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청년’

▲ 이문예 기자

"조선 청년에 대한 우리 기대의 6,7할이 그대들에게 있건만, 그대들이 그것을 인식 못하는 것은 슬프다."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으로 우리 민족이 핍박받던 1936년, 독립운동가 여운형은 당시를 '비상시'로 보고 청년한테 답을 찾았다. '장래의 세계는 청년의 세계'라 부르며 청년이 배움의 주체가 돼 장차 나라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랐다. 1922년 <동아일보>도 청년을 사회의 생명이자 동력이라 일컬으며 '청년이 진취적 기상과 희생적 정신에 충실하면 사회는 장차 눈부신 광채를 발할 것'이라 했다. 난국(亂國)을 바로잡을 희망으로 청년을 전면에 등장시킨 것이다.

지금껏 청년은 시대의 상징이자 사회의 역동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했다. 때로는 어그러진 세상에서 저항의 아이콘으로 자리했다. 기성세대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 패러다임을 주도해온 것도 늘 청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은 과거와 결을 달리한다. 승자독식 체제를 온전히 받아들인 최초 세대로 불리며 무기력하고 저항력 없는 수동적 세대로 낙인 찍혔다. 우리 사회의 청년은 경제적·정서적 빈곤과 좌절에 허덕이며 ‘푸른 봄’(靑春)의 생명력을 잃어간다.

▲ 반복되는 좌절과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청년들. ⓒ flickr

청년세대로서는 조금 억울한 면도 있다. 언제나 청년들의 삶은 팍팍하고 고달팠지만 어느 시대에도 이처럼 부정적 단어로 불린 적은 없다. 기성세대는 청년세대의 파편화한 성질들을 한데 묶어 '다포세대'라 규정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다 포기한 세대'라는 의미로. 모든 문제를 청년의 일로 수렴하며 그들을 사회의 중심에 세웠다. 하지만 한 꺼풀 걷어내면 진의가 보인다. 진정 청년을 위한 고민은 없다. 진보는 개혁의 추진체로, 보수는 정치판을 흔들 조커로 청년을 활용할 뿐이다. 구체적 실천 의지를 결여한 연민과 기만이 가득하다.

더 큰 문제는 청년 스스로가 타자에 의해 결정지어진 집단정체성의 틀을 깰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거다. 우리가 어쩌다 ‘다포세대’가 됐는지, 어쩌다 기성세대의 기만에 놀아나게 됐는지를 고민하는 데서 더는 나아가지 못한다. 올해 초 한 취업준비생이 부모님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거짓말을 하고 위장출근을 하다 결국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청년은 있는데 미안하다고 말해야 할 사회를 향해 소리치는 청년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세상은 침묵으로 방관하는 자에게 더 큰 희생을 강요한다. 일본 정부는 2013년 정년을 65세로 늘리면서 공무원 신규채용 규모를 줄였다. 청년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으니 정치 충성도가 높은 노년층에게 정책의 초점을 맞춘 것이다. 여기서 얻는 교훈은 침묵하면 소외된다는 것이다. 여운형처럼 청년의 세계에 기대를 거는 이도, 청년을 사회의 생명이라 떠받들어 줄 이도 없는 사회에서 침묵은 값싼 자기 위안만을 반복하게 한다. 정체할 것인지 정체성을 찾아 나설 것인지는 청년 스스로에게 달렸다. 침묵할 것인가, 외칠 것인가?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 이 글을 쓴 이는 저널리즘스쿨 학생 겸 조교여서 ‘피투성이 백일장’ 시상 대상에서 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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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김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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