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민족주의’

▲ 박고은 기자

지난해 말 벌어진 쯔위의 ‘청천백일기 해프닝’은 중국 민족주의의 민낯을 보여준다. 양안관계에 비판적인 민진당이 집권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쯔위가 흔든 청천백일기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사로잡힌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를 세게 건드렸다. 대만은 중국의 자존심이다. 과거 청일전쟁 때 중국은 일본에 대패해 대만을 빼앗기지만, 2차대전에서 일본과 싸워 승리를 거둔다. 되찾은 대만은 ‘강대국 중국’의 위상을 회복했다는 증거이자, 중국의 자존심이 걸린 사활적 요충지이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중미관계를 담당했던 수전 셔크는 저서 <판도라의 상자 중국>에서 “중국이 시장화 노선에 들어선 이후 공산주의가 국가 이념으로 사실상 힘을 잃었고, 그를 대체할 만한 이념으로 공산당이 민족주의를 적극 내세웠다”고 설명한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쯔위 사태’는 중국 집권층의 계획이 착실히 진행되고 있으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은 민족주의에서 자유로운가? 우리가 배운 국사 교과서만 봐도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족을 평소 미개인으로밖에 보지 않던 태조 왕건은 942년에 거란족 사신이 낙타 50필을 선물로 바치자, 사신을 유배시키고 낙타를 개성 만부교 밑에 매달아 굶어죽게 했다. 교과서는 ‘만부교 사건’을 간단히 서술한다. ‘태조의 자주 북방정책 의지의 표현이었다’라는 평가다. 이런 평가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우리’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 한, ‘보편적 도덕’ 따위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민족주의가 횡행하는 사회에서 보편적 도덕이나 인간의 존엄성은 전체를 위해 무시해도 되는 가치로 전락한다.

한국은 선거로 지도자를 선출하기에 심각한 선거 부정만 저지르지 않으면 중국 공산당처럼 정당성 위기에 노출될 일은 없다. 그런데 왜 민족주의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을까? 과거부터 우리 지배층이 국가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의식을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군대, 세계 최고 강도의 노동을 강요하는 기업,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하는 관료 시스템 등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한국의 지배층은 전체를 위해 개인의 희생이 당연시되는 문화를 바탕으로 국민을 손쉽게 다루고 착취해왔다.

▲ 한국의 지배층은 애국심을 이용해 국민을 손쉽게 다루고 착취해왔다. ⓒ Pixabay

민족의식 강조의 연장선에서 보수세력은 애국심을 강조한다. 이들은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이 국가 운영에 도움이 된다고 본다. 과거 군부정권은 국민에게 국민교육헌장을 통째로 외우게 했다. 얼마 전 국무회의를 통과한 국가공무원법 개정안에서도 애국심은 강조됐다. 애초에 담겨있던 민주성, 도덕성, 공익성, 다양성 등 민주사회에서 필수적으로 추구해야 할 항목들은 모조리 사라졌다. 나라를 위해 충성할 사람, 윗사람에게 복종할 사람을 찾겠다는 뜻이다. 한국이라는 국가는 여전히 ‘하나가 된 국민’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집권층에게 ‘애국심 마케팅’은 효자다. 어떤 위기도 타개할 수 있는 묘안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 당시 정부·여당은 국가 경제 위기를 의제로 들고 나왔다. 세월호 논쟁이 지속되는 바람에 국가 전체가 흔들린다는 주장이었다. 국가 전체를 위해 이제는 그만 잊고 일상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희한하게도 그 주장은 국민에게 통했다. 애국이라는 가치 아래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은 더 이상 ‘우리’가 아니라 철저한 ‘개인’이 됐다. ‘우리’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개인’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는 인식이 어처구니 없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국가의 외교적 이해관계를 위해 또 한 번 울어야 했던 위안부 할머니들, 나라 경제를 위해 통과시켜야겠다는 일반 해고법 때문에 불안에 떠는 노동자들. 이들은 모두 ‘우리’의 희생양이다.

에릭 홉스봄은 <만들어진 전통>에서 ‘민족 또는 국가의 정체성에 대한 고정된 사고가 대부분 허상 덩어리이며 19세기의 산물’이라고 썼다. 한국의 현실에서는 여전히 이 허상 덩어리가 지배층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누군가 20세기를 광기의 시대라 했지만 한국에서는 21세기도 온전한 시대는 못 될 것 같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강민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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