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다음웹툰 박정서 대표

인터넷에서 보는 만화, 웹툰은 요즘 엔터테인먼트(오락)산업의 대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문화방송(MBC) <무한도전>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 한국방송(KBS) <해피투게더> 등 인기프로그램에 웹툰 작가가 출연하고, MBC 수목드라마 <W(더블유)>는 웹툰 자체를 소재로 했다. 그런데 작가들을 도와 웹툰을 기획하고 유통하는 피디(PD)라는 직군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웹툰 피디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카카오에서 분사한 ‘다음웹툰컴퍼니’의 박정서(37) 대표를 지난 6월 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의 사옥 내 카페에서 만나고 9월 5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강풀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로 웹툰 전성기 개막 

박 대표는 다음 미디어 챌린저(Daum Media Challenger)라는 인턴 프로그램을 거쳐 2006년 다음의 뉴스 서비스 부문에 입사했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첫 직장인 이곳에서 동기 중 유일하게 웹툰 서비스에 지원했다. 다음의 웹툰 섹션인 '만화 속 세상'은 당시에 규모가 크지 않아서 뉴스 사진을 올리는 곳에 만화를 같이 올렸다.

▲ 다음웹툰 박정서 대표가 카카오 판교 사옥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염선문

박 대표는 다음웹툰 플랫폼에서 세 번의 큰 변혁을 겪었는데, 첫 번째는 2007년 강풀 작가가 연재한 <그대를 사랑합니다>였다고 한다. 구독자가 몰리면서 뉴스 서버가 다운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두 번째는 2010년 Hun(최종훈) 작가가 연재한 인기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같은 이름의 영화로 제작돼 성공한 일이다. 이 영화가 700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웹툰 판권비즈니스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세 번째는 윤태호 작가가 2012년에 연재한 <미생>이다. 웹툰은 물론 방송 드라마가 성공하고 만화책이 300만권 이상 팔렸다. 박 대표는 여기서 더 도약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미생이 큰 성공을 거뒀지만 분야는 정해져 있었어요. 드라마와 출판 정도. 미생 캐릭터가 박혀있는 캔커피를 출시했지만 대박 나지는 않았으니까. 이야기든 캐릭터든 다양한 분야로 확장해서 모든 사업을 총괄적으로 아우르는 사례가 나와야 해요. 그다음은 해외시장을 공략해야 하고.”

▲ 웹툰 <그대를 사랑합니다>는 영화, 드라마, 연극으로 웹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영화, 뮤지컬로 OSMU됐다. ⓒ 네이버영화

국내 시장은 미국, 중국 등에 비해 인구가 적다는 한계가 있다. 제조업자가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웹툰을 활용한 '머천다이징 상품’을 만 개 이상 파는 일이 한국 시장에서는 힘들다. 국내 시장이 좀 더 크다면 더 싸게 더 좋은 상품을 만들 수 있는데 시장이 작아서 비슷한 품질의 미국산, 일본산 제품에 비해 비싸게 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웹툰 상품의 해외공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적 차이 때문에 힘들 수 있지만 최근 좋은 사례가 나왔어요. 웹툰 사례는 아니지만 2014년에 개봉한 영화 <수상한 그녀>가 해외로 나갈 때마다 리메이크됐고 수출한 국가마다 다 성공했어요. 큰 틀을 유지하되 각 나라별로 먹힐 수 있는 요소를 로컬라이징(지역화)해 디테일을 살리는 전략이죠.”

<수상한 그녀>는 중국, 일본, 태국, 인도네시아, 인도, 독일, 스페인에서 리메이크로 개봉해 성공했다. <미생>은 일본의 후지TV에서 방영 예정인데 일본 회사 상황에 맞게 현지화해서 일본 작가가 대본을 쓰고 일본 PD가 연출한다.

▲ 영화 <수상한 그녀>는 7개국에 리메이크됐고 지역화 전략으로 성공했다. 좌측부터 원작인 한국, 리메이크작인 중국, 일본판 포스터. ⓒ 네이버영화

