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읽는 표현의 자유

“수정 헌법 제1조가 저 같은 쓰레기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모든 사람의 자유 또한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전 최악이니까요.”

성인잡지 ‘허슬러’를 창간한 래리 플린트(Larry Flynt)의 삶을 다룬 1996년 영화 <래리 플린트>에서 래리의 대사다. 허슬러는 ‘플레이보이’와 ‘펜트하우스’보다 더 적나라하고 선정적인 포르노 잡지로 평가된다. 산타클로스와 국기도 허슬러의 희롱 대상이었다. 보수적인 지역에서는 허슬러의 판매를 금지하기도 했다. 래리는 미국인이 가장 사랑한 아름다운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의 나체 사진을 허슬러에 공개하면서 백만장자가 됐다. 래리가 자신을 ‘쓰레기’라 평할 정도로 그의 사생활은 문란했고 종교와 유명인에 대한 조롱은 지나쳤다.

그의 일대기 영화 <래리 플린트>는 <아마데우스>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로 유명한 밀로시 포르만 감독이 연출했다. 포르만 감독은 이 영화로 베를린 영화제에서 금곰상을 받았다. 영화의 원제목은 ‘국민 대 플린트(The People Vs. Larry Flint)’이다. 미국 국민의 이름으로 래리 플린트의 죄를 묻는 과정이라는 의미다. 영화의 내용과 성격을 전하기에 더없이 적절하다. 영화에서는 몇 차례 소송을 통해 래리의 죄에 대한 치열한 공방이 펼쳐진다.

▲ 밀로시 포르만 감독의 영화 '래리 플린트'. ⓒ 영화 포스터

십 년 넘게 이어진 래리의 법정 싸움은 1977년에 시작된다. 신시내티 경찰은 '음란물 제작 반포죄'로 래리를 체포한다. 이때 평생 친구가 되는 청년 변호사 앨런 아이작맨과 만난다. 변호사 입장에서 래리는 부자면서 항상 사고를 치는 이상적인 고객이다. 그러나 앨런은 70년대 미국의 많은 젊은 법률가처럼 이상을 가진 변호사다. 래리의 저속한 잡지를 좋아하지 않지만 미국이 국민의 이상한 취향도 선택할 권리로서 보장해 주는 성숙한 자유 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 앨런의 소신이다.

포르노 잡지도 표현의 자유를 가지는가

사건이 제소된 신시내티 해밀턴 카운티 법원에서 경찰은 허슬러가 “낯 뜨거운 자세를 취한 남녀뿐 아니라 양철 깡통과 산타클로스까지 성적 대상으로 삼는 것은 사회적 규범에 어긋난다”며 유죄를 주장한다. 래리는 “사회적 규범을 정하는 것은 검열의 또 다른 얼굴일 뿐”이라며 “허슬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읽지 말라”고 반박한다. 앨런은 “일부가 외설이라고 생각하는 것에 벽을 쌓기 시작하면 머잖아 예상치 못한 곳에 벽이 세워져 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두 사람의 열변에도 배심원들은 유죄평결을 내리고 판사는 래리에게 징역 25년 형을 선고한다.

5개월 후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석방된 래리는 자유언론운동의 영웅으로 주목받는다. 그는 ‘자유언론을 위한 미국인(United For a Free Press)’ 모임 연설에서 “살인은 불법이지만 살인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하면 특종”인데 “섹스는 합법인데도 섹스하는 사진을 찍어 실으면 감옥에 간다”며 법의 모순을 비판한다. 그는 전쟁에서 죽은 사람의 사진과 여자의 알몸 사진을 번갈아 보여주면서 “전쟁과 섹스 중 어떤 것이 더 외설적이냐”고 반문한다.

▲ '자유언론을 위한 미국인' 모임에서 연설하는 래리 플린트. ⓒ 영화 화면 갈무리

래리는 이후에도 몇 차례의 법정 다툼을 겪는다. 그는 소송 과정에서 상식에서 벗어난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 진실을 증언할 선서를 거부하면서 “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데 맹세할 수 없다”고 비아냥거린다. ‘망할 놈의 법원(Fuck This Court)’이란 글자가 쓰인 티셔츠를 입는 것으로도 모자라 국기로 만든 기저귀를 입고 법정에 선다. 벌금 1만 달러를 내라는 판사의 판결에 항의해 현금을 법정에 뿌린다. 법정모욕죄로 거주지 제한 명령을 받자 이를 무시하고 여행하다 15개월 정신병원 감금을 선고받기도 한다. 래리는 연방정부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행동으로 표출한다.

미국 언론자유의 핵심 수정헌법 1호

래리가 시도한 최대 도박은 자타가 공인하는 도덕의 수호자 제리 폴웰(Jerry Falwell) 목사를 공격한 일이다. 폴웰 목사는 활발한 텔레비전과 라디오 설교를 통해 전통 도덕의 부활운동을 벌이고 있는 명사다. 그가 이끄는 ‘도덕적 다수파(Moral Majority)’의 회원이 500만 명이 넘을 정도로 그의 영향력은 컸다. 한 잡지의 여론 조사에서 레이건 대통령 다음으로 가장 존경받는 미국인으로 선정될 정도다. 우리나라로 치면 김수환 추기경과 같은 인물이다.

