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의 문답쇼, 힘] ⑨ 김형오 전 국회의장

5선 의원으로 지난 18대 의회를 이끌었던 김형오(69) 전 국회의장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정당들에게 지나치게 쏠린 힘을 빼는 개혁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전 의장은 19일 SBSCNBC에서 방송된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해 “우리나라 정당들은 국고보조금과 법률상의 보호를 받으며 많은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그는 특히 “각 정당이 사사건건 당론을 강요하고 소속 의원들이 이를 따르지 않으면 당직과 공천에서 배제하는 등 ‘왕따’를 시킨다”며 “당론을 최소화하고 상임위원회 중심의 토론과 타협이 활성화되도록 해야 정치가 살아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또 내년 대선에서 우리 국민이 주목해야 할 지도자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언행 대신 포용하는 리더십, 자기를 희생하고 헌신하는 리더십을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날 방송의 주요 내용.

▲ 19일 SBSCNBC <제정임의 문답쇼, 힘>에 출연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 ⓒ SBSCNBC

‘한창 나이’ 정계은퇴 후 베스트셀러 소설가로 변신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대한민국 역대 최연소 국회의장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분이시죠. 김형오 전 국회의장 모셨습니다. 김 의장님은 1992년 14대 국회부터 내리 5선을 하셨죠. 한나라당 사무총장, 원내대표를 거쳐 18대 국회 때 최연소라는 기록으로 의장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18대 국회 임기가 끝나던 2012년 돌연 정계를 은퇴하셨어요. 당시 연세가 60대 중반이어서 정치인으로는 한창 나이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은퇴를 결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형오(전 국회의장): 집사람이 그래요. 빨리 그만두기 잘했다고. 요즘 정치판에 있었으면 저도 도매금으로 비난받았을 것이라는 의미인 것 같아서 같이 웃고 그럽니다. 사실 국회의장까지 했으니 정말 큰 은혜를 입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할 일도 다했고, 나름대로 더 늦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돌연 불출마 선언을 해버렸습니다.

제: 그러고 나서 6개월 만에 <술탄과 황제>라는 소설을 들고 나오셨어요. 국회의원 그만두고 하고 싶다고 했던 일이 이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이 무려 38쇄를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이런 반응을 예상하셨는지요?

김: 아니죠. 처음에는 책을 쓸 생각도 없었고요. 아시다시피 국회의장이라는 자리가 굉장히 복잡하고 바쁘죠. 근데 우연한 계기가 있었어요. 역사적인 사건을 만났죠. “배를 끌고 산을 넘어갔다.” 항구를 점령하고, 세계사의 흐름을 바꿔 놓은 전대미문의 사건을 접하게 돼서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제: 술탄(메흐메트 2세) 얘기군요.

김: 도대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건인가? 그러다보니 관련 서적들을 읽게 되었는데, 내가 아는 것보다 못한 책들도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이정도면 나도 쓸 수 있겠단 생각을 가지고, 2년 동안은 책 쓸 생각 없이 관련 서적들만 읽었고, 또 2년 동안은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어서 총 4년이 걸려 이 책이 나왔습니다.

▲ 저자 김형오로서 소개하는 베스트셀러 <술탄과 황제>. ⓒ SBSCNBC

제: 국회의원 시절에 터키의 이스탄불 등 유적지가 있는 곳에 가서 자극을 받고 공부를 시작하신 거군요. 그 외에도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관심을 깊이 가지고 있는 사안은 어떤 것이 있습니까?

김: 부산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하고 있어서 학생들 대상 강의도 하고, 민족의 표상인 백범 김구선생기념사업회 회장을 맡아 마지막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 백범 김구 선생은 많은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는 분이죠. 기념사업회장으로서 후대가 이건 꼭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꼽을 만한 것은 무엇입니까.

김: 백범선생은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통일된 대한민국을 꿈꿔 오신 분입니다. 백범선생은 문화가 꽃피는 나라를 원하셨고, 정치적으로는 자유의 사상이 만개한 나라를 원하셨습니다. 철학적 기반의 사유가 가능한 교육이 있어야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울 수 있는 나라다. 이것이 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교육은 철학적 기반이 약해서 오히려 교육이 걸림돌이 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제: 통일된 한국, 문화가 융성한 나라라는 비전은 어느 시대에나 통할 얘기군요.

