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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재앙, 언론은 책임 없나
[저널리즘특강] 박태균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
주제 ① 전문기자의 길
2016년 07월 12일 (화) 19:28:55 박장군 박진우 황두현 기자 whoami3@nate.com

“전용 살균제를 사용하는 것도 가습기를 더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것으로 애경 홈크리닉 가습기메이트(1,000㎖ 3,950원선)와 옥시싹싹 가습기당번(550㎖l 2,200원선) 등이 있다.”

2004년 12월 2일 <경향신문>에 실린 ‘가습기 사흘에 한 번 꼭 청소’ 기사 내용 중 일부다. 기자는 가습기 안에 번식하는 세균을 없애는 방법으로 살균제를 추천한다. 수많은 독자가 살균제를 찾게 만들었을 보도를 한 기자는 10여 년 뒤 벌어질 상황을 상상이나 했을까? 올해까지 확인된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만 1천5백여명, 사망자는 239명에 이른다. 정부가 폐 손상으로 죽은 임산부의 사인을 가습기 살균제로 추정한 지 5년이 지나서야 검찰 조사가 시작됐다.

여타 언론들도 다르지 않았다. 누구도 ‘살균제 유해 성분이 수증기에 묻어 나올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못했다. 기자의 무능인가, 관행적 보도가 만든 재앙인가? 식품의약전문기자로도 유명한 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한국 기자들의 빈약한 전문성이 그 원인일 수 있음을 보여줬다.

   
▲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박태균 회장이 전문기자의 3대 조건을 설명하고 있다. ⓒ 황두현

1등급이냐 1군이냐 

박 회장은 전문성의 차이가 기사의 질을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가공 소시지를 두고 벌어진 1급 발암물질 논란을 들며 전문 지식의 중요성을 풀어나갔다.

“작년에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암연구소에서 가공 소시지를 1군 발암물질로, 붉은 고기를 2A군 발암물질로 발표했어요. 언론은 Group 1과 Group 2A 용어의 번역을 등급으로 할지 군으로 할지 고민했죠. 결국, 대부분 언론이 등급으로 썼고 세상이 난리가 났어요. 사람들은 등급이라는 용어 때문에 2등급보다 1등급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 거죠. 전문용어를 구분하지 못하면 의미를 모른 채 잘못된 기사를 쓰게 돼요.”

국제암연구소(IARC)는 입증된 연구와 실험 결과에 따라 발암물질을 5가지로 나눠 발표한다. 등급이 높다고 더 해로운 것도, 낮다고 덜 위험한 것도 아닌 단순 분류에 불과하지만 ‘1급 발암물질’이라는 언론의 평가는 소비자들의 오해와 불안을 부추겼다. 보도 이후 국내 주요 대형마트의 가공육 매출이 20% 감소한 걸로 나타났다. 그는 2009년에 석면이 검출된 베이비 파우더 사건에서도 “부모들이 기사에서 1급 발암물질이라는 단어를 보면서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겠냐”라며 “기자도 전문용어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전문성 부재의 원인을 질보다 양을 중시하는 관행에서 찾는다. 언론사 데스크가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전문성이 아니라 생산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외국에선 홈런성 기사 한방의 가치를 인정해준다”며 “6개월이든 1년이든 기다려준다”고 말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품질보다 양으로 기사를 평가하므로 일주일에 몇 편의 기사를 써내는지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박 회장은 자신의 경험을 들어 “전문 분야 강연에 참여만 해도 ‘일 안 하고 뭐 하냐’는 식의 풍토가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푸대접받는 전문기자

박 회장은 국내에서 전문기자가 육성될 수 없는 이유로 일반기자와 같은 업무를 맡는다는 점을 꼽았다. 그는 “결국 전문성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일반기자와 똑같이 출입처 다니고 토막기사 써야 하고 동일한 업무를 맡아야 하는 상황에서 전문기자의 장점이 퇴색했다”고 말했다. 전문기자는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토록 해줘야 한다는 말이다. 

고학력 외부전문가 중심이던 전문기자는 2001년을 기점으로 내부 기자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빈번한 퇴사와 외부 활동에 대한 내부의 곱지 않은 시선 때문이었다. 많은 주류 언론사들이 회사 사규를 통해 내부에서 전문기자를 양성했다. 뉴스 수용자의 주요 관심사가 건강, 자산운용, 레저, 여행 등에 쏠리고, 뉴스가 나날이 연성화하는 상황에서 수익실현과 무관한 국제관계, 세계경제, 노인문제 등 심각한 주제에 투자할 동기가 부족해진 것도 이유였다.

전문기자를 대하는 언론사의 냉대는 잘못된 방향으로 터져 나오기도 한다. ‘전문기자’ 타이틀을 악용하는 것이 대표적 예다. 박 회장은 “승진은 시켜야 하는데 마땅한 자리가 없을 때 ‘OO 전문기자’라는 직함을 주는 식으로 전문기자 타이틀을 악용한다”며 “가볍게 ‘시니어 전문기자’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 박태균 회장이 한국 전문기자의 현실을 짚어주고 있다. ⓒ 황두현

한때는 촉망받던 그들

국내에 전문기자 제도가 처음 도입된 건 1992년. 중앙일보를 시작으로 언론사들이 본격적으로 교통, 군사, 의학 등 분야에서 전문기자를 뽑기 시작했다. 박 회장도 1994년 공채를 통해 입사했다. 한 해 17명의 박사급 전문기자를 선발할 때다.