래리는 허슬러 1983년 11월호에 폴웰이 등장하는 패러디 광고를 싣는다. ‘제리 폴웰의 첫 경험 고백’이라는 선정적인 제목의 광고는 폴웰 목사가 술에 취해 어머니와 처음으로 섹스했다고 털어놓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광고 하단에 작은 글씨로 “광고 패러디-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 것”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잡지 목차에는 “허구: 광고와 유명인 패러디”라는 설명을 달았다. 해당 광고가 논란이 되자 허슬러는 “폴웰이 명망이 있고 신앙이 깊은 사람이기 때문에 술 광고에 가장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풍자하는 차원에서 만들었다”고 밝힌다.

▲ 제리 폴웰과 법정 싸움을 하는 계기가 된 1983년 11월호에 실린 패러디 광고. ⓒ 영화 화면 갈무리

광고를 본 폴웰은 래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 청구원인은 세 가지다. 첫째는 명예훼손, 둘째는 사생활 침해, 셋째는 의도적인 감정적 고통이다. 1984년 버지니아 주 로아노크 법원에서 폴웰과 래리의 첫 번째 재판이 열린다. 래리의 변호사 앨런은 “허슬러는 언론의 자유에 근거해 공적 인물을 풍자할 자유가 있고 폴웰에 관한 패러디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폴웰 측은 “표현의 자유는 소중하지만 평판을 떨어뜨리는 데 목적이 있는 악의적인 공격으로부터 공적 인물도 보호돼야 한다”고 맞선다. 법원은 앨런의 변론대로 폴웰이 공인이라는 점과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도 믿지 않을 농담이었음을 인정해 명예훼손의 성립을 부정한다. 다만 의도적으로 감정적 고통을 준 불법행위를 인정해 폴웰에게 20만 달러를 보상할 것을 명령한다.

래리는 항소한다. 마지막 판결은 1987년 워싱턴 DC 미합중국 연방 대법원에서 이뤄진다. 이 재판은 ‘하나님 대 악마’, ‘미국의 목사 대 미국의 포주’의 싸움이라 불리며 전 국민의 주목을 받는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언론과 인권단체가 래리를 공개적으로 지지한다. 폴웰이 이긴다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중대한 제약이 될 수 있다는 사회적 우려가 팽배했기 때문이다. 연방대법원에서의 법리논쟁은 보수적이기로 유명한 윌리엄 렌퀴스트 대법원장의 주재로 벌어진다. ‘술 광고에 공적 인물을 풍자해서 얻는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가’가 논쟁의 핵심이다. 래리의 변호사 앨런은 아홉 명의 대법관 앞에서 주장을 펴나간다.

“이 나라의 가장 큰 장점은 제약 없는 공개 토론회와 언론의 자유입니다. 오늘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정신적 고통으로부터 보호할 공인의 권리가 모든 시민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냐는 겁니다. 논란이 된 광고 패러디는 공인에 대한 풍자였습니다. 폴웰을 터무니없게 묘사하면 공익이 발생합니다. 폴웰이 사람들 정신에 독이 된다며 허슬러를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불매운동을 펼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허슬러는 폴웰이 허풍쟁이라고 말함으로써 우리 수준으로 끌어내리고자 했습니다. 폴웰을 근친상간이라고 풍자하는 것은 취향의 문제지 법의 문제가 아닙니다. 만화가 개리 트루도가 레이건을 무뇌아고 조지 부시는 약골이라고 부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공인을 비판하면 감정적 고통을 받는 건 당연합니다. 감정적 고통은 처벌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폴웰이 정신적 고통을 이유로 고소할 수 있으면 다른 공인도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이런 풍자도 사회의 건강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믿음 위에 서 있습니다.”

▲ 아홉 명의 대법관 앞에서 표현의 자유를 들어 래리의 무죄를 주장하는 앨런 아이작맨. ⓒ 영화 화면 갈무리

연방대법원은 만장일치로 래리의 손을 들어준다. 저급한 풍자이지만 헌법이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만큼 언론 보도로 인한 감정적 고통에 대해 책임질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렌퀴스트 원장은 래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아홉 명 판사 전원의 뜻을 담아 판결문을 직접 쓴다. "수정 헌법 제1조의 핵심은 사상의 자유로운 흐름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 것이다. 생각을 자유롭게 얘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 일면이자 진실추구에 핵심적이며 사회통합에 필수적이다. 공무에 대한 논의에서 존경스러운 동기와는 거리가 먼 것과 행해진 경우도 많지만 늘 수정헌법 제1조에 의해 보호됐다."

표현의 자유 없이 민주주의 없다

130분에 걸친 논쟁을 마감하는 영화의 연방대법원 판결문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동선과 관련한 루머를 칼럼으로 실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일본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이 지난 12월 17일 1심 판결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은 피고인이 허위사실을 적시해 ‘사인 박근혜’의 명예는 훼손했지만 ‘대통령 박근혜’의 경우 언론의 기능을 폭넓게 인정해야 하므로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을 내렸다. 청와대는 애초 “민·형사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는 강경방침을 정했고 검찰은 무리한 수사·기소를 거쳐 가토지국장에게 징역 18개월을 구형했다.

래리 플린트와 제리 폴웰의 사건은 공인인 개인의 명예권보다 언론의 자유가 헌법의 가치를 지키는 데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공인 중의 공인인 국가원수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공적 인물에 대한 풍자가 아무리 저질스러울지라도 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자유로운 토론을 위해 보호돼야 한다. 래리 플린트는 해당 재판 후에도 허슬러를 포함한 29가지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제리 폴웰은 여전히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종교인으로 남아 있다.


편집 : 김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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