김: 백범 선생의 호 자체가, ‘평범한 백성’이죠. 자신을 낮추신 것이죠. 애국이라든지 조국에 대한 헌신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것이고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두 잠재된 애국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말하며 자긍심을 깨우쳐주신 위대한 선각자 중 한분이시죠.

▲  백범 김구 선생이 가장 강조했던 통일된 한국을 말하는 김 전 의장. ⓒ SBSCNBC

제목도 모르고 읽은 홍길동이 독서 인생의 시작

제: 첫 번째 키워드로 홍길동을 꼽아 주셨습니다. 홍길동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들 친근한 얘기,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얘기인 고전 소설이죠. 어떤 사연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 제가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해서 학교에 못가는 날이 많았어요. 시골집에 있다 보니까, 할 일도 없고 해서 자연히 형이나 누나의 교과서라든지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보니까 앞뒤장이 다 떨어진 두꺼운 책이 있었어요. 읽다가 밤을 홀딱 새웠어요. 제목도 모르고 저자도 몰랐는데, 읽으면서 이게 홍길동인 것을 알았죠. 중학교 들어가서야 그 책이 정비석 선생의 <홍길동전>이라는 것을 알았죠. 중학교는 부산에서 다녔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책 속에 파묻혀 지냈어요.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를 포함한 동양고전 등 읽을 수 있는 책은 다 읽었습니다. 고등학교 입시를 앞두고도 그 당시 나왔던 셰익스피어 전집 36권을 다 읽었죠. 그 때 청소년기에 무작정 읽었던 책들이 오늘 저에게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제: 자금까지 읽었던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 깊었던 책을 꼽으신다면.

김: 가장 긴 시간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술탄과 황제>를 쓰는데 배경이 되었던 스티븐 린치만 교수의 <1453년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이란 책이에요.

제: 책을 보니까 아주 빽빽하게 밑줄을 그으셨고, 중간 중간 연필로 메모도 해 놓으셨어요.

김: 어떤 날은 2~3분밖에 못 읽고, 어떤 날은 한 시간 정도 읽고 그랬어요. 어느 날 의장실에서 비서가 얘기하길 도서관 책인데 반납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반납했다 다시 대출을 해야 한대요. 도서관 책인 것을 잊고 메모도 해놓고 그래서, 새 책을 사서 도서관에 주려고 했더니 이미 절판인 상태였어요. 그래서 몇 부를 사면 재판을 찍을 수 있는지 출판사에 문의를 했죠. 원래 찍겠다는 권수의 2배를 사서 도서관에도 몇 부 가져다 놓고, 출입기자들부터 의장실에 오는 사람마다 책을 줬어요. 문제는 그 책을 받고 누구하나 책 잘 봤다는 얘기 안 하는 거예요. 한 번은 30~40명 출입기자들과 식사를 하면서 책에 대해 물어보니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책이 너무 어려워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 책 <술탄과 황제>는 쉽고 재미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이 책을 반면교사로 삼은 거죠.

지난 10일 타계한 강영훈 전 총리가 인생 최고의 멘토

제: 다음 키워드는 강영훈인데요. 강영훈 전 국무총리를 말씀하시는 거죠?

김: 네. 제가 만나 뵌 분, 제가 모셨던 분, 제가 아는 분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격체로 이 분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이 계셨기 때문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정도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청소년기를 보내고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까지 국무총리, 그 이후엔 적십자사 총재를 지내셨어요. 건국, 건군, 민주화 과정과 산업화 과정에 헌신과 봉사를 하신 분입니다. 인간적으로 전형적인 외유내강이십니다. 또 소탈하고 청렴, 강직하신 분이에요. 이런 분이 행정이나 정치, 군 등 우리 사회 요소요소에 좀 더 많이 계셨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이런 아쉬움이 있습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책임의식)의 표본이라고 할까요?

제: 그것을 특별히 느낀 것은 개인적인 인연이 있어서 그럴까요?

