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조윤호 ‘나쁜 뉴스의 나라’

식당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오면 우리는 기꺼이 화를 낸다. 인터넷에 ‘과자에서 벌레가 나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고 검색하면 다른 사람들이 올려둔 경험담을 확인할 수 있다. 먹는 일에는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불만을 전달한다. 

소비자 운동은 소비자 스스로가 생산자인 기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이다. 소비자인 나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소비자 운동은 존재한다. 미국은 ‘소송 천국’이라고 불릴 만큼 크고 작은 소송이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미국에서 1년 동안 제기되는 민사소송은 1500만 건에 달한다. 미국 국민총생산(GDP) 2.2%에 달하는 비용이 소송에 소요된다. 과도한 소송은 사회 문제가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기업이나 단체들은 소송에 걸리지 않기 위해 늘 신경 쓰게 만든다. 그래서 소비자 운동은 인간의 기본권과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기사에 불량이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할까. 기사가 잘못된 정보를 담았거나, 해당 사건에 대한 충분한 사실을 제공하지 않고 심지어 왜곡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도 맞서 싸우려 하지 않는다. 그저 조소에 가까운 태도로 언론을 대할 뿐이다. 대다수는 ‘잘못됐음’을 본능으로 느끼지만, 지금 읽고 보는 기사가 무엇이 문제인지 독자들은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딘가 명쾌하지 않은 ‘이 느낌’은 기사 생산자들을 향한 소비자의 행동을 가로막는 가장 큰 원인이다.

조윤호 <미디어오늘> 기자는 책 <나쁜 뉴스의 나라>를 통해 지금까지 읽어왔던 기사가 왜 불편한 느낌을 주는지, 우리의 문제의식 어디를 자극하는지 딱 집어 분석한다. 조 기자는 불편한 느낌을 주는 기사들을 ‘나쁜 뉴스’라고 부른다. 

▲ 저자인 조윤호 기자는 매체 비평지 <미디어오늘>에서 일한다. 시스템에 적응한 기자들과 언론을 불신하는 대중 사이에 선 중간자로서 조 기자의 고민을 책에서 엿볼 수 있다. ⓒ 한빛비즈

“콘텍스트의 마법은 미디어가 자주 사용하는 재주다. 미디어는 물타기 수법을 통해 중요한 폭로를 묻어 버리기도 하고 프레임을 전환시키기도 한다.”

나쁜 뉴스를 가려내는 방법론을 단계별로 담았는데, 조 기자의 설명을 잘 따라가다 보면 나쁜 뉴스는 물론 이 뉴스를 설계하는 ‘진짜 주인’을 확인할 수 있다. 사실(fact)을 어떻게 편향성으로 포장하는지, 왜 뉴스가 약자보다 기업을 대변하는지 공개한다.

책에서 등장하는 사건과 기사는 우리가 다 아는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책장을 넘기기 쉽게 하는 요인이기도 하지만, ‘언론이 이 지경까지 되도록 나는 뭐했나’하는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읽기’에서 ‘소비’로 넘어간 뉴스

우리가 언론의 시장을 분석할 때 '뉴스를 소비한다'고 말한다. 비용이나 재화를 소모한다는 개념이 기존의 “읽는다"라는 독자의 행동을 대체한다. 소유주가 정부인 공영기관이 아닌 이상, 언론사도 수입이 발생해야 지속 가능한 ‘회사’다. 포털과 스마트폰에 쏟아져 내리는 기사의 홍수 속에서 자신들의 뉴스가 제대로 소비돼 광고수익을 올리려는 언론사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방증이기도 하다.

“이 일은 사용설명서가 필요없다.” 작가이자 철학자인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를 이렇게 시작한다. “숨쉬기나 눈을 깜박이는 것과 같”기도 한 이 활동은 바로 뉴스를 확인하는 일을 말한다. 우리가 뉴스를 소비하는 일에 예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의심 없이 뉴스를 읽고만 마는 잘못된 습관에 빠지기 쉽다. 정신을 차리고 비판적으로 기사를 읽어내기란 그래서 어렵다. 

‘소비’라는 표현은 우리가 기사를 보는 행위가 학습에서 산업의 차원으로 풀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언론 환경이 예전보다 자본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다. 기사는 몇몇 기자와 기업에 의해 예전보다 치밀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설계된다. 기업의 이익과 소비자의 권익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 쉬워졌다.

▲ '어뷰징'기사는 대개 바이라인에 기자이름이 없고, 출처 불명의 네티즌 반응을 덧붙인다. 광고수익을 위해 자극성과 효율성 두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언론사의 노력이며, 극단적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 기사 화면 갈무리

피할 수 없다면 ‘비판적으로' 읽어라

우리는 뉴스 없이 살 수 있을까. 뉴스를 피하려면 극한의 인내가 필요하다고 습관은 말한다. 전파가 통하지 않는 곳에 있다가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메신저를 켜고 포털 뉴스를 확인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갈구하는 우리의 본능이 뉴스에서 우리를 도망가지 못하게 한다.

“뉴스가치에 대한 이해가 뉴스를 비판적으로 읽기 위한 첫걸음이라면 그다음 단계는 뉴스가치가 없는 사건에 억지로 의미를 부여한 기사를 찾아내고, 여기에 어떤 ‘의도’가 숨겨져 있는지를 읽어 내는 것이다.” 

이 책은 뉴스 소비자가 언론이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가 의심하고, 프레임을 걷어내며, 진짜 주인을 구별해 의도를 파악하며 뉴스를 읽는다면 언론은 지금처럼 반성도 사과도 없이 무책임한 기사를 생산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 세월호 참사 직후 안산 단원고 총학부모회 관계자가 기자들의 취재에 “행사치레 찍지 말고 진도에 내려가서 사실을 찍으라"며 분노했다. 기자들은 끝이 없어보이는 기다림을 견디고 사진 한 장, 발언 한마디를 얻어낸다. 그러나 언론의 전략적 판단에 의해 팩트들은 보도와 비보도가 결정된다.  ⓒ 안형준

따라서 비판적으로 뉴스 읽기는 개인 차원의 소비자 운동으로 작용할 수 있다. 언론이 언론윤리를 되살리며, 기자의 직업적 양심이 타락하는 것을 방지하는 성과가 있다. ‘성역없는 비판’이라는 언론의 본령을 회복할 기회를 마련한다는 데에도 의의가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자들은 싸우고 있다. 정치권력, 자본권력, 그리고 이들에 동조한 회사권력과 싸우는 것을 업으로 삼은 채 기사 한 줄을 가지고 씨름하는 수많은 기자가 있다. 뉴스 소비자가 던지는 날 선 질문은 이들에게 한 줄기 핑계가 되어 줄 것이다."

조그마한 일에 분개하고 마는 옹졸한 뉴스 소비자의 전통은 여기서 끝내야 마땅하다. 내가 읽는 이 기사 한 줄에 얽힌 이익들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소비자의 자세가 필요하다. '쓰레기'라고 불리는 자조를 이겨내기 위한 힘이 기자에게 필요하다. 약자의 목소리에 우선 귀를 기울이고, 권력의 비리에 눈감지 않는 언론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기자들에게 '외압'이라는 이름으로 홀로서기 할 힘을 실어줄 수 있다. 


편집: 문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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