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역사’

2012년 학부 시절에 철학수업 과제를 냈다가 B학점을 맞았다. ‘역사반성 않는 일본, 군국주의 부활한다’는 제목의 보고서였다. 당시 일본에서는 극우의 대표격인 아베 신조가 버젓이 총리로 선출됐고, 극우정치가들이 국내외 거센 반대에 아랑곳하지 않고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했다. 본문에는 ‘야스쿠니신사가 대일본제국이라는 거세된 욕망을 보존하는 무의식적 장소’이며, ‘야스쿠니 참배가 계속되는 한 군국주의는 언제든 부활한다‘는 우려를 담았다. 교수는 “손꼽는 선진민주국가인 일본을 무시한 억측”이라며 B학점을 줬다. 하지만 일본은 패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침략의 역사를 반성하기는커녕 재무장의 길을 걸으려 한다.
세계인의 반발에도 우향우를 고집하는 아베에게 정의란 무엇일까? 아베는 일제강점기가 한국의 근대화를 앞당겼고, 위안부는 성노동자가 동의한 성매매라고 변명한다.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명백한 잘못마저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는 역사왜곡의 전형이다. 역사의 잣대로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샌델도 정의롭지 못하다. 샌델은 아프간에 파견된 미 특수부대원들이 마주친 양치기들을 죽여도 정당한지 묻는다. 살려 보내면 탈레반에게 발각될 것 같고, 약자를 죽이는 건 윤리에 어긋난다는 식이다. 하지만 샌델은 미국이 석유를 확보하기 위해 중동을 침공한 역사는 정당한지 묻지 않는다.

역사는 정의로움을 평가할 때 가장 편리한 잣대다. 복잡한 법과 철학을 동원하지 않아도 역사 속 한 장면만 살펴보면 누구나 ‘정의란 이것’이라고 고개를 끄덕인다. 예컨대 ‘탈세한 공직자는 인사청문회를 통과해도 되는가’라는 국회 단골 문제를 풀어보자. 조선시대에는 탈세를 극악범죄로 취급했다. 공직자가 탈세나 땅투기를 하다 적발되면 영원히 관직에서 추방하고 곤장 100대를 때렸다.
세계사에서도 탈세는 죄악이다. 미국은 납세 의무를 저버린 공직자를 결코 용서하지 않는다. 액수와 상관없이 모든 게 끝난다. 닉슨 대통령의 사임은 ‘워터게이트’가 요인으로 알려졌지만, 거액의 탈세혐의가 더 결정적이었다. 이쯤 되면 ‘탈세와 땅투기는 기본’이라는 여의도의 인사청문회는 있을 수 없다고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영국 시인 조지 허버트는 “맹렬함은 진실을 무례로 만든다”고 말했다. ‘강준만 투’로 말하자면 ‘맞는 말을 하더라도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여야 모두 탄탄한 논리 없이 비방전만 반복하는 한국의 복지논쟁이 그렇다. 야당은 무작정 ‘애들 밥그릇 뺏지 말라’고 면박만 주고, 여당은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이들에게 ‘그리스처럼 복지병 날 소리’라거나 ‘종북’이라고 몰아세운다. 바라보는 국민들은 시비를 판단할 새도 없이 정치에 대한 환멸감에 젖는다. 왜 정치인들은 복지의 역사를 공부하지 않는가?
역사는 복지가 ‘다같이 잘사는 길’임을 보여준다. 근대복지국가의 시초라는 독일과 북유럽은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 수준일 때 복지를 시작했다. 자갈밭을 일구고 산업을 키우면서 성장의 과실을 자본가, 농민, 노동자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려는 시도였다. 이들 나라는 공정한 분배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져오고 정의롭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는 ‘국민의 집’, ‘개인의 성공에 상관없이 모두가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삶’이라는 슬로건이 말해 주듯, 국민소득 4만달러에 육박하는 튼튼한 보편복지의 나라가 됐다.
‘그리스 복지병’도 거짓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그리스의 재정규모 대비 복지지출은 16%대로 OECD평균인 21%보다 낮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유럽 경제불황의 원인이 “복지가 아니라 유로화”임을 증명했다. 유로라는 단일경제권으로 묶이면서 그리스 같은 약소국이 독일•프랑스 등 산업경쟁력이 강한 역내국가로부터 막대한 무역적자를 떠안게 됐다는 주장이다. ‘그리스 복지병’은 복지와 증세의 길을 거부하는 기득권이 만든 음모론이라고 본 것이다. 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최소한의 객관적 토대조차 공유하지 못한 토론과 정치를 그만 둘 수는 없을까? 비판을 위한 비판으로는 기득권의 교묘한 음모를 이기기 어렵다. 전진하려면 역사의 진실을 밝혀야 한다. 역사 논쟁이 한창인 요즘 역사를 의심했던 그 철학교수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교수님, 아직도 제 과제는 B학점입니까?”
|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