김: 제가 기자로 있었을 때(1970년대 동아일보 기자), 제가 쓴 글을 보셨어요. 제가 신동아에 쓴 장편 글을 보고 영입 제안을 하셨죠. 그 때 유신시대였고, 기자로서 의미를 크게 갖지 못했기 때문에 옮겨갔습니다.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장이였던 강영훈 박사를 만나게 된 것이죠. 교수들이 쓴 연구보고서를 압축해서 외무부에 보고하는 일을 담당했어요. 그래서 (각종 보고서를 통해) 개인적으로 당시 원장님과 가깝게 알게 되었습니다. 또 총리실 정무비서관으로 일하고 있는데 이 분이 총리로 오셨어요. 얼마나 기뻤는지. 제가 정계에 입문하게 된 것도, 당시 민자당 대표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저를 적극적으로 추천한 것도 강 전 총리십니다. 청와대에서 근무한지 넉 달 만에 정치 현장에 뛰어 들게 되었어요. 원외지구당 위원장을 제 부모님이 돌아가신 부산 영도구에서 맡게 해주셨죠. 제가 기자생활을 하다가 공무원 생활을 하게 된 것도, 또 15년 공무원을 하다가 정계로 뛰어들게 된 것도 강영훈 전 총리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이뤄졌으니까, 개인적으로는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그런 관계입니다.

제: 그러니까 공직이나 정치인의 길을 이끌어 준 멘토 같은 분이시군요

김: 스승이라고 할 수 있죠.

제: 김 의장님의 인맥을 생각해보자면, 김영삼 전 대통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을 거 같아요. 지난해 타계하셨는데, 김 의장님께 김영삼 전 대통령은 어떤 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김영삼 대통령은 중학교도 대학교도 모두 대 선배입니다. 그래서 저에 대해서 들었을 수 있겠지만, 제가 (부산 영도 선거구의) 조직책으로 임명될 때까지 당시 김 대표를 만나 뵌 적도, 통화 해본 적도 없어요. 근데 총리님과 주변 얘기를 듣고 저를 지구당 위원장으로 발탁해주셨습니다. 뵐 때마다 느낀 것은 (김영삼 대통령은) 신념과 확신에 차 계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제가 정치가 서툴러요. 그 때도 제 지역구만 흔들흔들 했어요. 당선이 불확실하니까, 당시 김영삼 당 대표께서 한밤중에 갑자기 전화해서 선거 운동을 독려하셨어요. 처음엔 그대로 뛰어나갔는데, 나중에 "예" 해놓고 그냥 잤어요. 새벽에 약수터에 나가서 하는 게 더 좋으니까. 아무튼 당시 당대표의 관심 덕분에 결과적으로는 낙승을 했지만 과정은 어려웠고, 제가 잊지 못하죠.

40대 중반 초선의원이 몰입한 ‘디지털 입국’

제: 다음 키워드는 디지털입니다. 정보기술 쪽에 관심이 많으셨던 것은 알고 있는 일입니다만.

김: 제가 40대 중반에 국회의원이 되어서 60대 중반까지 만 20년을 했습니다. 40대 중반에는 민자당, 현재 새누리당의 최연소 초선의원이었죠. 저는 사회과학을 전공한 사람이고 기술쪽을 전공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정보화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교체(교통체신)위원회를 들어갔어요. 당시 교체위원회는 교통부(현재의 국토교통부)와 체신부(현재의 방송통신위원회)를 관장하는 곳인데 ‘교체위원회 들어가면 다음 선거에서 교체된다’고 할 정도로 인기가 없는 기피대상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여기 들어가서 정보화에 대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여야가 사소한 일로 싸우는 바람에 국회가 열리지 않았어요. 그 기간에 정보화 관련 학자들과 만나면서 두 달 벼락치기로 공부했는데, 정보화 전문가인 것처럼 많이 알게 됐죠. 당시 이동전화를 디지털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고 제가 누구보다도 주장했어요. 정보통신기술위원장을 하면서 “우리 위원회는 정쟁도, 정회도 인신공격도 없다. 오직 우리에게는 미래만 있다”고 선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자부심도 느끼고요. 또 국정감사 자료도 산더미 같이 쌓여 있는 것 얼마나 보기 싫습니까. 책자로 하지 말고 디스켓이나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도록 했어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뿌듯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 다가오는 ‘디지털 정보화’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모두 기피하는 교체위원에 지원한 김 전 의장. ⓒ SBSCNBC

제: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에서 10년 이상 활동하시면서 의정활동으로 2억 달러를 벌어다 줬다는 얘기가 있어요. 그 2억 달러가 무슨 얘기인가요.

