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
주제 ① 정치개혁의 과제와 현실

“여러분은 내각제로 바꾸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정치개혁의 과제와 현실’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자 10여 명이 손을 들었다.

최근 개헌 논의에서 내각제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대통령이 의제를 던지고 상황을 주도해 입법부와 사법부 등 정치의 다른 주체들은 협상 테이블에서 언제나 무기력했다. 대통령의 독주 탓에 내각제로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내각제는 거의 모든 정책 결정을 의회에 맡겨 최고 권력자의 권한을 분산시키는 효과가 있다.

▲ 이대근 <경향신문> 논설주간이 ‘정치 개혁’을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서혜미

하지만 이 주간은 내각제가 좋은 진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집권세력이 행정부와 의회를 동시 지배하므로 집권당에 권력이 쏠린다는 것이다. 집권 기한도 정해져 있지 않아 내각제를 시행하는 유럽 국가에서는 한 당이 10년 이상 장기집권하는 사례가 흔하다.

중임제 역시 내각제와 함께 제왕적 대통령제의 해결책으로 꼽힌다. 5년 임기를 4년으로 줄이고 연임을 가능하게 해 국민은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이 주간은 “다만 중임제는 임기 8년을 보장해 ‘제왕적 대통령제’로 변질될 수 있다”면서 “파벌 정치가 기승을 부릴 확률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제도 변화로 정치 개혁을 바라보면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적 균열을 대표하고, 대결 정치를 지양하려면 다양한 노선의 정당들이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야 합니다.”

석패율제·권역별비례대표제 지역주의 해소 못 해

그렇다면 정당은 어떻게 개혁할 수 있을까? 이 주간은 “지난해 선거구 획정 논의 이후 선거제도 개편을 통해 정당 개혁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생겼다”고 말했다. 먼저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제로 바꾸는 안이다. 우리나라는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와 시·도의원 선거에서 선거구별로 한 명을 선출하는 소선거구제를 채택하고 있다. 이 주간은 “중대선거구제는 한 지역구에서 여러 명을 뽑는 제도로 양당제를 깨는 효과가 있지만 후보자가 많아서 정책이 아닌 인물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지역주의 해결책으로는 석패율제와 권역별비례대표제가 논의되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해 2월 선거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석패율제와 권역별비례대표제 도입을 제안했다. 석패율제가 높은 득표율로 낙선한 후보를 비례대표로 뽑는 제도라면 권역별비례대표제는 전국을 여러 권역으로 나눠 해당 권역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이 주간은 “석패율제와 권역별비례대표제는 지역주의를 완화하는 효과가 작다”고 지적한다. 그는 “석패율제가 시행되면 벌을 줘야 할 지역주의 정당에 상을 주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국민이 지역주의 정당에 벌을 주고자 그 당의 후보를 뽑지 않아도 후보가 비례대표로 선출돼 국민이 정당에 책임을 묻지 못한다.

6~7개 권역을 나누는 권역별비례대표제도 지역으로 쪼개는 현 선거제도와 다르지 않다는 게 이 주간의 주장이다. 그는 “권역별비례대표제를 시행하더라도 충남∙영남∙호남 등 여전히 지역으로 나뉜다”며 “영호남 국회의원과 비례대표 의원들이 국회로 진출해 지역주의는 더 공고해진다”고 말했다.

이 주간은 지역주의 해소와 관련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소개했다. 2013년 전 영•호남 국회의원들은 ‘동서화합포럼’을 만들었다. 이들은 전남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와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찾았다. 당시 많은 언론이 동서화합포럼의 행보를 ‘영호남 화합’으로 보도했다. 하지만 이 주간의 생각은 다르다. 그는 “지역주의를 강화하는 합작”이라고 평가했다.

“영호남 의원들은 서로의 지역을 방문하며 박정희 전 대통령을 영남지역주의, 김대중 전 대통령을 호남지역주의의 대표주자로 만들었습니다. 지역주의를 더 강화하고 후퇴시키는 행동입니다.”

국민참여경선은 정당의 책임을 국민에게 떠넘기려는 ‘꼼수’

국민참여경선(오픈 프라이머리) 역시 정치권에서 자주 거론되는 개혁안이다. 특히 여권에서는 이번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와 친박계의 갈등이 두드러졌다. 지난 1월 김 대표는 정당의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모든 공천을 여론조사를 통해 하겠다고 주장했다. 시민에게 공천권을 돌려줘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이를 토대로 정치 불신을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참여경선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가 된 뒤부터 정치개혁안의 단골 메뉴로 등장했다.

▲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신년기자회견에서 100% 상향식 공천제를 확립하겠다고 밝혔다. ⓒ 1월 19일 <KBS 뉴스광장> 화면 갈무리

이 주간은 “기대와 달리 국민참여경선은 미디어에 자주 나오는 유명인사와 현역의원들이 당선되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일반 시민이 정당의 모든 후보를 알 수 없으니 익숙한 사람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업으로 바쁜 서민층은 정치에 쏟을 시간과 자원이 없다. 결국 국민참여경선에 참여하는 것은 소수 열성적 지지자들뿐이다. 무엇보다 국민참여경선은 정당의 존재 이유를 거스른다는 점에서 반정치적이다.

