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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과 한국의 청춘
[상상사전] ‘청년’
2016년 02월 13일 (토) 17:33:48 오소영 기자 pangkykr@naver.com
   
▲ 오소영 기자

제롬 셀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 본 건 대학 시절이었다. 그때 주인공 홀든 콜필드는 나로선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었다. 홀든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모두가 부러워하는 명문 사립고에서 다닌다. 하지만 그는 학교생활에 흥미가 없다. 낙제를 받아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에 빠져도 해결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스스로 낙제를 받겠다고 자처한다. 결국 성적미달로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뉴욕 밤거리를 배회한다. 나이트를 전전하며 매춘부를 숙소에 들인다. 열여섯 홀든의 방황을 보며 나는 ‘배부른 소리’라며 혀를 찼다. 일탈 없이 학창시절을 보낸 내게 그의 방황은 의아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는 그저 어설픈 어른 흉내나 내는 사춘기 소년으로 비쳐졌다.

내 사춘기는 남들보다 늦게 찾아왔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 나름 이름있는 대학에 진학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남들에게 뒤처지고 싶지 않아 취업 준비를 하면서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직업이 이게 맞느냐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아직 미래에 대한 확신이 없는 내게 취직을 바라는 주위의 시선들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혼란스러운 마음을 다잡고 책상에 앉아도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서관에 간다며 집을 나와 거리를 배회하는 날도 많았다. 답답한 마음에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은 내게 한결같이 ‘청춘을 낭비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지금은 행복 타령 할 때가 아니니 마음 다잡고 무엇이든 하라고.

한 선배만은 예외였다. 선배는 ‘방황하라’고 했다. 먼지처럼 떠돌다 언젠가 정착할 테니 지금은 떠돌아도 된다고 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서일까? 난 금세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가엾은 홀든.’ 그 무렵 문득 홀든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가 방황한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았다.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홀든은 행복하지 않아 학교를 떠났던 것이다. 하지만 나와 달리 홀든 주위에는 그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부모조차 그를 정신병원에 가둔다. 누군가 방황하는 그를 이해하고 기다려줬다면 홀든의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은 이렇게 말한다. “애들은 어디를 달리고 있는지 보지도 않고 뛰잖니? 그런 때에 나는 어디선가 재빨리 달려나와서 그애를 잡아주는 거야. 하루종일 그 일만 하는 거라구. 호밀밭에서 붙잡아주는 역할, 즉, 호밀밭의 파수꾼이지.” ⓒ flickr

우리 주위에는 수많은 홀든이 있다. 꿈이 없어 방황하는 청년부터 극단적으로 행복을 찾아 한국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방황하는 청년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청년들은 마치 처음부터 특정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인생을 철저히 계획하고 살아야 한다. 그렇게 스펙 쌓기에 미치지 않으면 청년은 낙오자가 된다. 취직을 해서도 끊임없이 일하고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프로이트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로 사랑과 일 그리고 ‘성찰’을 들었다. 세상에는 딴생각을 해야만 보이는 풍경이 있다. 쓸모없어 보이는 시간이 차곡차곡 모여 언젠가 쓸모를 발휘한다. 그때까지 마음껏 방황하는 청년을 기다려주는 사회가 필요하다. 소설에서 홀든은 넓은 호밀밭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생각한다. 아득한 절벽을 뒤로 하고 방향 없이 달리는 아이들. 그리고 그곳에서 묵묵히 서 있는 홀든. 방황은 청춘의 특권이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제7회 ‘봉샘의 피투성이 백일장’에서 우수작으로 뽑힌 이 글을 쓴 이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1학년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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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유수빈 기자

 

[오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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