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연] ‘디지털 시대 언론과 기자’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시계탑을 왜 만들었을까요?”

11일 세명대 인문관에서 열린 ‘디지털 시대 언론과 기자의 과제’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은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의 대답을 듣던 구 소장은 “공통된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겨레> 26년차 기자인 그는 저서 <당신을 공유하시겠습니까?>에서 썼다시피 ‘잊혀질 권리’ 등에 관심이 많은 언론학자(박사)이기도 하다.

▲ 스위스 베른 중심가의 시계탑. ⓒ 구본권 소장 강의 자료

시계탑이 없던 시절에는 노동시간에 대한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일이 끝나는 시간이 불분명했기 때문이다. 고용주가 시계를 조작해 시간을 늦추거나 멈춰서 일을 더 시키는 경우도 흔했다. 시간에 관한 공유된 기준이 없어서 생긴 문제였다. 중세 사람들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시계탑을 세웠다. 정시마다 종을 울려 시간을 공유했다. 시계탑은 공통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필요로 생겨났다.

근대로 접어들면서 시계탑은 손목시계로 진화했다. 시간이 개인화한 것이다. 스마트워치가 등장하면서 시계에는 시간을 알려주는 것에 다른 기능이 더해졌다. 공통된 기준이 필요했던 시대에서 개인의 용도에 따라 다변화한 것이다. 구 소장은 “과거에는 신문이 사회에 공통된 기준을 제시하는 시계탑과 같은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는 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디지털 시대 위기의 신문

2011년 2월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 뉴스코퍼레이션 회장은 아이패드 전용 디지털 신문 ‘더데일리(The Daily)’를 창간했다. 2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듬해 12월 폐간했다. 디지털 환경에 적합한 매체를 만들겠다는 구상이 실패한 것이다. 사람들은 종이신문을 과거만큼 보지 않는다. 신문 가구구독률은 2004년 52.1%에서 2014년 26.3%로 10년 새 반 토막이 났다. 구 소장은 “현재 언론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인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언론이 사회에 기준을 제시하는 기능은 사라졌습니다.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보지 않는 사람은 잠을 자거나 술에 취한 사람뿐입니다. 사람들은 웹툰을 보거나 카카오톡을 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디어를 소비합니다. 미디어 정보 전달 기능이 사라지고 사람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소비하는 상황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구 소장은 “지금만큼 뉴스를 많이 접하는 시대는 없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카카오톡, 이메일, 페이스북 등 문자생활에 익숙하고 많은 뉴스를 소비한다. 그럼에도 언론사는 지속불가능한 모순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는 시대다. 미디어전문가인 마셜 맥루한은 인쇄술이 모든 사람을 출판업자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구 소장은 인터넷 발달로 누구나 손석희와 같은 미디어기업 사장이 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설명한다.

“한 블로거가 쓴 비행기 일등석 체험기는 하루 만에 20만 명이 읽었습니다. 50만 부를 발행하는 신문을 하루에 읽는 사람은 이보다 적습니다. 인터넷은 모든 사람이 발행인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합니다. 직업기자는 과거와 같은 시계탑 역할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최근 언론계에서 ‘로봇 저널리즘’이 화제다. 시간을 다투는 증시나 결과가 숫자로 쉽게 나타나는 스포츠 보도에서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지진과 같은 재난보도도 정확하고 빠르게 이루어진다.

지난 9월 언론진흥재단이 일반인과 기자를 대상으로 기자가 쓴 기사와 로봇이 쓴 기사를 알 수 있는지 조사한 결과 “구별이 어렵다”는 결과가 나왔다. 기사작성 주체를 맞힌 정답률은 기자가 52.7%, 일반인이 46.1%에 불과했다. 특히,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야구 뉴스로봇이 쓴 기사에 대해서는 일반인 10명 중 8명, 기자 10명 중 7명이 주체를 맞추지 못했다.

▲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이준환 교수 연구팀의 프로야구 뉴스로봇 페이스북 페이지. ⓒ 구본권 소장 강의 자료

로봇 저널리즘은 보편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데이터를 분석해 기사를 쓰는 일을 사람이 로봇보다 잘할 수 없다. 데이터로만 쓰는 스트레이트 기사에 대한 수요는 계속 존재할 것이다. 구 소장은 “로봇이 제공할 수 없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기자의 역할이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노보와 로봇기자의 치명적 결함

마틴 바론 <워싱턴포스트> 편집국장은 디지털 시대 기자의 역할을 묻자 “열차 사고가 난 상황을 가정해보자”고 했다. 열차 탑승객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SNS에 올릴 것이고 순식간에 수백만 건의 공유가 일어날 것이다. 바론은 “탑승객이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라고 설명했다. 열차 신호체계에 문제가 없었는지, 열차에 기계적 결함이 사전에 감지됐는지, 기관사가 졸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았는지와 같은 사람들이 진짜 궁금해하는 종합적인 피해와 사고 원인을 탑승객이 알려줄 수는 없다.

“정보 제공은 정보화 시대에 대체될 수 있는 영역입니다. 미디어는 열차 사고 사실을 가장 빨리 전달할 수 없습니다. 사고 뉴스를 가장 빨리 전하는 사람은 탑승객입니다. 그러나 탑승객이 사고 발생원인 등 독자가 궁금해할 정보까지 제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합적인 판단은 여전히 기자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기자는 다양한 질문을 던져서 무엇이 중요한지 파악하고 독자가 알아야 하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에 기자의 역할은 질문을 던지는 일로 변할 것입니다.”