작품 모니터링하며 댓글 반응에 촉각

다음웹툰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약 250명 정도다. 콘텐츠, 기획, 사업, 개발, 디자인팀으로 구성된 다음웹툰 실무진이 작가들과 손발을 맞춰 일한다. 기획사업 직군 중 웹툰PD의 주 업무는 콘텐츠 제작(프로듀싱)이다. 이들은 밤 11시 30분 무렵 업무를 시작해 자정에 배포되는 웹툰을 모니터링한다. 작품에 문제가 있다면 수정을 요청한다. 소수자에 대한 무의식적인 비하가 포함되어 있거나 사실관계(팩트)가 잘못 전달되고 있는 경우가 그 예다. 올라온 웹툰이 제대로 서비스되는지 1시간~1시간30분 정도 모니터한 후 잠을 잘 수 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나와 플랫폼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댓글을 보며 확인한다. 오전에는 작가들이 보낸 시나리오를 검토한다. 웹툰PD 한 명당 한 달에 30~40편의 새로운 작품을 검토한 후 어떻게 개발할지 회의한다. 진행할 작품이 결정되면 오후부터 작가에게 피드백을 보낸다. 작품을 계약하고 오후 네 시부터는 웹툰 마감을 챙겨 입력한다. 그러면서 다음 날 웹툰 마감을 챙긴다. 이 패턴이 매일 반복된다.

웹툰PD는 혼자 작업하는 작가들이 놓친 부분을 잡아내는 역할을 한다. 이야기 보완, 캐릭터 설정, 작품의 색감, 불필요한 컷, 선정성 문제도 의논한다. 그래서 작가와 작품을 위해 객관적으로 맞는 방향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있는 사람, 큐레이팅(여러 정보를 수집, 선별해 정보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내를 해주는 활동)이 가능한 사람이 웹툰PD에 적합하다고 박 대표는 강조했다. 특히 독서량이 많아야 한단다.

“지금 웹툰이 다루는 소재영역이 넓어지면서 PD들은 현재 논의되는 이야기를 작가에게 가이드해줘야 해요. 예를 들어 페미니즘 문제, 종교 문제, 사회적인 부분을 어떻게 어디까지 다뤄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거죠. 페미니즘 운동 최전선에서 이야기가 100까지 나오는데 작가님 이야기에서는 30에 머무른다면 논의를 100까지 끌고 가는 역할이죠. 논의가 완료된 지난 이야기를 하면 안 되니까요.” 

▲ 독자가 보는 모든 웹툰은 사전에 PD의 손을 거친다. 드라마 <W> 속 편집장처럼 플랫폼에 업로드 된 웹툰을 보며 왈가왈부하지 않는다. ⓒ MBC <W> 갈무리

독서량 많고 폭넓은 관심사 가져야 

박 대표는 이 일이 ‘가리는 거 없이 다 좋아하는’ 자신에게 적합한 직업이라고 자부했다. 특히 웹툰 피디는 ‘만화만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만화도 좋아하는 사람’, 즉 문화 전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웹툰은 대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대중의 취향과 본인의 취향을 8:2 정도로 맞추는 게 좋다고 말했다.

“무조건 재미있어야 해요. 재미없으면 콘텐츠로서 가치가 없어요. 그다음 새로워야 합니다. 기존에 나왔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소재든, 시각이든 조금이라도 새로운 생각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다면 그것이 베스트입니다.” 

웹툰PD는 또 콘텐츠만으로 돈을 벌기 어려운 국내 시장에서 어떻게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지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MLB(메이저리그 야구) 같은 경우도 입장료 수익보다 구장에서 파는 맥주 수익이 더 커요. 콘텐츠 자체 말고 그 안에 숨어있는 비즈니스를 발견하는 게 중요해요.”

박 대표는 아직 부대 수익을 낸 사례가 나오지 않아서 열심히 개발 중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콘텐츠시장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지난달 1일부터 웹툰 조직을 사내 독립기업(CIC)으로 전환했다.

“요새는 된다 안 된다 판단할 시간도 없어요. 일단 해봐야 해요. 그게 더 현명합니다. 똑같이 실패하더라도 이게 될까 안 될까 고민하는 시간에 빨리 시도해봐서 실패를 경험하고 손을 떼는 게 오히려 이윤이 더 클 가능성이 있습니다. 남들이 고민하는 순간에 이 영역은 안 된다는 것을 결정 내리고 방향을 바꾼다면 다른 기회들이 더 빨리 열립니다.” 

박 대표는 웹툰PD를 채용할 때 ‘어떤 콘텐츠가 좋고 왜 좋았는지, 기존 콘텐츠와 무엇이 달랐는지’를 묻는다고 말했다. 3년에 한 명 정도 채용하는데, 시사 문화 등과 관련해서 풍부한 지식과 이해도가 있고 그것을 잘 설명할 수 있으며 자기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또 “자기 안의 콘텐츠 맵이 만들어진 사람”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장기적인 목표는 다음웹툰을 대한민국 콘텐츠파워 1위 브랜드로 만드는 것이다.


편집 : 김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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