김: “돈 벌어 온 국회의원 있으면 나와 봐라” 할 정도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일입니다. 정보통신 분야에 종사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 쓰고 있는 휴대폰은 CDMA, 즉 코드를 분할하는 다중접속 방식인데 미국의 퀄컴사가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휴대폰으로 만드는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개발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원천기술료로 100을 퀄컴사에게 주면 퀄컴은 제품 상용화에 대한 기술료 20을 우리에게 줘야합니다. 근데 우리가 줄 것은 주면서 받아야 할 것은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계약서 영어원본과 한글판을 보고, 국정감사 때 조목조목 지적해서 반드시 받으라고 했습니다.

제: 돈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해당기업이 몰랐다는 얘긴가요?

김: 기업이 아니라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총괄계약자였습니다. 여기서 삼성, LG 등과 함께 개발한 것이죠. 전자통신연구원과 정보통신부가 같이 하기 때문에 이것을 국정감사 때 지적해서 국제재판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3년 재판 끝에 현찰 1억 달러가 바로 지급됐고, 나머지 1억 달러는 차후에 단계적으로 받게 됐어요. 환율이 높았으니까 그 당시에 한 2700억 원 정도 됐어요. 국정감사, 국회활동을 통해서 외국의 부당한 행위를 지적하고 나아가 돈까지 받아왔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낍니다.

▲ 콘스탄티누스 11세를 보고 진정으로 필요한 리더십이 뭔지 깨달았다고 하는 김 전 의장. ⓒ SBSCNBC

지금 필요한 것은 ‘돌격의 리더십’보다 ‘눈물의 리더십’

김: ‘인생의 지혜를 나누는 강의’는 <술탄과 황제>를 통해 본 리더십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여기서 술탄은 오스만 튀르크의 메흐메트 2세입니다. 이 사람은 12살에 왕이 되어서 14세에 폐위됐다가 19세에 복위해서 21세에 드디어 비잔틴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을 멸망시킵니다. 천년 이상 수백 번의 외침에도 꿋꿋이 버텨온 콘스탄티노플을 21세 청년이 결정적으로 함락시킨 것이죠. 그 승리가 그냥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사람은 배를 끌고 산을 넘어가는 역발상을 보여줬습니다. 그 당시 최대 과학기술은 무기인데, 성벽이 워낙 두꺼우니까 그것을 파괴하기 위해 엄청난 대포를 제작하거나 땅굴을 파는 작업이라든지, 인간의 상상력과 과학기술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도전합니다. 또 언제나 솔선수범하고 엄중한 신상필벌을 하는 인물이에요. 이것은 전형적인 리더십의 표본입니다. 천재적인 노력으로 오스만 튀르크의 이념을 확고히 시켰습니다.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해서 세계 최강국을 만드는 것이 인류의 평화와 오스만 튀르크의 안정을 가지고 온다고 말할 만큼 역사관이 뚜렷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오스만 튀르크를 당시 최강의 나라로 만들었고 오스만 튀르크 630년 동안 유일무이한 ‘정복자’라는 칭호를 받아 아직도 터키 사람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꼽힙니다. 반면에 패자, 콘스탄티누스 11세는 1123년 동안 지속되었던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비잔틴제국의의 마지막 황제죠. 이 사람은 메흐메트 2세의 끈질긴 공격 앞에서 무력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식량도 고갈되고 모든 것이 결핍된 상태에서 신하들이 황제에게 항복을 권합니다. 오스만 튀르크는 이슬람이기 때문에 항복을 하면 목숨만은 살려줍니다. 그러나 저항하면 다 죽이기 때문에 항복하자고 하는데, 황제는 이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기야 소피아 성당에서 모든 신하와 장병들을 모아놓고 최후의 연설을 합니다. ‘황제로서 나 때문에 불편했던 것이 있다면 이 자리에서 용서를 구하노라’ 하고 황제는 성벽으로 혼자 나갑니다. 황제의 눈물은 하기야 소피아의 대리석 바닥에 떨어집니다.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요. 그렇게 항복하자고 했던 신하들이 뒤에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죽자! 조국과 신앙을 위해서!” 그렇게 황제 뒤를 따라 성벽으로 가서 장렬히 최후를 맞이합니다.

