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故 박완서 작가 5주기 추모 낭독회

“내 경험으로 문학은 우리가 가장 고통스러울 때 위안이 되고 힘이 돼 주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내 문학도 남에게 그런 것이었으면 좋겠어요…고통에만 위안이 필요한 게 아니라 안일해서 무기력해져버린 삶에도 위안이 필요하죠.”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호원숙 엮음, 달출판사 p.201)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문학평론가 박혜경과의 인터뷰에서 말한 문학의 효용이다. 누구에게나 위안이 되고 힘이 되어주는 문학. 그래서일까. 지난 3일 저녁 7시 30분 서울 영등포 아트홀에서 열린 ‘故 박완서를 추억하는 밤’에는 행사가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부터 팔짱을 끼고 온 연인들, 여럿이 모여 떠드는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까지.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이 길게 줄서 입장을 기다리는 광경은 콘서트 장의 대기 줄을 방불케했다.

▲ 故 박완서 작가를 그리고 추억하는 낭독회를 보러온 이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 © 유수빈

“어제 발을 다쳐서 반 깁스했지만 박완서 선생님은 저에게 각별한 분이라서...” 로비 한 구석에 앉아서 입장을 기다리는 임지원(32·서울 당산동) 씨는 수줍지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임씨에게 박 선생은 특별한 존재다. 작가를 꿈꾸던 여고생 임씨에게 문학 선생님은 ‘박완서 선생도 마흔 살에 작가가 되었다. 조급하게 꼭 스무 살에 작가가 되지 않더라도 네가 정말 간절히 원하면 그렇게 돼 있을 것’이라며 박완서 작가를 소개했다. 문학 선생님의 말은 임씨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었다. “비록 지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 않지만 박완서 선생님을 생각하면 그 자체만으로도 위로가 돼서 오늘 꼭 오고 싶었다.” 임씨의 눈은 반짝였다. 그는 목발을 짚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날 행사는 박완서 선생 5주기를 맞아 박 선생과 가까웠던 문인들 및 지인이 참석해 그의 작품을 낭독하고 박 선생을 추억하는 시간으로 꾸려졌다. 참석한 이들은 시인 이병률과 소설가 정이현, 박 선생의 맏딸인 호원숙 경운박물관 운영위원. 낭독회는 “추운데 먼 길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이병률 작가의 인사로 시작됐다. 박 선생을 그리는 에세이 <엄마는 아직도 여전히>를 쓴 호원숙 작가가 기억하는 어머니 박완서와 관련된 추억 이야기는 각별했다.

호 작가는 원고를 우편으로 보내던 시절, 하굣길에 어머니의 원고 심부름을 했던 이야기를 비롯해 어머니가 <나목>으로 처음 상을 받던 날, 어머니의 첫 책이 나오고 갑자기 작가가 되어버린 어머니에 대한 생경한 심정을 찬찬히 이야기했다. 이날 호 작가가 낭독한 구절은 3편으로 쓰인 <엄마의 말뚝>의 첫 번째 이야기의 제일 앞부분.

“농바위 고개만 넘으면 송도(松都)라고 했다. 그러니까 농바위 고개는 박적골에서 송도까지 사이에 있는 네 개의 고개 중 마지막 고개였다. 마지막 고개답게 가팔랐다. 20리를 걸어온 여덟 살 먹은 계집애의 눈에 고개는 마치 직립(直立)해 있는 것처럼 몰인정해 보였다. 그러나 무성한 수풀을 뚫고 지나간 것처럼 고갯길이 끝나면서 뻥하게 열린 하늘은 우물 속의 하늘처럼 아득하게 괴어 있어서 나를 겁나게도 가슴 울렁거리게 했다…나는 미지의 고장으로 어쩔 수 없이 끌려가고 있는 중이었다.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가파른 고개를 오르면서 추락하고 있는 것 같은 아찔한 공포감과 속도감을 맛보고 있었다. 마침내 우리는 고개의 정상에 섰다. “봐라, 송도다. 대처(大處)다” 엄마는 마치 자기가 그 대처의 주인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랑스럽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송도는 엄마가 방금 보자기에서 풀어놓은 것처럼 우리들의 발 아래 그 전모를 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엄마의 말뚝 1>, 박완서.

