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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수탈의 역사를 곱씹는 의미와 재미
[지역∙농업이슈] 도시 재생 ② 군산 원도심
2016년 02월 16일 (화) 14:37:17 김영주 기자 yj0254@naver.com

“우리 국민이 일해서 수확한 쌀을 일본에 보내고 우리는 먹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팠어요.”

지난 30일 가족여행으로 군산을 찾은 이모(50·광주 운암동)씨가 근대역사박물관을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쌀을 수탈한 근거지였다. 군산시는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방식의 ‘도시 재생’을 택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조선은행, 일본18은행, 미즈상사, 군산세관 등 수탈의 현장들이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 근대역사박물관은 ‘역사는 미래가 된다’라는 구호 아래 해양물류뿐 아니라 일제수탈과 항일항쟁의 중심지로서 옛 군산의 모습을 전시하고 있다. © 김영주

1930년대로 떠나는 시간여행

‘이 금고가 채워지기까지 우리 민족은 헐벗고 굶주려야 했다.’

한때 나이트클럽으로 쓰이다 2008년 근대미술관으로 탈바꿈한 일본18은행 건물은 벽체와 기둥, 천정의 일부를 옛 모습 그대로 남기며 복원됐다. 은행 뒤편의 금고에 쓰여진 글귀처럼, 18은행은 쌀 수탈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한 장소다. 은행이 일본인에게 싼 이자로 돈을 빌려주면, 일본인은 조선인에게 토지를 담보로 고리대금업을 하여 농민의 농토를 빼앗았다.

   
▲ 일본18은행은 나가사키에 본사를 둔 일본 지방은행으로 군산에는 1907년에 일본으로 쌀을 반출하고 토지를 강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됐다. © 김영주

군산은 일본제국주의의 필요에 따라 왜곡된 성장을 했다. 밀물 차가 심한 군산항에는 일본 오사카로 쌀을 실어가던 3천톤급 배를 대기 위해 뜬다리부두인 부잔교가 만들어졌다. 일본인 지주들의 상권을 확대하기 위해 익산역부터 군산항까지 군산선 철도가 연결됐다. 대한제국이 군산항을 개항하고 1908년 유럽 양식으로 지은 옛 군산세관은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쌀을 관리하는 데 사용됐다.

   
▲ 군산항에는 조수간만의 차를 극복하기 위해 부잔교가 설치됐고(위), 익산역에서 시작된 군산선은 25만 가마를 쌓을 수 있는 군산항의 쌀 창고와 연결됐다(아래). © 김영주

도시의 성장은 민족의 고통을 바탕으로 했다. 수확량의 50~75%를 소작료로 내던 조선인들은 쌀 대신 만주에서 들여온 잡곡이나 기름을 짜고 남은 콩깻묵으로 굶주림을 달랬다. 일제의 수탈과 횡포가 심했던 만큼, 군산 농민들은 일찍이 민족의식이 고양됐다. 1913년 3월 5일 호남 최초의 만세운동이 서래장터에서 벌어졌고, 1927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농민저항운동으로 기록된 옥구농민항쟁이 일어났다.

   
▲ 군산항쟁관은 일제 강점기 일제에 항쟁한 역사와 장소,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시하고 있다. © 김영주

해방 이후 도시가 쇠퇴하면서 아픈 성장의 역사도 함께 잠들었다. 1980년 군산 신항이 개발되고 1996년부터 관공서가 이전하면서 옛 도심은 예전 지위를 신도시에 내줘야 했다. 그러나 원도심 재생사업으로 빛 바랜 근대문화유산이 체험과 예술의 공간으로 되살아났다. 1930년대 조선미곡창고주식회사에서 송출할 쌀을 보관하던 창고는 장미(藏米·쌀 곳간)공연장으로 개조됐고, 해방 이후 위락시설로 사용하던 일제 시대 건물은 2013년 예술전시공간인 장미갤러리로 변신했다. 일제강점기 식료품 무역회사였던 미즈상사는 책과 커피의 여유를 즐기는 미즈카페로 꾸며져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 쌀 창고는 장미갤러리로 개조됐고(위), 무역회사인 미즈상사는 북카페로 꾸며졌다(아래). © 김영주

