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구의역 사고 해결을 위한 시민토론회

지난 12일 오후 서울시청 대회의실에서 ‘구의역 사고 해결을 위한 시민토론회’가 열렸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이사의 사회로 3시간 넘게 이어진 행사에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은수미 전 국회의원,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김진억 희망연대노조 국장 등 10명의 전문가 패널이 참석했다. 100여명이 넘는 시민들도 회의실을 가득 메워 이번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의견을 전달했다.

▲ 서울시청 3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구의역 사고 해결을 위한 시민토론회. ⓒ 배지열

현장과 시민을 중심으로 대책 논의해야

전문가 패널들은 이번 사고의 원인으로 비정규직 고용 문제와 안전 분야의 외주화 등을 꼽았다. 은수미 전 의원은 우리 사회를 ‘하청 사회’라고 규정지으면서 “2005년 KTX 노동자들부터 시작해 이번 구의역 사고까지 현장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 하청업체 소속의 비정규직”이라며 “시민들도 동의한 면이 있는 만큼 이를 뿌리 뽑으려면 시민이 주도하는 행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안전 관련 자문단장을 맡고 있는 박두용 한성대 교수는 “이번 사고는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정과 소득격차, 불평등 문제까지 포함한 경우”라며 “정시에 맞춰 운행해야 한다거나 빠른 운행에 매달리다 보면 그 피해는 결국 약자에 돌아간다”고 말했다.

▲ 은수미 전 국회의원(사진 중간)이 발언하고 있다. ⓒ 배지열

또 다른 구의역 사고를 막기 위해 필요한 건 안전에 대한 관리감독과 시민들의 관심이라는 데 의견이 모였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위험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이 ‘작업중지요청권’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하고, 서울 곳곳의 안전을 모니터링하는 ‘시민안전감독관제도’도 필요하다”며 “시민들의 관심으로 노동자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시민 스스로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이영희 가톨릭대 사회학과 교수는 ‘시민안전권’을 주장했다. 이 교수는 “시민 스스로 안전을 지켜나가기 위해 권리를 향유하고 요구해야 한다”며 “안전과 관련된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관련된 분야의 정책결정 과정에 의견을 보이는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책을 수립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모든 노동이 평등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 원칙과 상식이 배제된다면, 아무리 기술적인 대책이나 정책들이 많아도 공허한 해결책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다.

온‧오프라인 속 시민들 “안전이 우선”

시민들도 각자가 생각하는 사고의 원인과 대책을 이야기하기 위해 여기저기서 손을 들고 발언권을 신청했다. 오선근(55) 사회공공연구원 부원장은 직접 만들어 온 자료를 전문가 패널들에게 나눠주면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최저가 낙찰제와 공사기간 단축, 비리의혹 등의 부실시공으로 스크린도어 고장이 자주 발생하는 것이 문제”라며 “서비스 생산자와 노조, 전문가를 포함한 시민까지 함께 참여하는 안전 거버넌스를 운영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 한 시민이 구의역 사고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발언하고 있다. ⓒ 배지열

토론회에는 특히 지하철과 관련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직접 현장의 목소리를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메트로 소속 지하철 보안관(39)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한 시민은 “현재 무기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지하철 보안관처럼 승진 기회도 없이 박봉으로 일하는 정규직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며 “지금 해결책으로 말하고 있는 정규직 전환이 이뤄져도 그 안에서 차별받을 수 있다”고 정규직의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무를 하고 있는 시민은 “열차가 다니지 않을 때 점검을 해야 하는데, 야간에 업무를 같이 할 사람이 더 필요하다”며 “정규직이라고 열차에 부딪히면 죽지 않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인력문제가 해결돼야 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꼭 반영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에서 일하고 있다는 한 노동자는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을 맡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기도 했다.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인원이 부족해 1인 작업을 한 경험이 있었고, 대부분이 작업 중 열차에 충돌하기 직전의 상황까지 겪어봤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는 “지하철에서는 사람이 모자라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모자란데, 두 가지 요구가 만나서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시기 바란다”고 박 시장에게 부탁하기도 했다.

토론이 진행되는 대회의실 한 쪽 모니터에서는 토론회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며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시민들의 메신저들이 실시간으로 표시됐다. 시민들은 우리나라에 안전 전문가가 없는 점, 지하철 정시 운행을 너무 강조하는 분위기, 일하는 사람은 한 명인데 감독하는 사람은 열 명인 작업 환경 등을 지적했다.

▲ 이날 토론회는 온라인 생중계와 메신저를 통해 시민들의 참여와 의견을 받기도 했다. ⓒ 배지열

안전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사고 이후 아직까지 서울메트로 차원에서 나온 대책과 개선책은 미흡한 수준이다. 정수영 서울메트로 사장 직무대행도 이 점을 인정했다. 2인 1조로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을 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지만, 인원 충원에 시간이 걸려 현재는 서울메트로 직원들이 입회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정 직무대행은 “사고 이후에는 정시 운행보다 안전 운행이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며 ”공사 차원에서 대책 안이 마련되면 노조와 협의해 작업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 박원순 서울시장이 토론회에서 시민들의 의견을 듣고 발언하고 있다. ⓒ 배지열

박 시장은 마지막 발언에서 모든 이야기를 듣고 하나하나 서울시의 정책에 반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도 촉구했다. 그는 “서울시가 노동존중 특별시라는 내용을 발표하고 노력했지만 아직 현장에는 그 철학이 미치지 못한 것 같다”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안전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결심으로 틀을 바꾸고 탈바꿈을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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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문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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