“제가 1996년부터 전문기자를 했는데 그때는 회사도 전문기자들에게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회장님이 논설위원들과 정기적으로 식사하며 얘기를 나눴는데, 전문기자들도 그랬어요. 얼마나 실력 있는지, 최근 관심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식사 자리를 여러 번 가졌죠.”

그러나 회사의 기대와는 달리 어렵게 뽑은 전문기자들은 대부분 다른 분야로 빠져나갔다. 의학전문기자는 다시 의료계로, 교통전문기자는 시 공무원으로, 군사전문기자는 국방부 대변인으로 옮겨갔다. 회사 안에서 전문기자의 필요성을 의심하게 시작했다. 한 방송국은 몇 년에 걸쳐 준비해 온 예비전문기자 양성과정을 하루아침에 취소하기도 했다. 언론계 외부에서 수혈한 전문가 중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는 한 회사 한두 명에 불과하다.

인터넷 신문 기자, 미국에선 퓰리처상 받아

그렇다면, 전문기자는 필요 없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다고 박태균 회장은 말했다. 지금은 신문의 위기이며, 심지어 인터넷도 안 보는 시대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신문이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콘텐츠”임을 강조하며 “전문기자의 전문화한 내용이 이를 충족시킬 수 있다”고 했다.

열악한 언론 환경을 아쉬워하던 박 회장은 전문기자의 미래를 오히려 ‘인터넷 신문’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인맥 네트워크를 활용해 양질의 글을 싣고 있는 <허핑턴포스트>와 탐사보도 전문 매체인 <프로퍼블리카> 사례로 들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자로도 보지 않는 인터넷 신문 기자가 미국에서는 퓰리처상을 받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66살의 데이비드 우드와 객원기고자로서 상을 받은 셰리 핑크다.

“데이비드 우드는 우리로 치면 은퇴할 나이에 8개월간 10편의 연속기사를 썼어요. 많은 나이가 약점이 아니라 축적된 노하우를 살릴 기회가 된 거죠. 전쟁터에서 늘 목격해 온 광경을, 부상군인과 상이군인을 돌보는 가족의 참담하고 비극적인 절규를 쓴 거예요.” 

국내에서는 전문기자뿐 아니라 전문기사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박 기자 재직 당시 <중앙일보>는 탐사보도팀을 만들어 기사를 취재하게 했지만, 6개월이 지나자 팀을 없앴다. 취재 여건도 열악하다. 언론사별 취재비는 100만원 내외다.

“셰리 핑크가 탐사보도 때 받은 취재지원금이 약 4만 달러예요. 근데 제가 식품 문제를 파헤친다고 하니까 몇 십 만원을 지원해준다더군요. 연구용역비도 안 되는 거죠.” 

전문성 없는 기자가 왜곡된 기사 써

박 회장은 전문 역량을 키우지 않을 경우 역으로 전문가들이 기자를 활용해 사실을 왜곡하는 일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다이옥신 파동을 예로 들며 “발견조차 하기 힘든 수치가 검출되었다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받아쓴 것은 기자들의 전문성이 없는 탓”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분야에 지식이 없는 기자들을 전문가들 자신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이용한 사례라는 것이다.

‘전문성’은 박 회장이 강조한 전문기자의 핵심적인 성공조건이다. 성공한 전문기자들의 공통점은 자기 분야에 대한 지식이 확고했다. 셰리 핑크는 의사 면허를 가졌고, 데이비드 우드는 30년 넘게 전장을 누볐다. 의학전문기자로서 홍혜걸 씨의 성공이 많은 의사를 언론계로 모았다. 박 기자도 중앙일보 재직 중에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해 전문성을 높였다. 국내 전문기자로는 드물게 9권의 저서도 남겼다.

   
▲ 박태균 회장은 재직 중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9권의 책을 썼다. 왼쪽부터 <푸드백신> <남의 살 탐하는 104가지 이유> <곡물과일채소> ⓒ 교보문고

그가 처음 전문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 동기는 20여 명. 하지만 지금 남아있는 전문기자는 한 명뿐이다. 그가 가장 아쉬워한 점도 전문기자 생활을 하며 쌓아 놓은 데이터와 노하우를 전해줄 후배가 없다는 점이다. 은퇴 전부터 포럼을 만들어 활동했던 것도 후배들을 양성하기 위해서라고 덧붙였다.  여전히 한국 언론에서 전문기자는 ‘찬밥’이다. 심도 있는 기사를 쓸 여건도 마련되지 않고, 데스크로 발돋움할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현실을 아쉬워하던 박 회장은, 모 전문기자가 다른 직무로 옮겨갔을 당시 <미디어스>에 쓴 칼럼을 인용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박태균 회장의 강연을 듣고 있다. ⓒ 황두현

"전문기자의 전문성을 부담스러워하는 언론의, 전문기자의 전문성을 불편해하는 사주들은 오늘도 끊임없이 전문기자를 모으고 있다. 그 하릴없어진 전문성만을 위한 전문성이야말로 오늘 우리 언론의 민얼굴일지도 모른다. 경제전문기자는 재벌을 보호하고, 의학전문기자는 병원을 홍보하며, 법조전문기자는 판례를 비판할 줄 모른다. 나머지 기자들이야 전문성이 없으니, 그 대세를 따라 배당된 사건, 사고나 쫓고 출입처에서 기능인으로 살아간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김종철 이대근 곽윤섭 박태균 김호상 임병도 오연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문중현 기자

[황두현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청년부, 시사현안부 황두현입니다.
기사 몇 줄의 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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