구 소장은 “로봇이 인간처럼 질문을 던질 수 없다”고 말했다. 유인원 중 사람과 가장 닮았다는 보노보에게 의사소통을 가르친 연구 결과를 예로 들었다. 연구팀은 보노보에게 의사소통을 가르쳐 200개 단어를 조합해 600여 개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가르쳤다. 보노보는 이가 아프다고 표현해서 충치 치료를 받는 등 다양한 의사 표현이 가능했다. 그러나 보노보가 뭔가를 궁금해하는 일은 없었다. 보노보는 먹을 것을 찾고, 쉴 곳을 찾는 본능은 있지만 그 외에 ‘저건 왜 그럴까’ 등 인지적 호기심을 가지지 못했다. 구 소장은 “로봇기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라며 “미래에도 모르는 것을 알고 물어보는 일은 기자의 역할일 것”이라고 말했다.

▲ 세명대 학생들이 구본권 소장의 강의를 듣고 있다. ⓒ 이수진

시간과 관심이 제약된 시대에 필요한 디지털 리터러시

구 소장은 디지털 시대에 맞는 새로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인터넷이 생기면서 정보 구성단위는 아톰(Atom)에서 비트(Bit)로 변화했다. 아톰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물리법칙의 지배를 받지만, 비트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전자학의 지배를 받는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면서 시공간을 기반으로 한 종이신문의 기반도 흔들리게 됐다. 종이신문을 보지 않아도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뉴스를 읽을 수 있는 시대로 변화한 것이다.

정보기술 분야 석학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루 맥아피는 저서 <제2의 기계시대>에서 로봇과 인공지능 등장으로 지식과 정보 체계가 달라지고 있다고 말했다. 몇 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명왕성을 행성으로 배웠지만, 현재는 행성이 아니라고 배운다. 과거에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 지식체계가 바뀌는 데 몇 천 년이 걸렸다. 그러나 지금은 전세계 수십억 명이 정보에 접근하고 정보를 생산한다. 어떤 주장이 새로운 정보와 주장으로 바뀌기 쉬워졌다. 물리학자 새뮤얼 아브스만은 저서 <지식의 반감기>에서 “모든 정보는 가변적이며 일시적인 유효기간을 지닌다”고 말했다. 지식의 한정된 유효기간이 점점 더 단축되고 있다.

구 소장은 “디지털 환경에 맞는 생존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것이 디지털로 기록되는 시대다. 과거에는 종이 등에 기록하지 않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잊혔다. 지금은 이메일, 교통카드, 스마트폰 위치정보 등 모든 것들이 기록으로 남는다. 과거에는 시공간의 제약으로 면대면으로 접촉해야 했지만 지금은 얼굴을 마주 보고 만나는 경우가 적다. 알고리즘이라는 새로운 환경과 같이 살아야 하는 환경에 놓인 것이다. 구 소장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많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기본이 되는 사고력과 판단력”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왕세자들은 많은 글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갖추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왕이 직접 해야 할 일과 그렇지 않아도 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서 일을 처리하면 유능한 임금으로 불렸습니다. 여러분이 디지털 환경에서 처한 상황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현재 모든 것에 접근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습니다. 많은 정보와 산적해 있는 즐길 거리 등이 있을 때 어디까지를 위임하고 어디까지를 내가 할 것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시간과 관심이 제한돼있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가 디지털 시대 요구되는 새로운 리터러시입니다.”

▲ 구본권 소장이 세명대 인문관 강의실에서 ‘디지털 시대 언론과 기자의 과제’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 이수진

정보가 넘칠수록 늘어나는 프로기자의 역할

무엇이든 검색엔진이 알려주는 시대다. 알고 싶은 것만 있으면 즉시 알 수 있다. 세계 최대 검색엔진 구글의 목표는 질문이 필요 없는 검색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포털 사이트는 개인의 감정상태, 관심사, SNS 등을 조합해서 영화를 추천하는 등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보를 취득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러나 “이에 맞는 생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가는 별개의 문제”라고 구 소장은 지적한다.

“기술 발전은 우리를 질문할 상황조차 필요 없게 만듭니다. 질문과 답변의 과정을 지극히 단순화하고 있습니다. 검색엔진 하나만 있으면 여러 개를 찾고 검토할 필요 없이 답을 바로 알려줍니다. 호기심을 키워나갈 환경을 오히려 축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보를 취득하기 쉽고 호기심을 발동하기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도 이를 실행하기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습니다.”

제대로 질문하면 엄청난 양의 지식을 끄집어낼 수 있는 시대다. 기자는 앞으로 많은 정보 중에서 중요한 정보를 선택하고 판단하는 일이 하게 될 것이다. 구 소장은 “사람들이 더 많은 미디어 콘텐츠를 소비할 것이고 자동화 환경에서는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기에 기자에게 더 유리해 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러분이 처한 디지털 환경은 호기심, 즉 질문하는 능력이 가장 핵심적인 능력으로 떠오르는 세상입니다. 기자에게 중요한 능력은 자기 스스로 지적인 결핍을 느끼는 호기심입니다. 자신에 대한 자각이 없다면 질문하는 능력도 키울 수 없습니다.”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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