저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보고, ‘이것이 무엇인가. 목숨은 하나인데 왜 죽으러 가는가?’ 란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곤 ‘눈물의 리더십’을 떠올렸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오늘 이 삭막하고 갑갑한 상황에 적용되는 리더십이 아닌가합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남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그런 리더십이 필요하지 않은가. 종교적으로 표현하자면 긍휼하는 마음, 즉 그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서 함께 아파하는 마음이 오늘 우리의 지도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자비가 되겠죠.

여기에 덧붙여서 오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뛰어난 리더십이라고 하면 김영삼과 김대중 대통령이 아닐까 싶어서 이분들에 대해 잠깐 얘기를 하겠습니다. 1987년도에 대통령 선거가 있었어요. 처음 대통령직선제가 되고 나서 첫 대통령 선거에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모두가 각각 당을 달리해서 나왔습니다. 야권에서는 합쳐라 했는데도 못 했죠. 결국은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됐고 이등은 YS(김영삼), 삼등은 DJ(김대중)가 되었습니다. 다들 합치지 않아서 선거에 패한 것은 김대중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4개월 후에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었어요. 여전히 3당이 각축을 벌이는 이때, YS는 지역구에 출마한 뒤 전국선거를 주도했어요. DJ는 비례대표 끝번호로 받고 전국 선거를 주도하게 되었죠. 지금 20대 4.13 선거도 3당 체제를 만들었지만 그때가 더 치열했어요. 편하게 지역구를 선택한 YS 민주당은 제 3당이 되고, 전국구 끝번을 받은 DJ는 자신의 번호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당선시켜 제 2당이 되었습니다. 다 훌륭한 분이지만, 지도자로서 자기를 버리니 자기도 살고 조직과 나라도 살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번 4.13 총선도, 누구라고 얘기 안하겠습니다만 알겁니다. 그 지도부가 자리를 던지는 자세로 임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난 겁니다. 그것이 동서고금을 떠나서 리더십의 요체가 아니겠는가 합니다.

제: 여러 가지 리더십이 있을 수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우리가 내년에 대선을 치릅니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어떤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보시는지, 우리는 내년 대선에서 어떤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 먼저 지도자는 수입할 수 없다는 것, 아무리 훌륭한 자질이 있어도 지도자는 국민에게 인지도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리더십 실종의 시대가 아닌가 할 정도로 뚜렷한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 4.13총선에서 (리더십의) 좋은 점보다는 좋지 않은 점이 너무 많이 부각됐습니다. 긍정적으로 봐야할 것은 이제 YS와 DJ시대와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십의 시대는 끝났고, 민주적 리더십의 시대가 왔다는 겁니다. 민주주의적인 방식에 의한 리더십을 갖춰야 합니다. 우리가 올해 국회의원 선거를 치렀고 내년에 바로 대통령 선거를 치룹니다. 대통령임기는 레임덕으로 가고 있고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6개월 안에 또 전국 지방자치단체선거가 있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나라가 엉망진창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선된 국회의원, 그리고 대권을 지향하는 정치인들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국민의 분열시키고 갈등하게해서 국회의원까지 될 수는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라가 크게 거덜 날 수도 있습니다. 국제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나라가 매우 어려운 시기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 달라, 자기희생과 헌신하는 리더십을 보여 달라는 주문을 하고 싶습니다.

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리더십은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통합하는 리더십이고 (지도자의) 헌신이 필요하다는 말이네요.

20대 국회, 개혁의 핵심은 정당의 힘을 빼는 것

제: 국회선진화법이 도입된 이후 가동된 19대 국회는 처리되는 법안이 없다고 해서 식물국회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5월 말에 19대 국회의 임기가 끝나는데, 역대 최다인 1만 여 건의 법안이 자동 폐기될 위기에 처했다고 합니다. 19대 국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지적한다면 뭘 지적할 수 있을까요.

