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인공지능’

▲ 김민지 기자

잎보다 먼저 피는 봄꽃이 지고, 짙어지는 녹음 속에서 여름꽃이 존재감을 드러내려 안간힘을 쓴다. 꽃놀이에 이어 물놀이 가는 이들로 주말에는 전국의 도로가 몸살을 앓는다. 그들을 보며 나를 돌아본다. ’나만 우울한 걸까?’ 일조량이 줄어드는 겨울에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 많을 것 같지만 실제는 다르다. 겨울보다 봄에 자살하는 사람이 더 많다.

높아지는 온도에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봄을 그냥 보냈으니 여름이라도 만끽하고 싶은데 그런다고 내게 행복이 찾아들까? 상대적 박탈감이 우울증을 불러오는 것이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우울증을 겪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울한 마음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잘 다스린다면, 감정 기복과 불안, 우울은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감정이 될 수 있다.

우울증은 인간이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진화의 산물이다. <마음의 사생활>을 쓴 심리학자 김병수는 ‘감정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신속하게 알려준다’고 했다. 불안감은 위험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알려주는 마음의 경고이며 분노는 자신의 정체성과 존엄을 지켜야 한다는 신호이다. 인간의 뇌를 토대로 인공지능은 급속히 발전한다. 인공지능 진화의 끝은 어디일까? 인공지능 역시 욕망하고 후회하는 주체가 된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인공지능과 사랑하는 영화인 <그녀(Her)>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혼을 앞두고 부인과 별거 중인 ‘테오도르’는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고 위로하는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몸’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없는 자신의 결핍을 괴로워한다. 테오도르의 오랜 친구이자 이웃사촌에 대한 질투도 내비친다. 하지만 영화 끝에 테오도르는 혼란에 빠진다. ‘사만다’가 전 세계 수천 명의 ‘테오도르’와 비슷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기계를 사랑했지만 기계가 인간을 사랑할 수는 없었다. 영화의 원제가 주체를 뜻하는 ‘She’가 아니라 누군가의 객체인 ‘Her’라는 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 인공지능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 테오도르. 인공지능 역시 욕망하고 후회하는 주체가 된다면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 워너브라더스 제공

인공지능의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인간이 필요한 이유를 깨닫는 과정이다. 여행가 후지와라 신야는 산문집 <돌아보면 언제나 네가 있었다>에서 정신과 의사와 대화한다. “감동이라는 건 이상한 표현입니다만, 어떤 면에서는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가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지, 그 내면의 순수함이라든지 풍부한 감수성에 오히려 제가 감동하는 경우가 생기곤 합니다.” 우울증을 겪는 사람은 인간 본연의 감정을 잃지 않은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적인가 친구인가를 따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그것은 칸트가 정의한 대로 ‘인간 스스로 초래한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길’인 계몽을 어떻게 이루느냐이다. 가장 인간다운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것. 인공지능보다 가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질문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민수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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