군산시는 2009년부터 시작된 근대문화도시 1단계 조성사업으로 근대건축물을 정비하고 근대역사박물관를 만드는 등 ‘근대역사 벨트화’ 사업과 1930년 ‘시간여행 거리조성’ 사업을 마쳤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군산은 2013년 대한민국 경관대상, 2014년 아시아도시경관상, 2015년 지역문화브랜드사업 우수상을 수상했고, 연 100만명의 관광객이 군산을 방문한다. 군산시는 2016년부터 근대문화도시 2단계사업으로 일본식 가옥이 자리한 신흥동 일대에 소설 ‘탁류’를 기반으로 당시 생활상과 문학을 연계해 체험하는 근대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골목마다 이야기가 있다

군산 근대역사박물관과 옛 군산세관, 옛 조선은행이 자리한 해망로 맞은편에는 일제시대에 반듯하게 정비한 골목길들이 있다. 골목마다 일본인 농장주 히로쓰 게이샤브로가 살았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 동국사, 1945년 지어진 빵집 이성당과 군산시가 일제강점기 건축양식에 따라 지은 숙박체험시설 고우당이 자리한다.

   
▲ 일제 시대에 한국에 지어진 54개 일본식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국사. © 김영주

동국사는 일제 때 일본인 농장주들이 시주하던 일본식 사찰이다. 당시 조선인들의 수탈에 일조했던 이곳은 이제 침략의 과오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현장으로 변모했다. 조동종이라는 일본 종교단체는 1992년 일제강점기 우리 민중이 겪은 아픔에 대해 사과했고, 2012년 동국사에 사과문을 세웠다. 동국사는 일제 때 일본으로 넘어간 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환수해왔고, 종군위안부들이 피해를 입었던 현장 자료와 사진을 보관하고 있다.

   
▲ 일본 종교단체인 조동종이 세운 사과문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서 있다. © 김영주

일본식 가옥이 위치한 신흥동 일대는 일제강점기 군산시내 유지들이 거주하던 부촌이었다. 미곡유통업을 하던 히로쓰의 가옥은 그의 재력과 세력을 엿볼 수 있다. 근처에 높은 건물이 없던 1930년대 월명산과 부두가 보이던 전망 좋은 2층집으로 9개의 방과 넓은 마당을 가지고 있다. 히로쓰 가옥은 영화 <장군의 아들> <바람의 파이터> <타짜> <가비> 등 많은 한국 영화들이 촬영된 장소이기도 하다. 그러나 해방 이후, 권세가이자 재력가이던 히로쓰도 가방 두 개와 약간의 돈만 가지고 일본으로 돌아가야 했다.

   
▲ 일본인 농장주인 히로쓰가 살았던 신흥동 일본식 가옥(위). 일본 지주들이 살았던 신흥동 일대 가옥에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높은 돌담들이 둘러쳐져 있다(아래). © 김영주

근대역사벨트로 연결된 골목의 각 명소들에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주말이면 하루 800~1000명의 관광객들이 동국사를 찾는다. 이종예 문화관광해설사는 근대역사벨트화사업 이후 동국사를 찾는 젊은 관광객과 가족 단위 관광객이 많아졌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그는 원도심 재생사업에 아쉬움도 표했다.

“이성당 빵 사기가 얼마나 힘들어요? 추워도 한 시간은 줄 서서 사잖아요. 근대문화도시 사업에 연계돼서 1945년 지어진 이성당 빵집이 지금까지 유명한 거예요. 그런데 군산 골목마다 이성당 같은 먹거리, 볼거리, 즐길 거리가 있거든요. 그런 것을 발굴하고 스토리텔링해서 관광사업으로 정착시켜야 해요.”

이 해설사는 “군산에는 아직 발굴하지 않은 골목의 이야깃거리와 먹거리들이 많다”고 말했다. 인력거를 개량한 3륜 자전거의 뒷 좌석에 타고 시내관광을 할 수 있는 자전거택시가 대표적이다. 고은 시인이 승려로 지내던 시절 머물던 방도 알려지지 않은 관광명소다. 그의 방에는 동요 ‘반달’ 작곡가 윤극영씨, 화가 김기창씨, 시조시인 가람 이병기씨, 시인 신석정씨 등 문인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져왔다.

