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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케인’에게 언론을 맡길 수 없다
[미디어비평] 영화 ‘시민 케인’에서 읽는 언론 재벌의 문제
2016년 07월 11일 (월) 23:54:45 이수진 기자 sujinsuelee@gmail.com

'5채의 저택, 165개의 방, 127에이커의 정원, 2개의 풀장, 이탈리아제 가구와 대리석 조각.’ 1919년에 짓기 시작해 완공까지 28년이 걸린 이 건물의 주인은 미국의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다. 이곳의 또 다른 명칭은 허스트 성(Hearst castle)이다. 성(城)은 왕이나 영주가 살던 곳을 지칭하는 용어지만, 사람들은 허스트가 사는 이곳을 ‘성’이라고 불렀다. 허스트는 미국 17개 도시에서 20여 개 신문·방송사를 매수·창간해 ‘미국의 신문왕’이라고 불린 인물이다.

   
▲ 미국 캘리포니아 주 중부 해안가 언덕 위에 있는 허스트 성(Hearst castle). ⓒ Wikipedia

1941년에 제작된 오손 웰즈 감독의 영화 <시민 케인>은 허스트를 모델로 한 영화로 알려졌다. 오손 웰즈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적 없지만, 영화 주인공 찰스 포스터 케인과 실존 인물 허스트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허스트가 78세 때 개봉한 이 영화는 역사상 최고의 영화로 꼽히는 작품이다. 미국영화연구소(AFI)의 ‘최고의 미국 영화'로 두 차례 선정됐고, 영국영화연구소(BFI)가 10년마다 선정하는 세계영화걸작에서 50년 연속으로 1위에 뽑혔다. 지난해에는 BBC가 선정한 전 세계 비평가들이 뽑은 100대 미국 영화 1위를 차지했다. 주인공의 집착이 낳은 비극성이라는 주제와 오손 웰스의 화려한 현대적 영화기법이 높은 평가를 얻었다.

<시민 케인> 흥행 실패에 허스트가 있었다

정작 이 영화는 개봉 당시 허스트의 방해로 흥행에 실패했다. 허스트는 자신이 소재라는 사실을 알고 영화 상영을 중단시키려고 애썼다. 자신이 소유한 언론매체에 <시민 케인> 제작사인 RKO의 광고를 받지 않았고, RKO에 80만 달러를 주며 이 영화의 모든 인쇄물과 필름을 불태울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가 개봉한 뒤에는 자신이 소유한 언론매체에서 이 영화에 관해 기사는 물론 언급마저 금지하는 지침을 내렸다. ‘천재 감독’이라 불린 웰즈는 <시민 케인> 흥행 실패 이후 어려움을 겪었다. 1942년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려다 실패했고, 1947년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연출했으나 결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후 유럽으로 건너가 20년 넘게 독립 영화를 위주로 작업했다.

   
▲ 영화 <시민 케인> 주인공 케인의 실제 모델로 알려진 언론 재벌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 Wikipedia

허스트가 이 영화의 개봉을 어떻게든 막으려고 했던 것은 영화 주인공 케인이 자신과 매우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케인은 37개 신문사와 2개의 라디오 방송국을 가진 미디어 재벌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 나오는 케인의 집 ‘제나두 성’은 허스트 성과 닮았다. 영화는 제나두 성을 세계에서 가장 큰 개인 소유 저택으로 성을 짓는데 나무 10만 그루와 대리석 20만 톤이 사용됐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주인공 케인의 쓸쓸한 죽음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케인은 죽기 전 “로즈버드”라는 말을 남긴다. 기자인 제리 톰슨은 ‘로즈버드’에 담긴 숨은 의미를 알아내고자 케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다닌다. 유년시절 케인의 후견인이었던 은행가 대처, 언론인이자 총지배인인 번스틴, 유일한 친구 릴랜드, 두 번째 부인 수잔, 집사 레이먼드 등을 차례로 만났지만,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톰슨은 로즈버드가 무엇인지 알아내는 데 실패한다. 톰슨은 “로즈버드는 뭐든 얻고 잃은 그가 잃지 않은 그 어떤 것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케인의 물품들을 태울 때 버려져,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어린 시절 케인이 즐겨 타던 목재 썰매도 함께 탄다. 카메라는 썰매에 새겨진 로즈버드란 글씨를 클로즈업한다. 관객은 비로소 로즈버드가 케인이 동경했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이었다는 사실을 마지막 장면에서 알게 된다.

