을 송몽규에 투영한다. 그 용기 이전에는 자신이 세상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면 주역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 ‘기자지망생’인 나에게는 그런 희망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좀 슬프다. 오늘 나의 하루는 또다시 나 자신에게 화를 내기 바쁘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4.13선거 결과에 대해 정치인도 언론인도 변명하기 바쁘다. 그러나 나는 기쁘다. 내 예측이 틀린 게 기쁘고 청년들에 대한 실망이 신뢰로 바뀌는 체험을 한 게 즐겁다. 청년들이 대거 투표장에 나가 ‘저항투표’를 했다고 한다. 나 자신을 포함한 청년들에게 화를 낸 게 쑥스럽다. 우리는 모두 또 하나의 송몽규였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민수아 기자

[조창훈 기자]
단비뉴스 미디어팀 조창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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