다음 과제는 시민과 ‘공생’하는 도시

토요일인 지난 30일 저녁 월명동 골목길에는 문 닫은 식당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월명동에서 5년 간 식당을 해온 최애란(55)씨는 “근대문화도시사업으로 관광객이 많아졌지만, 옛 도심 속 깊숙이 들어오지 않고 흘러간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지 않다 보니 몇몇 식당은 나이 많은 지역민들이 잘 오지 않는 저녁 시간에 문을 열지 않는 곳도 더러 있다는 것이다.

   
▲ 월명동 골목길에는 토요일 저녁인데도 문을 닫은 식당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 김영주

군산시가 야심 차게 만든 숙박체험시설 고우당에 있는 식당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거기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8)씨는 “관광객들이 하루 코스로 유명 관광지만 들르기 때문에 식당 매출이 높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씨는 골목에서 즐길 거리와 먹거리가 없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손님들이 대부분 ‘영업하냐’고 물어봐요. 바깥에 내놓고 먹거리를 팔 수가 없으니까, 손님들이 영업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나 봐요. 고우당은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주말을 보내기도 좋은데, 바로 근처에 사는 주민들도 잘 찾지 않아요.”

   
▲ 정원처럼 꾸며진 안쪽 숙박체험관(위)과 달리, 고우당 바깥쪽에 자리한 식당들은 손님들이 영업을 하는 줄도 모르고 지나치기도 한다(아래). © 김영주

근대역사벨트화 사업은 연간 관광객 100만 명을 달성할 만큼 관광객을 끄는 데 성공했다. 매년 ‘시간여행 축제’와 ‘근대복장 체험’ 등의 볼거리를 정기적으로 제공한다. 그럼에도 지역 상가들은 옛 도심의 골목들마다 생기를 불어넣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종예 해설사는 “주민들과 대화하고 호흡하면서 골목 곳곳의 이야기를 찾는 ‘시민참여형 도시재생사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군산시도 올해부터 주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골목 재생사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군산시 도시계획과 김대영씨는 “상가활성화 기반 조성 차원에서 보행자 중심 주요 테마 거리를 만들어서 관광객들의 이동 루트를 만들 것”이라면서 “주요 탐방로 이외에도 골목길마다 콘텐츠와 스토리텔링을 할 만한 자원들을 충분히 발굴해 디자인 골목길 조성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디자인 골목길 조성사업은 특정 골목길 내에 주민들과 집의 역사, 현재 집주인의 특성 등 주민들한테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연표를 만들어 골목을 꾸미는 사업이다. 군산에는 일제 시대 이후 지어진 근대건축물이 169동이나 있다. 월명동 골목마다 자리한 오래된 가옥들도 보수되고 꾸며져 시민들의 발걸음을 불러 들일 계획이다.

   
▲ 월명동 골목길을 걷다 보면 일제 시대에 지어진 오래된 가정집들을 곳곳에서 보게 된다. © 김영주

모든 도시는 세월과 함께 변화한다. 한때 사람과 자본이 몰려 중심지 역할을 했던 곳이 한순간 몰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지역을 지탱하던 중심 산업이 쇠퇴하거나 도시 확장으로 공동화 현상이 나타나면, 그곳은 더 이상 삶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죽은 장소로 전락한다. 숨을 쉬지 않는 도시에 새로운 기를 불어넣는 과정, 이를 ‘도시 재생’이라고 한다. 자본을 억지로 투입해 인공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대신 장소가 가진 본연의 의미를 끄집어내 장소 정체성을 만든다. <단비뉴스>는 3회에 걸쳐 도시 재생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을 찾아간다. (편집자)

편집 : 박성희 기자

[김영주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팀장, 편집부, 시사현안팀 김영주입니다.
앎에는 책임이 따른다. 행동이 말을 배신하지 않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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