호 작가는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마치 어머니의 모든 소설의 전주곡을 읽는 것 같다. 짜릿하기도 하고 운명의 시작처럼 느껴져서 시작이 두려울 때 보면서 힘을 얻는다”고 소개했다. 스팟조명이 설치된 무대를 바라보며 관객들은 어두운 객석에서 낭독하는 목소리에 숨을 죽이며 집중했다. 낭독자의 목소리가 공연장을 압도하고 간혹 잔 기침 소리만 들렸다. 두 눈을 지그시 감고 낭독을 듣는 중년 여성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눈이 아니라 귀로 글을 따라 읽는 독특한 경험의 순간이었다. “박완서 선생님의 문장은 정갈해서 마음이 복잡하거나 분주할 때 읽는다”는 이병률 시인의 설명대로 박완서 선생의 선명하고 분명한 문장은 듣는 이들을 빠져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 낭독회에 참석한 이병률 시인, 호원숙 경운박물관 운영위원, 정이현 소설가(왼쪽부터). © 문학동네

“오늘이 올해 봄의 첫 날 같다”고 운을 띄우며 등장한 정이현 소설가는 “박완서 선생님의 작품으로 한국 소설을 배웠다”며 자신을 소개했다. 정 소설가는 ‘마흔까지 전업주부로 살던 늦깎이 작가’의 등단작 <나목>의 마지막 부분을 물기 어린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S회관 화랑은 3층이었다. 숨차게 계단을 오르자마자 화랑 입구였고 나는 미처 화랑을 들어서기도 전에 입구를 통해 한 그루의 커다란 나목(裸木)을 보았다. 나는 좌우에 걸린 그림들을 제쳐 놓고 빨려들 듯이 나무 앞으로 다가갔다. 나무 옆을 두 여인이, 아기를 업은 한 여인은 서성대고 짐을 인 여인은 총총히 지나가고 있었다. 내가 지난날, 어두운 단칸방에서 본 한발 속의 고목(枯木), 그러나 지금의 나에겐 웬일인지 그게 고목이 아니라 나목(裸木)이었다. 그것은 비슷하면서도 아주 달랐다. 김장철 소스리 바람에 떠는 나목, 이제 막 마지막 낙엽을 끝낸 김장철 나목이기에 봄은 아직 멀건만 그의 수심엔 봄의 향기가 애달도록 절실하다. 그러나 보채지 않고 늠름하게, 여러 가지[枝]들이 빈틈없이 완전한 조화를 이룬 채 서 있는 나무, 그 옆을 지나는 춥디 추운 김장철 여인들. 여인들의 눈앞엔 겨울이 있고, 나목에겐 아직 멀지만 봄에의 믿음이 있다. 봄에의 믿음―나목을 저리도 의연(毅然)하게 함이 바로 봄에의 믿음이리라…” <나목>, 박완서.

이날 낭독회에는 깜짝손님이 찾아오기도 했다. 이병률 시인은 객석 한편에 앉아있는 소설가 은희경씨를 발견하고 인터뷰를 요청했다. 은씨는 “(박완서) 선생님이 그리운 마음에 찾아왔다”며 “이 자리에서 각자가 그리는 선생님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함께 선생님을 기억하면 좋겠다”고 심정을 피력했다. 작가들의 낭독 이후에는 객석에 앉은 일반인의 낭독도 이어졌다. 박완서 작가의 마지막 산문집 <세상에 예쁜 것>을 낭독한 30대 여성 독자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인데 작가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 궁금했다”며 “나이대가 다양한 사람들이 낭독회에 모인 것이 신기했고, 박완서 선생님에 대한 사소한 이야기부터 작품을 들을 수 있어서 뜻 깊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 낭독회가 시작하기 전 객석에 자리한 관객들. © 유수빈

<우리가 참 아꼈던 사람>은 故 박완서 소설가의 생전 인터뷰를 모아서 엮은 대담집이다. 책 제목과 달리 박완서 선생은 독자들과 그를 따르는 작가들 가슴속에 생생히 살아 있었다. 정이현 작가의 말대로 낭독회를 찾아 준 500여명의 독자들에게 박완서 작가는 ‘아꼈던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우리가 ‘아끼는’ 사람이었다. 작가를 기리는 자리에 온 이유는 제 각각 일테지만, 험한 세상에서 따뜻한 그의 목소리가 그리운 것이 가장 큰 이유지 않을까.

“현대처럼 정신적 가치가 붕괴되고 믿을 만한 질서와 규범의 밑받침이 없는 사회에서 살려면 많이 타협해야 하는데 ‘마지막 사람다움’을 짓밟는 힘에 대해서는 ‘오기’를 부려야 할 것 같아요. 이러한 사회 속에서의 이상형은 ‘수치를 알고도 당당한 사람, 즉 부끄러움과 오기를 다 갖춘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참 아끼던 사람> p.21)


편집 : 문중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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