김: 19대 국회는 한 마디로 식물국회, 일하지 않는 국회라고 규정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왜 이렇게 됐냐면 결국 당리당략이 너무 강조되고 그것에 이끌려왔기 때문입니다. 정당이라는 기득권에 매몰되고 함몰되어버린 결과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20대 국회는 19대 국회의 오명을 떨쳐내라는 국민의 엄정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당리당략에 치우치고, 일하지 않고, 소신을 발휘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국회는 이제 사라져야 합니다.

제: 국회의원들이 소신에 따른 정치를 못하고, 정당 간 타협도 쉽게 이뤄지지 않는 이유가 우리의 경직된 정당구조에 있다는 지적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당 구조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김: 제가 오늘 대담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핵심적, 본질적인 문제가 바로 정당문제입니다. 대한민국의 정당에 대해서 이제는 회초리를 들 때가 되었습니다. 국민과 여론은 국회에 대해서만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권한을 행사하면서도 책임을 회피해온 것이 정당입니다. 이번 4.13총선에서도 결국 정당 내 공천권 싸움 때문에 국민들이 눈살을 찌푸리고 심판을 내린 것 아니겠습니까. 정당의 기득권을 이번에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정당 민주주의다, 정당 중심의 개혁을 하겠다고 하는데 전부 틀린 말입니다. 정당의 힘을 어떻게 빼느냐가 개혁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헌법 기관인 국회와 국회의원이 정당의 눈치를 보느라 소신 있게 일하지 못합니다. 정당이 정한 당론을 쫒지 않는 국회의원은 살아남을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놨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은 국회의원이 집니다. 정당은 아무런 책임도 안집니다. 이번 4.13총선에서 엉망진창의 공천을 한 새누리당을 보세요. 180석 예상했지만 120석 얻었습니다. 그런데 정당에서 누가 패배에 대한 책임을 졌습니까. 앞으로 이런 기득권과 진영논리에 젖어있는 엉터리 정당체제를 혁파해야합니다. 20대 국회가 살고 국회의원이 제 역할을 하느냐는 정당의 힘을 얼마나 빼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제: 정당이 너무 강력한 힘을 발휘해서 국회의원들이 개별적으로 소신정치를 하지 못하고, 당론만 쫒다보니 정당 간 타협도 잘 안 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정당의 힘은 어떻게 하면 뺄 수 있을까요?

김: 당론을 없애자는 것은 아닙니다. 정당에서 사사건건 당론을 정하는 게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정당이 “이 법에 찬성해!”라고 하면 소속 국회의원은 무조건 찬성합니다. “이 법에 반대해!”라고 하면 무조건 반대하고요. 찬성하라고 하는데 찬성하지 않은 국회의원은 살아남을 수가 없습니다. 공천배제 뿐만 아니라 모든 당직을 박탈하고 ‘왕따’시켜 버리니까요. 개별 사안에 대한 당론은 당에서 정하지 말고 의원들에게 맡겨야 합니다. 실제로 당론은 지도부와 실세 몇몇이 모여 커튼 뒤에서 숙덕숙덕하며 정합니다. 대단히 비민주적인 당론 결정 과정도 문제지만, 왜 사사건건 당론을 정하느냐는 말입니다. 당론이라는 것은요, ‘민주주의를 어떻게 할 것이냐’, ‘시장경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큰 원칙을 정할 때 필요합니다. 구체적인 사안은 상임위원회와 국회에 맡겨서 국회의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게 하고, 정당 간 양보와 타협점을 찾아내는 것이 국회의 모습이죠. 정당에서 시키는 대로 로봇과 같이 행동하는 국회의원은 정치공부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을 데려다놔도 할 수 있습니다.

제: 구체적으로 제안한다면 지금 지나치게 당 대표나 무슨 최고위원회의나 사무총장이나...

