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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은 어디인가
[역사인문산책] 미사여구 속 국민
2016년 09월 25일 (일) 23:15:23 박상연 기자 0910118@hanmail.net
   
▲ 박상연 기자

외국에 나가면 절로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결과는 달랐다. 교환학생 1년 동안 절절한 애국심을 느꼈다. 항공권을 잃어버려 비행기를 놓치고 영국 히드로 공항에 잠시 머물 때였다. 잔뜩 겁에 질려 펴 본 여권 첫 장, 너무나도 아름다운 글귀가 나를 울렸다. ‘대한민국 국민인 이 여권소지인이 아무 지장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하여 주시고 필요한 모든 편의 및 보호를 베풀어 주실 것을 관계자 여러분께 요청합니다.’ 국가는 나의 보호를 요청하고 있었고, 두려움과 막막함 속에 어찌할 바를 모르던 나에게 용기를 북돋웠다.

   
▲ 대한민국 여권 첫 장 글귀. ⓒ 박진우

‘강남스타일’이 전 세계를 강타할 때도 시큰둥했던 내가 애국자가 되었던 까닭은 소속감과 안도감이었다. 내가 위험에 처해도 나를 지켜줄 듯한 여권 속 글귀, 수시로 안전 정보를 보내주는 재외공관의 공무원이 있기에 든든했다. 한국인이라는 긍지로 그 먼 영국에서 내 나라 대통령 뽑는 선거에도 빠지지 않았다. 낯선 타국에서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나는 돌아갈 곳이 있다는 믿음 덕분이었다. 1년이 지나고 돌아와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마음이 부산스러워졌지만, 평온해지기로 다짐했다. 조국이 ‘국민’인 나를 밖에서 보호해줬던 것처럼, 안에서도 나를 보호하고 용기를 주리라 믿었다.

2014년 4월 16일, 배 한 척이 침몰했다는 소식이 울려 퍼졌다. 배에는 ‘국민’들이 타고 있었다. 사연은 각기 다르지만, 모두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사고 초기엔 언론 오보가 난무하더니, 수습과 사후 처리 과정에서는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한민국은 헌법에서 국민을 보호하겠다고 천명하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사고 피해자의 요구를 묵살하고, 국가에서 주는 보상금에 입 닫는 ‘올바른 국민’의 멍에를 씌운다. 문제를 제기하는 국민에게는 사회를 분열한다며 채찍마저 서슴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열심히 살았던 국민이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 세월호 침몰 사고를 기억하는 진도 팽목항. ⓒ Flickr

국가는 더 이상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다. 국가의 보호 의무가 오롯이 국민 몫으로 옮겨졌음을, 그래서 각자도생의 방식을 체득해야 함을 깨달았을 때, 나는 ‘갑(甲)’과 ‘혐오’로 무장한 이들을 보았다. 온갖 갑질과 혐오가 으르렁거리는 난투극에서 살아남은 이들만이 국가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다. 난투극에서 패배한 약자의 형체는 으스러져 보고 들을 수 없는데 국가는 고개를 돌린다. 아직 난투극에 나가지 않은 나는 그저 우두커니 지켜볼 뿐이었다.

스웨덴의 한손 총리는 국가란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따듯하고 정겨운 ‘집’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제11조.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 금빛 번쩍이는 대한민국 헌법이야말로 나를 사로잡는 보금자리요, 집이다. 그러나 나는 아름다운 글귀 속에서만 국민일 뿐이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은 1학기에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 2학기에 [문명교류와 한국문화]의 인문교양 수업을 개설합니다.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해 김문환 교수가 문명사 강의를 펼칩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박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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