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인문산책] 인간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법

▲ 박상연 기자

신(神)이 세상과 인간을 빚었을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구약성서 첫 권 <창세기>는 신의 천지창조를 다룬다.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한 뒤 에덴동산에 인간 ‘아담과 이브’를 빚는다. 우리의 단군신화도 그렇다. 단군의 할아버지는 하늘의 신 환인이고, 그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을 품고 지상으로 내려온다. 수많은 생명체 중 인간은 신에게 선택받았고, 본래 ‘곰’이었던 동물도 신의 지시로 고행 끝에 인간이 된다. 그가 환웅과 결합해 낳은 아이가 고조선의 첫 지도자인 단군이다.

역사학자 전우용은 전 세계 시조신화와 우리의 단군신화가 비슷한 구조임을 밝혀낸다. 신화에서 사람의 조상은 결코 사람이 아니다. 인간 형상의 초인적 존재거나 상상 속 존재가 인간의 뿌리다. 어느 문명이나 인간은 초자연적 존재인 신에게 생명을 부여받고 터전을 꾸리며 삶을 이어간다. 신이 정말로 만물을 창조했느냐는 부차적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인간이 창조자로서의 신을 기록하고 숭배했다는 점이다. 자신의 뿌리를 신성하고 권위 있는 신의 선택으로 한껏 치켜 올린 인간. 끊임없이 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사상이나 행동을 ‘정상’으로 인정받고자 애쓴 궤적이 인류 역사다.

인간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방법은 역설적으로 신에게 불가침의 권위를 주는 일이다. 313년, 로마제국의 공동 통치자인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모든 로마인은 원하는 종교를 따를 수 있다”는 밀라노 칙령을 선포한다. 로마 사회에서 기독교를 보장하고 장려하는 계기였다. 당시 교계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신과 동일하게 간주하는 아타나시우스파의 주장을 정통으로 삼았다. 반면 예수에게 인간의 속성도 있다고 본 아리우스파는 ‘이단’으로 쫓겨났다.

▲ 마녀로 붙잡힌 여성을 고문하는 장면, 1577년 작품. ⓒ 위키백과

인간이 자신을 정당화하는 두 번째 방법은 신을 빌어 타자의 정당성을 빼앗는 것이다. 13~14세기 유럽에서는 전쟁과 흑사병, 자연재해와 같은 고통과 불행이 잇따라 겹쳐 민심이 흉흉했다. 불안과 공포가 거듭되자 기반이 약해진 교황과 황제는 그들의 현실을 정당화할 희생양을 찾아 나섰다. ‘마녀사냥’. 당시 <마녀의 망치>라는 연구본이 나와 마녀사냥의 교과서로 쓰였다. 교황 인노첸시오 8세는 연구본에 직접 서명하고 인증까지 했다. 비록 <성경>에 ‘마녀’에 대한 기록이 없음에도, 교황의 권위가 실리자 ‘마녀’가 세상을 위태롭게 한다는 믿음이 퍼졌다. 허언과 몽상에 근거했으나, 마녀를 색출해 처벌하는 과정은 고통 가득한 현실에서 부당한 권력을 지키는 지름길이었다.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으나, 권력의 정당성에 목마른 이들이 집단 최면에라도 걸린 듯 야만적인 마녀사냥을 이어갔다. 마녀사냥은 17세기 말 근대국가가 성립되고 사법제도가 확립되면서 급격히 줄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도 비합리적이고 부도덕한 유사 마녀사냥은 끊이지 않는다. 권력과 지배계층의 입맛에 맞게 신을 빚는다. 히틀러, 무솔리니, 일본군국주의의 파시즘 체제를 이어 좀 더 세련된 형태로 다듬어져 우리 주변에 나타난 ‘반공’, ‘친자본주의’... 이런 유사 신들은 헤게모니를 쥔 자의 뜻을 관철하고 ‘화해와 포용’, ‘친노동, 친서민’의 가치를 배척하는 ‘마녀사냥’의 도구로 이용된다. 벤야민의 말처럼 ‘문명의 역사는 야만의 역사’로 탈바꿈한 것은 아닌지. 신이 이러한 참혹한 결과를 알았다면 인간을 빚었을 리 없다.


세명대 저널리즘 스쿨 1학기에 개설되는 인문교양수업 [서양문명과 미디어 리터러시(담당교수 김문환)]. 매시간 하나의 역사주제에 대한 서양 문명사 강의가 펼쳐집니다. 수강생은 수업을 듣고 한편의 에세이를 써냅니다.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에다 다양한 생각을 곁들여 풀어내는 글입니다. 이 가운데 한편을 골라 지도교수 첨삭 과정을 거쳐 단비뉴스에 <역사인문 산책>이란 기획으로 싣습니다. 이 코너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진행되는 [김문환 교수 튜토리얼] 튜티 학생들의 인문 소재 글 한 편도 첨삭 과정을 포함해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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