김: 잠깐만요, 당대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요,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은 200년 이상 된 정당입니다. 그 당에 당 대표 있습니까? 최고위원 있습니까? 사무총장과 대변인은 있습니까?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이 당명도 바꾸지 않고 200년 이상 유지되어 온 것은 그런 사람들이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정당은 수시로 당의 간판을 때렸다가 부쉈다가 고쳤다가 하지만요. 당 대표, 최고위원, 사무총장 등 기라성 사람들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말로만 정치합니다. 그들이 하는 일은 국회의원들 규율하는 것입니다. 규율부장만 존재해요. 우리나라 정당은 권한은 잔뜩 가지면서 책임은 지지 않습니다. 기형적으로 발달한 정당체제죠. 거기다 국고보조금을 주고 법률에 의해서 보호까지 받으니까 (정당들이) 무책임의 무한대를 가고 있습니다. 이런 정당체제를 20대 국회에서 혁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제가 거듭 강조하는 이유입니다.

제: 정당의 힘은 빼고 일하는 국회를 위해 상임위 중심으로 가라는 것이군요.

국회선진화법의 목적대로 ‘대화와 타협’을 살려야

제: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의안 상정도 잘 안되고 힘들다는 비판이 거세고, 헌법재판소가 위헌 여부도 심사하고 있는데요. 만약 바꿔야 한다면 국회선진화법을 어떻게 개정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김: 저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해서 새누리당의 지도부와 처음부터 의견을 달리했습니다. 선진화법 때문에 다수 여당이 아무 일을 못한다고 해서 선진화법이 만고의 역적처럼 되어버렸는데요, 저는 (국회선진화법이) 민주주의와 의회주의가 발전해가는 과정에서 도입된 것으로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장기적인 발전방향으로 가는 길이라고 봅니다. 다만 세부적인 몇 가지 조항은 다듬어야죠. (쟁점 법안을) 마냥 묵혀둘 수는 없으니까요. 일정 기간이 지나면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는 숨통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이것도 국회의원 60%이상 찬성이 필요합니다. 300명 중에 180명으로부터 지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운영위원회 같은 곳에서 과반수로 본회의에 법안을 상정할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마련해야 합니다. 지금은 국회의원의 40%만 반대하면 어떤 법안도 통과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것이 선진화법의 문제죠.

▲ 국회선진화법의 본래 취지인 대화와 타협을 되살려야 한다고 말하는 김 전 의장. ⓒ SBSCNBC

김: 국회선진화법이 왜 도입이 됐느냐면, 분명한 취지가 있습니다. 국회가 대화와 토론이 장이 되라는 의미로 선진화법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의원들이) 대화와 타협을 안 해요. 그러다보니까 당론에 얽매여서 당의 눈치를 보게 됩니다. 완전히 당 대 당의 대결 구도가 형성되고 있죠. 전혀 본래의 취지가 작동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회선진화법은 몇 가지 세부적인 규정만 고치고요. (국회의원이) 헌법기관으로서 자율적인 판단과 책임 하에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제: 원래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이 대화하고 타협하고 설득하라는 건데, 그걸 열심히 하라는 거군요. 지금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에게 국민들이 갖고 있는 불만 중 하나는 일은 별로 잘하지 않는 것 같은데 특권은 많다는 것입니다. 연봉이 1억 원이 넘고, 여러 명의 유급 보좌관을 쓰고 있고, 해외 출장 시 항공기 일등석을 탄다든지 하는 것이죠. 선진국에 비하면 너무 특권이 많아 문제가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혹시 경험해보신 입장에서, ‘특권 내려놓기’ 차원에서 현재 국회의원들의 처우를 조정할 여지가 있다고 보시는지요.

김: 이 부분은 크게 2가지로 나눠서 봐야 하는데요. 첫 번째로 의원의 세비가 많은 나라 형태와 적은 나라 형태가 있습니다. 유럽형은 의원의 수가 많고, 명예직이라 불릴 정도로 세비가 적습니다. 교통비 수준입니다. 반면 미국형은 의원의 수가 적고 세비가 많은 편입니다. 우리나라는 중간적인 입장이기 때문에 국민들에게 비판의 소리도 듣는 것 같은데요. 저는 국회의원들의 세비가 많으냐 적으냐, 국회의원 수가 많으냐 적으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면책특권 하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선동하는 것, 과대포장하거나 축소하거나, 왜곡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면책특권의 그늘에 숨지 말자는 거죠.

