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박태균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
주제 ② 과학과 저널리즘의 즐거운 만남

언론사들은 이목을 끌만한 자극적인 소재를 원한다. 이런 특성상 새로 등장한 용어에 휘둘리기 쉽다. 박태균 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은 중국음식점증후군(Chinese Restaurant Syndrome)을 예로 들며 새로운 연구를 기사화하기 전에 철저하게 검증할 것을 당부했다.

과학기사는 더 철저한 검증이 필요

‘중국음식점증후군’이란 중국 음식을 먹은 뒤 가슴 압박감, 얼굴 경직, 복통, 메스꺼움 등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이 현상은 중국음식에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는 편견에서 비롯했다. 한 중국계 미국인 의사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중국식당에 가서 식사만 하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속이 안 좋다’는 내용의 짧은 편지를 보냈다. 정식 연구도 없이 보낸 이 편지를 전 세계언론이 퍼 날랐다.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을까?

▲ ‘중국음식점증후군’은 중국음식에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간다는 편견 아래 정식 연구도 없이 널리 퍼졌다. ⓒ MBC

“전 새로운 용어에 미디어가 꽂혔다고 봐요. 예컨대 ‘쓰레기 만두’처럼, ‘차이나레스토랑신드롬’, 입에 달라붙는 용어잖아요. 그리고 중국을 약간 깔보는 서방의 정서, 이런 것이 마치 충분한 연구를 거쳐서 이론이 생성된 것처럼 보도되는 것이죠. 이런 연구결과가 없는데도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신드롬이 회자되잖아요.”

박 회장은 연구와 관련된 기사를 쓰려면 논문 전체를 한번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Editorial’, ‘Commentary’, ‘Review’ 같은 단어가 달린 것들은 기존 연구를 짜깁기한 것인데 이런 것들은 받아쓰면 안 된다고 했다. 또한 ▲ 기사에 건설적인 비판이 있는지 ▲ 의견과 사실이 구분됐는지 검토하고 ▲ ‘최초’, ‘획기적’, ‘만병통치’ 같은 과장된 용어는 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은 ‘정량의 세계’

박 회장은 과학저널리즘의 속성은 기존의 저널리즘과 다르다고 말했다. 과학이 무게·단위 등 미세한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정량(定量)의 세계라면 일상은 존재 여부 정도만 간략히 다루는 정성(定性)의 세계다. 예컨대 일반인은 오늘 누가 어떤 일을 했는지 정도를 이야기하며 신문기사도 사건의 경과 등 개괄적인 흐름을 전한다. 이에 반해 과학저널리즘은 크기와 수량, 질량 등 훨씬 미세한 단위를 정확히 따진다. 박 회장은 정성분석보다 정량분석이 훨씬 더 까다롭다며 가까운 일본 사례를 들었다.

1개 신문 구독자가 1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종이신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시절, 요미우리신문이 ‘생선구이에 묻은 검정 그을음이 돌연변이와 암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문제는 ‘돌연변이 유발, 발암성 물질’이라는 자극적인 단어였다. 많은 사람들은 돌연변이가 더 무섭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돌연변이의 과학적 의미는 ‘미검증 물질’에 가깝다. 발암물질은 돌연변이 물질 중에서도 극소량이 발암물질로 검증된 것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돌연변이’라는 용어에 지레 겁을 먹은 일본사람들은 요미우리 보도 이후 주식인 생선구이를 기피했다. 

▲ 박태균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이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 박경배

잘 읽히는 과학기사를 쓰려면

과학기사는 여러 기사들 가운데 열독률이 낮은 편이다. 박 회장은 “한국은 대학 졸업자의 절반이 이과생인데도 과학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 <뉴욕타임스>도 과학기사를 어렵게 쓴다고 말했다. 대신 <뉴욕타임스>는 간단하고 화려한 그림과 그래프로 독자의 이해를 돕는 인포그래픽(Infographics)에 충실했다. 어려운 과학기사의 행간을 읽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것이다. 

박 회장은 “잘 읽히는 과학기사는 사물이 아닌 사람이 주인공”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어떤 과학자가 파란장미를 만들었을 때, 유전자재조합식품(GMO) 기술이 적용된 파란장미라고 설명한다면 대부분 보지 않을 것이다. 

“파란장미를 만든 사람의 이야기, 즉 어떤 계기로 파란장미를 개발했고,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이 기술로 개발자는 얼마나 벌었는지 등은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어요.”

박 회장은 2002년 일본에서 노벨상을 받은 두 사람 이야기를 했다. 도쿄대 명예교수인 고시바 마사토시와 고졸 출신 다나카 고이치다. 고시바 교수는 저명한 교수지만 더 읽히는 기사는 다나카의 기사다. 고졸 출신의 저학력자가 노벨상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더 흥미롭기 때문이다. 

“블로그는 강력한 무기, 어서 시작하세요”

“조선일보의 유용원 군사전문기자 아시죠? 이분이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거든요. 누적방문자수가 몇억이더라고요. 상상을 초월하는 거죠. 하나의 작은 미디어입니다. 어떤 매체라도 이런 기자를 잡고 싶겠죠. 개인 브랜드가 확보되면 언론사 내부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소신껏 기사를 쓸 수 있습니다.”

