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나’

“1분 동안 자기소개 해보세요.” 

▲ 배지열 기자

면접을 준비하면서 수없이 준비한 답변이지만 늘 어색하게 느껴지던 바로 그 질문. 오늘도 마주하게 된 그 시간. 면접장의 엄숙한 분위기, 뜨겁게 내리쬐는 조명, 그 아래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내 모습이 심사위원의 안경에 비쳐 보인다. 그렇게 또 탈락을 직감한 열한 번째 면접이 끝났다. 면접장을 나서자 긴장이 풀리며 무릎이 절로 꺾인다. 스스로에게 되물어본다. ‘넌 정말 스스로를 잘 소개할 만큼 널 알고 있니?’

누군가에게 소개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사람을 잘 알아야 한다. 얼마나 다양하고 자세한 정보를 가지느냐에 성패가 달려있다. 대개 외모나 본인이 겪은 그 사람에 대한 경험을 소재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소개하는 대상이 나 자신이라면 얘기는 더 복잡해진다. 다른 사람은 모르는 온전한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을 드러내 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객관적으로 자기 자신을 평가하고 과거 기억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스스로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 그 기준은 존재하지 않고, 때에 따라 모습을 바꿔 스스로 혼란에 빠진다.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지만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는 방법은 말하지 않았다. 그는 인간이 무지(無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남겼지만, 자기소개를 해야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에 대한 무지 역시 절감한다.

▲ 나 자신을 알고 소개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가졌는가. ⓒ flickr

내 자신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자문해본 기억은 많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린 답은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아직까지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다거나, 현재 알고 있는 것이 부족해 답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나 자신에게 질문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우스운 광경이다. 내가 던진 질문에 내가 고민해서 답하는 모습을 사람들은 정상적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꼭 필요한 과정인 것도 사실이다. 단순히 자기소개를 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에게 닥쳐올 미래와 향후 계획을 세우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알기 위한 노력은 교육으로부터 선행돼야 한다. 매년 실시되는 프랑스 대입자격시험인 바칼로레아는 지난해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결과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프랑스 학생들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학원에 다니고 선행학습으로 이 문제의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토론하고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방식으로 이뤄지는 수업에서 자연스레 생각의 범위는 확장된다. 바칼로레아 문제는 학생들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 인사들이 자신만의 답을 제시하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확대재생산된다.

진로를 탐색하고 각종 교외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도입한 자유학기제는 올해부터 모든 중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입시와 학교라는 범위 밖에서 더 많은 생각과 경험을 하라고 만든 이 제도는 또 다른 사교육으로 변질되고 있다. 자유학기 대비 특강 등으로 선행학습을 유도하는 학원들을 정부가 단속하고 있지만, 현행 교육제도상 사교육의 쳇바퀴는 그대로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에게는 5개 보기 중 답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내 생각을 내보이기 위해 성찰하고 상념에 한동안 빠져 있을 시간도 필요하다.

자기소개 시간이 닥치면 나는 또 당황할 것 같다, 여전히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모르니까. 후회할만한 일, 잘못한 기억들이 나를 자기부정의 늪으로 빠뜨린다. 나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는 내 속에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자아분열의 상태에 이르게 만든다. 내가 겪고 있는 자기소개의 어려움은 진즉 나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지 못한 내 탓인가? 아니면 그런 질문을 던질 여유를 주지 않은 현실 탓인가? 그 답을 찾을 새도 없이 난 또 준비한 자기소개 답변을 인형 속에 녹음된 목소리처럼 내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신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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