두 번째는 국회의원이야말로 국민의 대변자이고 국민에게 선택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겸손과 성실이라는 개인적인 인격은 분명히 갖춰야 하고요. 셋째, 부정한 행위, 이권과 관계되는 행위와는 발을 끊어라, 즉 유혹을 끊을 수 있는 국회의원이 되면 신뢰를 받게 되고 신뢰하다보면 존경까지 받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준비된 자만이 기회의 문을 열 수 있다

제: 인생 얘기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의장님은 젊은 시절 기자부터 시작해서 공무원도 하시고 정치인도 하시고 소설가로도 변신을 하셨는데요.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모두 성공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혹시 의장님의 생애에도 위기가 있으셨나요? 인생의 최대 위기가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김: 고등학교 3학년 때 코의 염증을 제거하다가 수술이 잘못되어서 동맥이 터졌습니다. 저는 그때 사람 얼굴에 구멍이 7개 있다는 걸 알았어요. 눈, 코, 입, 귀 등 7개의 구멍에서 동시에 피를 쏟아냈으니까요. 당시 몸무게가 20kg나 빠졌습니다. 죽음이란 이런 거구나 하는 체험을 했죠. 넉 달 동안 학교를 안 갔습니다만 휴학은 하지 않았습니다. 끝까지 학교를 졸업했어요. 그 때문에 재수를 했지만요. 그때 죽음이라는 것을 느끼면서 삶을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의 인생은 덤으로 사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죠. 항상 넘치지 않고, 상대방을 존경하려는 노력도 하고 있고요.

제: 마지막으로 요즘 젊은 세대가 사상 최악의 취업난을 겪으면서 희망이 없는 세대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젊은 세대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 취업난과 같은 사회적 문제에 짓눌려 있는 대학생들이 안타깝다는 김 전 의장. ⓒ SBSCNBC

김: 작년까지 매주 대학에 가고, 특강도 다니면서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저는 제 강연 말미에 꼭 질문을 받을 것이니 미리 준비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 대학생들이 질문을 안 해요. 질문이 없는 대학, 이것이 한국의 일반적인 풍조입니다. 몇 군데 예외는 있겠지만요. 그러나 해외 선진 대학은 다릅니다. 수업 자체가 질문으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납니다. 질문이 없는 대학은 대학과 학생의 경쟁력을 떨어트립니다.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모든 생각은 질문을 통해서 시작되는데 지금의 대학은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취업난과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죠. 대학생들을 보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기백, 희망, 용기를 가지라는 말을 해주고 싶지만 강조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준비하라. 대학은 준비하는 곳이다. 그리고 준비된 자에게만 기회가 오는 법이다”라고요. 기회의 문에서 언제 노크소리가 들릴지 알 수 없습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은 노크를 해도 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반면, 준비가 된 사람은 노크 소리를 듣고 기회를 포착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가면 갈수록 각박해지고 어려워질 것입니다. 취업난도 심각해지고요. 21세기 제4차 산업혁명 시대가 오고 있거든요. 이제는 대규모 고용을 하는 곳도 점점 없어지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합니다. 대신 갈 곳은 너무 많습니다. 지금은 1인 기업 시대입니다. 언론도 1인 매체 시대고, 모든 것을 1인이 할 수 있습니다. 친구와 잘 사귀어 가면서 하면 새로운 도전의 요소는 무한합니다. 그러니 결코 실망하지 말고, 준비해서 도전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제정임의 마침표: 역사의 전장을 누비는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나라의 미래를 근심하는 한국 정치사의 산 증인 김형오.


경제방송 SBSCNBC가 지난 3월 24일부터 제정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가 진행하는 명사 토크 프로그램 ‘제정임의 문답쇼, 힘’을 신설했다. 매주 목요일 오후 9시부터 50분간 방영되는 이 프로그램은 사회 각계의 비중 있는 인사를 초청해 정치 경제 등의 현안과 삶의 지혜 등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풀어간다. <단비뉴스>는 매주 금요일자에 방송 내용을 전재한다. (편집자)  

* 전체 영상은 아래 링크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http://sbscnbc.sbs.co.kr/read.jsp?pmArticleId=10000800313

편집 : 유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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