유용원 기자 블로그는 누적방문자수가 3억2000만에 이른다. 하루 방문자는 3만이 넘어 웬만한 인터넷 신문의 일일 조회수를 넘는다. 박 회장은 “열정과 전문성을 갖추고 현장취재·집필 활동을 활발히 하는 것은 기본”이라며 “더 중요한 것은 열성팬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자가 개인 블로그나 페이스북 계정을 운영해 고정팬 10만 명을 확보한다면 지면 제약 없이 운영되는 개인 언론사를 소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분석이다. 

물론 블로그를 비롯한 SNS 계정 관리는 쉽지 않다. 박 회장은 “블로그는 부지런하지 않으면 운영할 수 없어서 나는 포기했다”며 웃었다. 특히 10만 정도가 ‘성장의 역치(Recession level)’다. 그 이전까지는 게시물을 올려 ‘좋아요’나 ‘댓글’ 등을 요구해도 네티즌 호응이 크지 않아 ‘메아리 없는 외침’을 하는 격이다. 팬 10만을 확보하면 온라인 반응이 폭발적으로 변하고, 팬 숫자는 50만, 100만도 금방 넘길 수 있다. 

“구축해놓은 블로그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당장 관심 분야 하나 잡아서 블로그를 시작하세요. 늘어난 방문자 수만큼 여러분의 브랜드 가치도 커지는 겁니다. 잘되면 전문기자로 인정도 받겠죠. 매체는 이런 사람을 키워주고 싶어 합니다.” 

전문매체는 객관적이라는 환상

학술전문매체는 항상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가정은 위험하다. 논문도 속보성, 의외성 등 흥행 요소를 담은 콘텐츠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박 회장은 세계적 의료잡지인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의 1면에 실렸던 나트륨 섭취 관련 논문을 사례로 제시했다. ‘소금을 많이 먹어도 고혈압과 무관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논문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과도한 나트륨 섭취는 인체에 해롭다’는 통념을 깼기 때문이다. 

▲ 학술전문매체가 항상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가정은 위험하다. 2014년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에 실린 나트륨 섭취 관련 논문은 논쟁을 낳았다. ⓒ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홈페이지

“<뉴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슨> 같은 전문 매체도 흥행을 고려하는 거죠. 잘 팔리니까 검증은 둘째치고 일단 1면에 실어주는 겁니다. 문제는 이런 논문이나 기사는 파괴력이 엄청나다는 거죠.”

이처럼 미디어를 동원해 흥행이나 로비 등에 악용하는 전략을 ‘미디어 하이프’(media hype: 미디어 동원 홍보)라고 한다. 박 회장은 “전문연구 보도를 할 때는 이런 미디어 하이프를 반드시 의심해볼 것”을 당부했다. 

박 회장은 전문연구 보도 시 ▲ 논문작성자의 후원자가 누구인지 ▲ 연구 결과는 충분히 신뢰성 있는지 ▲ 결과를 의도적으로 과장하지는 않는지 ▲ 위험성과 혜택의 양면을 균형 있게 보도했는지 ▲ 연구 결과가 다른 전문가에 의해 교차 검증됐는지를 유의하라고 말했다.

전문기자, 어떤 분야에 필요할까?

의료∙과학∙법률 등 전문지식이 필요한 분야는 문외한이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어렵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유행어처럼 대부분이 문과출신인 일반 기자로서는 법•공학 등 전문분야에 대한 접근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이옥신이나 DNA를 자세히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야구의 계투, 더블아웃 정도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DNA는 괄호치고 한참을 설명해줘야 할 거예요. 별도 박스 기사로 써야 할 정도죠. 제 생각에는 이런 분야만큼은 외부에서 들여오는 게 좋습니다.”

박 회장은 “외부에서 영입한 전문기자는 자율성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회의 일정이나 야간당직에 묶이지 않아야 개인 연구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서 활동도 인정해줘야 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전문기자는 어떤 분야에서 활약할까? 박 회장은 ‘나라별 전문기자’를 꼽았다. 중동전문기자나 미국전문기자, 특히 중국과 이해관계가 커지면서 중국전문기자 등 해당 지역의 언어에 능통하고 정치•경제적 상황에 밝은 언론인이 각광받는다는 전망이다. 

▲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있다. ⓒ 황두현

전문기자 앞으로 더 필요하다

언론사는 기자에 대한 교육 지원이 부족한 편이다. 수습기자가 경찰서를 출입하며 선배기수에게 도제식으로 기사작성법을 배우는 ‘경찰출입기자제도’나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언론인 교육을 제외하면 기자에 대한 교육은 전무하다. 따라서 언론인 교육은 시수가 적고 도움이 안 된다고 박 회장은 지적했다. 보수적 언론 환경에서 전문성을 키우려면 기자 스스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박 회장은 ‘구조적 환경은 열악하지만 전문기자는 앞으로 그 필요성이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전문기자제도는 정말 더 필요합니다. 언론사가 여기저기 난립하는 현실에서 결국 차이는 콘텐츠 질에서 나오니까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김종철 이대근 곽윤섭 박태균 김호상 임병도 오연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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