“정당의 목적은 집권입니다. 특정한 이념과 정체성을 가지고 집권을 목표로, 공직 후보를 내는 게 조직으로서 정당입니다. 그런데 오픈 프라이머리는 정당이 공직 후보를 고를 능력이 없으니 시민들한테 ‘알아서 골라 달라’고 한 뒤 또 시민한테 물어보겠다는 겁니다.” 

이 주간은 “정당 당직자에게 월급을 주고, 매해 국고보조금 수백억 원을 주는 이유는 시민을 대변해 일하라는 의미”라며 “여론 조사에만 치중할 거면 차라리 정당을 해산시키고 여론조사기관 세 개를 만들어 선거 기간에 전화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당은 능동적으로 정책개발과 인재양성에 힘써야 한다. 국민참여경선을 핑계로 이를 소홀히 하는 모습은 ‘배반의 정치’라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개혁 하려면, 비례대표 의석수 늘려야

이 주간은 비례대표제 확대를 통한 정당 개혁을 강조한다. 그는 “지역구 의원들은 자기 지역 일만 챙기지만 비례대표는 전국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다”고 했다. 유럽 상당수 국가들은 이미 전면적 비례대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남미 주요 국가도 비례대표제를 통하여 모든 의원을 선출한다.

한국 정당 개혁의 모델로는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가 꼽힌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정당득표율에 비례해 각 정당의 의석수를 결정하고 다시 권역별로 정당득표 득표수 비율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를 배분하는 방식이다. 가령 A정당이 전국 정당득표율 10%를 얻었다면 전체 400석 중 40석을 배정받는다. 이후 권역별로 득표수 비율에 따라 권역별 의석수가 할당된다.

“가장 이상적인 제도는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되 비례대표를 늘리는 겁니다. 그동안 국회에서 비례대표를 확대하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양당은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비례대표를 늘리는 데 반대했습니다. 개혁 대상인 국회에 주체의 역할을 부여해서는 개혁하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들이 국회에 개혁하도록 압력을 넣어 비례대표를 늘려야 합니다.” 

비례대표를 늘리려면 국회의원 증원이 불가피하다. 한국은 국회의원 한 명이 대표하는 시민의 수가 OECD 34개국 중에서 4번째로 많다. 인구수에 비해 의원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여론은 국회의원이 갖는 특권에 반감이 많지만, 다양한 계급과 계층, 소수자를 대표해 민주주의의 다원성을 살리려면 의원을 늘려야 한다는 게 이대근 논설주간의 주장이다. 그는 “이번에 선거구 개편 논의 때 처음으로 의원 증원을 당론으로 채택한 정당이 있었다”며 “성과는 없었지만 의원 증원을 두고 찬반 토론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굉장히 큰 진전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 이대근 논설주간은 정치 개혁을 위해 비례대표제를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 서혜미

야당이 변해야 여당과 대통령도 변한다

“한국 정치를 개혁하려면 야당 개혁을 먼저 해야 합니다.”

이대근 논설주간은 정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방법으로 ‘야당 개혁’을 손꼽았다. 한국 정치는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구도가 아니라 새누리당과 새누리당이 아닌 기타 정당의 구도”이기 때문에 먼저 야당을 제대로 된 정당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 야당은 정당 조직으로 보기 힘들다. 정당은 당의 이념과 노선, 당 지도부의 리더십, 당직자를 포함한 당원, 그 밖의 기타 지지자가 굳건히 자리 잡아야 한다. 그러나 야당은 2000년대 중반부터 잦은 분당과 합당으로 어느 것 하나 확고하게 갖추지 못한 ‘파벌 연합체’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 주간의 설명이다.

“야당은 당명이 수시로 바뀝니다. 여당은 당명도 잘 안 바꾸죠. 야당은 당 대표 임기가 50일이었던 적이 있을 만큼 리더십도 불안정합니다. 집권당은 당과 지지자 그룹이 결속돼있지만, 야당은 이름과 사람이 걸핏하면 바뀌고, 당의 노선까지 바뀌니 당과 지지자의 연계성이 전혀 형성되지 않아요.”

그는 야당이 대여투쟁을 열심히 하면 지지를 받으리라 생각하지만, 여론조사 결과는 안 좋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여당을 견제해 법안을 저지하거나,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야 했지만 싸움의 성과는 신통치 않았다. 여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니 대안세력이 아닌 ‘싸움만 하는 집단’으로 낙인 찍힌다. 앞서 언급한 정당의 요건이 미흡하기 때문이다. 이 주간은 정당이 스스로 개혁하기는 힘드니 시민의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자고 주장했다.

“그 전에 어느 정당도 지지하지 않는 일이 시민적 교양처럼 여겨지는 풍토를 바꿔야 해요. 한국은 정치 혐오가 너무 심해 ‘지지정당 없음’을 너무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사회입니다. 이게 거꾸로 돼야 해요. 그래야 시민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야당이 바뀌면 여당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여당의 긴장은 내부 혁신으로 이어지고, 이는 의회의 견제력이 커지는 결과를 낳는다. 지금처럼 정권이 함부로 권력을 남용할 수 없게 된다. 정치 개혁의 출발점이 야당 개혁에 있는 이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김종철 이대근 곽윤섭 박태균 김호상 임병도 오연호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지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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