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청년’

▲ 박고은 기자

며칠 전 친구네 가족이 한국을 떠났다. 떠나기 전 배운 기술은 중국요리였다. 베를린에 있는 한인 타운에서 중국음식점을 차린단다. 아버지 퇴직금을 탈탈 털어 취득한 영주권이라고 했다. 새 출발을 앞둔 친구의 표정은 설렘 대신 미안함으로 가득했다. 그들 가족이 독일행을 택한 건 내 친구 때문이었다. 그는 4년제 대학을 나왔지만 2년 넘게 백수 생활을 했다. 그의 동생도 상황은 비슷했다.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그의 아버지는 ‘희망퇴직’을 하던 날 온 가족이 한국을 떠나기로 결단을 내렸다. 평생 앞치마 한번 둘러본 적 없던 친구와 아버지는 매일 같이 간판 꺼진 중국집에서 자장면 만드는 법을 전수받았다. 떠나기 전 친구는 말했다. 그래도 떠날 수 있는 자기는 운이 좋은 거라고. 그는 오히려 한국에 남은 나를 걱정했다. 조선시대에 삼정(三政)이 문란할 때 견디다 못해 야반도주하던 사람들이 남아있는 사람들을 걱정하던 형국이다.

최근 2030세대의 큰 공감을 얻으며 베스트셀러에 오른 소설이 있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다. 이 소설은 혈혈단신 호주로 이민 간 여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다룬다. ‘헬조선’에서 살아남으려 아등바등하다 ‘탈조선’을 결심한 청년의 이야기는 내 친구나 소설 속 주인공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2013년부터 지난 7월까지 한국 국적포기자 수는 5만2093명에 이른다.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않으면서 경제활동도 안 하는 니트족도 대졸 기준 2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세 번째로 높다. 청년들이 나라를 등지고 떠나는 것, 혹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국가적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이는 곧 소비할 사람도, 기성세대가 가진 집을 살 사람도, 국가를 지탱하는 세금을 낼 사람도 없어짐을 의미한다.

▲ '헬조선'에서 살아남기 힘들어 '탈조선'하려는 한국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 ⓒ Pixabay

그렇다면 왜 정부와 정치권은 청년세대가 ‘탈조선’을 선택하기까지 아무런 대비도 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다수결 원리에 따른 ‘수의 정치’를 악용한 탓이다. 정치인들은 점점 다수가 되어가는 기성세대에게 유리한 복지정책을 내세워왔다. 대선이 있었던 2012년 기준, 기성세대로 묶을 수 있는 50대 이상 유권자가 40%나 됐다.

이에 따라 박근혜 후보는 60세 이상 모든 노인들에게 매달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노령연금을 핵심공약으로 내세웠다. 세수 확보가 긴급한 상황에서도 정부는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 증여세 등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은 오히려 낮췄다. 불로소득에 대한 세금을 낼 사람들은 대부분 기성세대다.

반면 청년세대는 국가의 책무이기도 한 주거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말 기준 SH공사가 보유한 공공임대주택 입주자 중 20대는 1.7%, 30대는 10.1%에 불과했다. 40대 이상이 14만여명으로 88%를 차지했다. 선발 구조 자체가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청년세대를 위한 정책은 이처럼 기성세대를 위한 정책에 항상 뒷전으로 떠밀렸다.

청년을 버린 나라는 공멸의 길을 걷는다. 이탈리아는 청년실업률이 40%에 육박한다. 경제 성장의 주축이 되는 청년층의 붕괴로 이탈리아의 현재와 미래는 암울하다. 부채율은 2015년 GDP 대비 132%로 그리스 다음으로 높다. 스페인 상황은 더 심각하다. 스페인의 청년실업률은 절반을 넘긴 57%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두 나라의 공통점은 국가 부채율이 높아지는 상황에서도 노년층 중심의 복지정책을 거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청년 일자리를 위한 투자는 거의 없었다.

반면 스웨덴은 청년층에 과감히 투자해 국가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금융위기에 빠진 1990년대 초 스웨덴은 심각한 경제위기에서도 청년세대를 위한 실업대책과 복지제도에 투자를 줄이지 않았다. 또한 육아휴직이나 양육수당 등 출산율을 높이기 위한 정책예산을 늘리는 등 미래세대를 위한 재정지출을 아끼지 않았다. 빠르게 재취업에 성공한 근로자들로 근로생산성은 높아졌고 내수시장은 안정됐다. 스웨덴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3%까지 떨어졌지만 이듬해에는 5.3%를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빨리 위기를 극복한 나라로 꼽힌다.

한국이 선택한 길은 전자에 가깝다. 오히려 청년들을 위해 투자하기로 한 서울시와 성남시는 정부·여당으로부터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맹공격을 받고 있다. 청년들에게 불리한 경제체제와 복지체계가 유지된다면 한국도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다. 기성세대에만 편향된 복지는 지속 불가능할 뿐 아니라 경제의 선순환도 가져오지 못한다.

‘수의 정치’의 악습을 끊지 않는 한 미래 세대에 막대한 빚을 지우게 될 것은 자명하다. 그때 청년 세대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본 청년들은 ‘희망이 없기에 행복하다’며 아무것도 탐내지 않는 ‘사토리세대’가 됐고, 20만명의 그리스 청년들은 제 나라를 떠났다. 청년이 살아야 우리의 미래도, 기성세대의 노후도 살아난다. 지금부터라도 청년세대가 우리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기울어진 복지체계를 바로 잡고, 청년세대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7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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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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