   
▲ 기자 제리 톰슨이 찾아 헤맸던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린 시절 즐겨 타던 목재 썰매였다. ⓒ 화면 갈무리

<시민 케인>이 전하는 언론재벌의 폐해

<시민 케인>에서 읽는 또 다른 메시지는 언론과 재벌과의 관계다. 케인에게 언론은 돈을 불리는 재미난 방법에 불과했다. 어머니가 우연히 얻게 된 광산에서 노다지가 쏟아져 나와 부자가 된 케인은 성년이 된 후 뉴욕의 작은 신문사인 <인콰이어러>를 인수한다. 그의 후견인이었던 대처가 왜 하필 언론사냐고 묻자 “신문사 경영은 재미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재미로 인수한 신문사가 윤리적으로 운영될 리가 없다. 출근 첫날부터 카터 편집국장과 충돌한다. 케인은 “<크로니클> 신문엔 실린 브루클린 해리 실버스톤 부인 살해 추정 기사가 왜 <인콰이어러>에 실리지 않았느냐”고 압박한다. 편집국장은 “증거도 없는 스캔들을 실을 수 없다”고 거부한다. 케인은 “사람들이 흥미를 끄는 것을 기사로 해야 한다”며 “가장 유능한 기자를 실버스톤 부인에게 보내라”고 명령한다. 취재를 위해서는 형사라고 속이거나 그를 협박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인다. 편집국장이 반발하자 그를 해고한다. 비윤리적인 방법으로 취재된 기사는 3단 헤드라인으로 나간다. “헤드라인이 크면 사건도 큰 법”이라는 케인의 말은 그가 언론을 바라보는 시각을 보여준다.

   
▲ 해리 실버스톤 부인 살해 추정 기사를 두고 카터 편집국장과 갈등하는 케인. ⓒ 화면 갈무리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서 조작도 마다치 않았다. 케인은 스페인과 쿠바 주민 간 갈등이 심해지자 화가 월라를 특파한다. 월라는 평온한 나날이 계속되자 <인콰이어러>로 전보를 쳤다. “쿠바 아가씨들은 발랄합니다. 풍경에 대한 산문체 시를 보내겠지만 돈을 축낼 생각은 없습니다.” 케인은 답장을 보낸다. “당신은 기사를 쓰고 전쟁은 나에게 맡겨요.” 케인은 저지 해안에서 범선을 본 목격자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스페인 범선이 저지 해안에서 발견’이라는 헤드라인의 기사를 싣는다. 케인이 죽은 후 총지배인이었던 번스틴은 이 사건을 이렇게 기억한다. “스페인과 미국의 전쟁은 케인의 전쟁이었다.” 이 사건은 실제 모델인 허스트가 1897년 화가 레밍턴과 나눈 대화를 각색한 내용이다.

케인은 신문 매체를 사적으로 이용했다. 1916년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고 자신에 관한 우호적인 기사를 본인이 소유한 매체에 실었다. 여론조작으로 폭넓은 지지를 얻어 당선이 확실시됐으나, 성악가 수잔 알렉산더과의 불륜이 알려지면서 패배하고 만다. 이후 수잔과 재혼한 케인은 그녀를 유명한 오페라 가수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매체를 동원한다. 그녀를 극찬하는 기사를 남발하지만,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수잔은 대중들의 질타를 받는다. 케인은 “사람들의 생각을 쓸 권한은 자신에게 있다”며 ‘매진 행렬’, ‘극찬’, ‘열광의 소용돌이’라고 수잔의 공연기사를 1면에 계속해 싣는다.

인기 비평가이자 케인의 유일한 친구인 릴랜드는 참지 못하고 “수잔의 수준이 형편없다”는 기사를 쓴다. 케인은 <인콰이어러>를 인수할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 릴랜드마저 해고한다. 릴랜드는 한 통의 편지를 보낸다. 편지에는 1929년 대공황으로 신문 산업이 어려워졌을 때 케인이 신문 1면에 실은 발행인의 맹세가 담겼다. “본인은 이 신문을 통해 시민에게 진실만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또한 본인은 불굴의 투지로 싸울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겠습니다. 찰스 포스트 케인.” 릴랜드는 그가 어려울 때 내세웠던 원칙 선언문을 기억하길 원했다. 케인은 이를 찢어버린다.

   
▲ 릴랜드는 대공황으로 어려울 때 케인이 쓴 원칙선언문을 보냈지만, 케인은 이를 찢어버린다. ⓒ 화면 갈무리

케인의 사례는 돈을 추구하는 미디어 기업의 위험성을 보여준다. 케인은 과감한 폭로기사로 발행 부수 70만 부에 이르는 언론 재벌이 됐다. 언론재벌은 진실 전달이라는 처음 목표를 버린 뒤 상업신문으로 전락했다. 돈을 위해서라면 거짓말을 일삼았고, 국가 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사건도 조작해 보도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의 기사는 신문에 영향력을 행사해 싣지 못하게 했다. 사적으로 신문을 이용하는 일도 허다했다. <시민 케인>은 언론이 저널리즘적인 가치가 아닌, 돈을 추구하는 특정인의 손아래 놓일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언론의 위기는 세계적 현상

세계적으로 언론 재벌이 증가하는 추세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는 2013년 <워싱턴포스트>를 2억5천만 달러에 인수했고, 페이스북 공동 창업자 크리스 휴즈는 2012년 정치 전문 주간지 <더뉴리퍼블릭>을 사들였다. 마윈 알리바바그룹 회장은 지난해 12월 112년 전통의 홍콩 유력 영자시문인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를 사들였다. 워린 버핏도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이 속한 미국 <트리뷴> 신문 일부의 인수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재벌의 등장은 언론의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실제로 <더뉴리퍼블릭>은 크리스 휴즈에 의해 인수된 이후 진보 성향에서 중도 성향으로 누그러졌다. 세계적 언론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여론조작과 선정적인 기사로 언론독과점의 폐해를 세계적으로 드러낸 바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2009년 미디어법 통과로 거대 자본이 미디어에 진출하고 미디어를 겸영할 길이 열렸다. 미디어법은 자본력 있는 대기업이나 신문사의 방송사에 대한 지분소유 상한을 전면 금지하던 규제를 해제했다. 신문사와 대기업은 지상파방송의 10%,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30%까지 지분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대기업은 일간신문에 한해 지분의 50%까지 취득 또는 소유할 수 있게 됐고, 일간신문 지배주주의 주식 및 지분 취득 제한을 없애 여러 신문사 소유가 가능해졌다. 지상파ㆍ종합편성ㆍ보도 채널을 개인이 가질 수 있는 최대 지분도 66%로 상향조정됐다. 그 결과가 종합편성채널의 등장이었다.

   
▲ 오손 웰즈 감독의 영화 <시민 케인> 공식 포스터. ⓒ 네이버영화

<시민 케인>이 그리는 언론의 모습은 현실과 동떨어진 낯선 존재가 아닌, 오늘 이 시대의 언론의 모습을 반영한다. 영화는 재벌이 언론을 장악하면 어떻게 민주주의 발전이 저해되고 사회에 해독을 끼칠 것인지 경고한다. ‘시민 케인’에게 언론을 맡길 수 없다.


편집 : 강민혜 기자

[이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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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제리 톰슨이 찾아 헤맸던 로즈버드는 케인이 어린 시절 즐겨 타던 목재 썰매였다. ⓒ화면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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